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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플라모델                       - 김 휘


1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언성을 높여 다시 말했다.

“아저씨 여기 이렇게 계시면 안됩네다. 나가시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웃는 것도 화난 것도 아닌, 플라 모델을 보던 멍한 시선을 내게 주었다. 나는 훈김을 쏘인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볼은 오목하게 패였고 눈은 퀭했다. 정신이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술에 취해 표정이 풀어진 탓일까. 그렇게 보기에도 어딘지 모르게 끈끈하게 잡아당기는 구석이 있었다. 남자가 쇼윈도 유리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선 조금 전부터 내 시선은 흔들렸다.

처음부터 보려고 한 건 아니었다. 유리에 달라붙은 나방을 보듯 남자의 몰골에 절로 시선이 갔을 뿐이었다. 초가을 날씨에 두툼한 방한복이라니. 방한복 군데군데 터진 틈으로 비죽 나온 누런 솜과 손에 그러쥔 연녹색 소주병은 더 가관이었다. 쇼윈도를 밝힌 조명을 좇아 파닥이는, 통유리 밖의 나방이 연상될 정도였다. 이를테면 누에고치 같은 가는 몸통에 연두색 날개가 달린 나방이나 누런 똥 색 날개가 있는 나방 말이다. 박자가 맞으려는지 쇼윈도 유리에 붙은 남자의 얼굴도 딱 누런 똥 색이었다.

쇼윈도에는 항공모함, 장갑차, 전투기 따위의 플라 모델들이 진열되어 있다. 남자는 그중에 어떤 것을 보았을까. 얼핏 전투기가 있는 곳에 시선이 가 있는 것 같긴 했다. 남자 뒤로는 긴소매 티셔츠나 얇은 재킷 따위를 입은 행인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이윽고 남자가 천천히 몸을 움직이더니 유리문을 밀고 들어왔다.

“또 왔네.”

남자를 보자 계산대에 앉은 사모님이 인상을 찌푸렸다. 손님들도 눈을 힐끔거렸다. 그러자 손님 옆에 서서 제품설명 중이던 창용이 이를 엇물었다. 내게 턱짓을 했지만 나더러 어쩌라는 건지 나는 멍했다. 남자가 구석 쪽에 있는 할인가 품목진열대 앞에 가 멈춰 섰다. 그때까지도 나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부근에 서 있던 손님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나갔다. 사모님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안 그래도 며칠 전 진열장에 물건이 없어졌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사모님은 나와 창용에게 쓴 소리를 했다. 사람들에 가리면 감시카메라가 있어도 소용없다며 잘 지켜봐야 한다는 거였다. 그런 일이 있어선지 사모님은 화난 표정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저런 놈이 자꾸 들락거리니 가게 물건이 한두 개씩 없어지지.”

창용은 슬쩍 사모님의 표정을 살피며 지겹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플라 모델의 제품의 진열상태를 확인하던 나는 창용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 사람 뭐이가?”

“아, 저 나발쟁이. 처음엔 유리문 앞에 코 처박고 몇 분 동안 서 있다 가더니 이젠 아예 가게로 들어와 한참을 저러다 간다. 냄새가 지랄 같아서 난 가까이 가기도 싫어. 야, 종안이 네가 어떻게 좀 해봐.”

창용이가 내 등을 확 떠밀었다. 두세 걸음 떠밀린 나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냄새가 고약해서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다. 들어온 지 보름밖에 안 된 초짜인 게 죄라면 죄였다.

코를 잡아 쥔 손님들의 눈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나가달라는 말 고저 안 들립네까?”

꿈쩍도 하지 않는 남자를 향해 나는 한 번 더 세게 말했다. 착각이었을까. 순간 내게 말을 걸 것 같은 표정이 남자의 얼굴에 일어섰다 사그라졌다. 남자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유리문을 밀고 나갔다. 나는 대단한 임무라도 수행한 듯해 어깨를 으쓱했다.

가게 안은 다시 평온해졌다.

내가 일하는 플라 드림은 삼 층짜리 건물 일 층에 있다. 가장 번화한 삼거리 대로변 정 중앙에 있는 건물이다. 이 층과 삼 층에는 핸드폰, 컴퓨터에서부터 최신식 가전제품을 파는 전자랜드가, 아래 일 층에는 나이키, 퓨마 같은 스포츠용품 브랜드가 모여 있는 대형매장이 있다. 그 같은 층에 플라 모델을 파는 플라 드림이 있다. 플라 모델 상자 안에는 실제 모습과 똑같은 축소 모형을 만들 수 있는 플라스틱 조각부품들이 들어 있다. 조립하면 캐릭터 인형이나 로봇이 되는 것도 있고 또 어떤 것들은 집과 마을로 탄생하기도 한다. 완성된 것들 앞에 서면 마치 내가 거인이라도 된 기분이 든다.

