지난 당선작
2017
2016
2015
2014
2013
2012
2011
2010
2009
2008
2007
2006
2005
2004
2003
2002
2001
2000
1999
1998






[단평]
운명과 예술

- 유정

여기 두 인물들이 있다. 조각을 하는 여자와 건축을 하는 남자. 이들의 공통점은 이 두 남녀가 “삶보다 죽음에 더 깊이 빨려 들어가게 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136)라는 점이다. 조경란의 신작 장편 소설 ‘복어’가 놓여있는 지점은 여기다.

이 작가가 ‘운명’이라고 명명한 것은 다름아닌 “유전적인 우울증” 혹은 그로 인해 자살로 이어지는 집안 내력과 맞닿아있다. 여자의 할머니가 가족들 앞에서 손수 끓인 복엇국을 먹고 자살했고, 그 여파로 삼촌과 고모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도 죽음에 이르게 된 것. 그리고 남자에겐 선천적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버지가 있고, 그의 형이 창문에서 뛰어내렸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언제나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립자가 따라다니고 있었다”(39)로 요약되는, 이 작가가 이 작품에서 주조해놓은 운명의 양상인 셈이다.

우울, 불안, 무기력, 이런 정서들에 -가족력이라는- 뿌리가 있다는 것이 운명을 말하면서 그 근원을 내세우는 조경란의 어법이라고 한다면, 이를 토대로 이 작가는 죽음 충동을 견디는, 그리하여 “그 설명할 수 없는 것들, 그 파괴의 욕구에 관한 노력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90)를 하는 행위로써 예술의 본질을 얘기한다.

“예술가란 자살의 충동을 이겨낸 것만으로 유명해지지는 않아요. 그녀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규모가 방대하면서도 단순한 작품에 손대기 시작했어요. 아마 충동을 견디느라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요.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게 됐죠. 더 아름답고 고요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게 그녀의 마지막 욕망이 됐어요.”(156-57)

그러나, 어찌보면 지나치게 심리학적으로 환원되고 말았을 뻔한 이 주제에, 작가는 삶에 대한 “관용과 깊이”를 입혀, 독자에게 전달되는 감동의 깊이를 마련한다. 그녀가 “감각의 새 조건”(142)이라고 명명한 “복어”가 이를 가능케 하는 작인이다.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복어”에 주목하는 것은 이것이 주인공으로 하여금 죽은 할머니와의 동일시를 하게 하는 운명의 메타포이자, "형체는 없지만 꼭 있어야 하고 살아서라면 영원히 좇아야 한다고 믿고 있던 것"(65)이라는, 예술에 대한 메타포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복어’가 중요한 것은 조각가인 그녀에게 죽음에서 삶으로의 방향을 전회하게 만드는 “도약”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나아가서, 운명과 예술 사이에서 “도약과 추락을 반복해야”(59) 했던 주인공 여자에게 “앞으로 살게 될 삶”이 “실패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작의 이야기”(303)로 귀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의 고통 속에서 죽는다”(60)며 스스로의 세계에 칩거했던 여자가, 건축가인 남자를 통해 “자신의 세계에 대한 도전과 발견의 기대”(240)와 다시금 조우하게 될 것이라는 대단원의 여운으로 직결된다. 그러므로 “나는 죽음에 쫓겨 다니는 게 아니라 내 작품 세계를 이루고 싶다는 욕망을 내가 끌고 다니는 거야”(280)라는 그녀의 친구 사임의 말은 발화의 주체를 그녀로 바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설 ‘복어’는 운명과 예술의 경계를 넘어설 수밖에 없는 작가, “타인에게 언어로 다가가는 사람”(18)의 본령에 대한 작품으로 읽혀진다. 운명과 예술이라는 일반적이면서도 고전적인 주제를 다룬 이 소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뇌리에 깊이 남아있는 것은, 저러한 생을 견디는 인물들의 과정이 치열하면서도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Copyright 2002 donga.com. E-mail.sinchoon@donga.com
Privacy poli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