플라 드림에서 인기품목을 꼽는다면 단연 전쟁에 동원되었던 병기들이다. 꼭 내가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런 품목에 관심 있는 남자손님이 많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전투기, 장갑차 같은 것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들여다보면 순간 강해지는 묘한 기분이 든다. 지나가던 남자들이 쇼윈도에 진열된 플라 모델들을 슥 보기만 해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데도 다 그런 까닭일터다.

통유리 밖에서 머뭇대다가 유리문을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 그들 중에는 플라 모델 초보자도 있고, 단지 구경할 요량인 치도 있지만 마니아를 자처하는 이가 다수이다. 플라 모델 마니아는 여느 마니아들이 그렇듯 가격 따위를 고민하지 않는다. 입고된 모델 정보를 이메일로 뿌리자마자 금세 동나는 건 그런 마니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건을 놓칠세라 경쟁이라도 하듯 서둘러 가게에 온다. 우리 반 필록이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새 모델이 들어오면 주저 없이 지갑을 열었다. 플라 드림에는 필록이 같이 주머니 두둑한 아이들 손님이 많다. 나는 일하면서 내 또래의 아이들이 가격에 개의치 않고 원하는 모델을 사들고 나가는 걸 매일 보고는 했다.

아이들은 등하교 때마다 쇼윈도를 기웃댔다. 우리 반만 해도 플라 모델에 미친놈들이 수두룩하다. 어느 한 놈이 새로 산 모델을 자랑하면 녀석들은 부러워서 입술을 달싹거렸다. 녀석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던 것도 내가 플라 드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나를 탈북자라고 놀려대기만 하던 녀석들이었는데 플라 드림에서 일하는 걸 알고부터 태도가 달라졌다. 녀석들이 입고나 모델 정보를 얻으려고 말을 걸어왔을 뿐이었는데도 나는 뭐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창용에게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북한 억양으로 떠듬대는 나와 달리 창용의 설명은 유연하다. 귀에 쏙쏙 박힐 정도여서 학교 아이들이건 매장 손님들이건 창용에게 들러붙는다. 오늘도 문 닫을 시간이 다 되도록 나는 낮에 비렁뱅이 내쫓은 일 말고는 손님을 제대로 응대해보지 못했다. 어눌한 말씨에 북한 억양까지 튀어나오면 사람들은 고개 돌려 나를 한 번 더 봤다. 그때마다 나는 내 입에서 악취가 나서 그런 것처럼 얼른 입을 다물었다.

정말이지 북한 억양을 확 지워버릴 수는 없을까. 라디오나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따라해 보기도 했다. 뉴스를 보도하는 앵커의 입 모양을 흉내 내 보았고 흔히 유행어를 만든다는 연예인들이 오락프로에서 하는 말을 중얼거려도 보았다. 생각만큼 억양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플라 드림에서 일하고 있다. 고향 빵집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자리였다.

할아버지가 나를 플라 드림 사모님한테 소개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절친한 벗이었다는 인연으로 사모님은 고향 빵집 할아버지를 평소 ‘아버님’이라고 불렀다. 고향 빵집 할아버지가 부탁하는 거라면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사장님은 아르바이트생으로 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탈북자에다 말까지 어눌해서 어디 써먹겠느냐고 내 앞에서 노골적으로 꼬투리를 잡았다. 하지만, 나를 쓰겠다고 밀어붙이는 사모님의 목소리가 더 컸다. 사장님은 더는 반대하지 못했다. 사장님의 못마땅해 하는 시선 때문에 첫 출근 때부터 주눅이 들긴 했다. 그래도 그런 건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해결될 것이기 때문에 문제 될 건 없었다. 북한 억양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노력하면 될 것이고, 손님들이 지갑을 열도록, 기왕이면 비싼 물건을 사도록 유도하는 요령을 배워나가면 될 것이다.

“종안이 녀석 일은 잘하나?”

어제 가게 앞에서 할아버지가 사모님에게 물었다. 사모님이 성실해요, 하고 대답했다.

“너 수영 형 말도 잘 듣고 있지?”

사모님 옆에 선 나는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고 녀석, 하고 웃었다. 그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보자 내 안에 온기가 천천히 퍼졌다.

할아버지는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사실 그 도움은 수영 형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나를 단지 고향이 같다는 이유로 떠맡기엔 수영 형의 처지는 썩 좋지 않았다. 원하는 회사마다 미끄러졌다. 좋아 지내던 누나와 헤어진 뒤로는 얼굴에 표정이 아예 사라졌다. 그런 형에게 나는 뻣뻣하게 굴었다. 아무리 되는 일이 없기로 사사건건 퍼부어대는 형의 잔소리는 듣기 싫었다. 형은 툭하면“너 그런 식으로 굴면 여기서 살아남을 수 없어”라는 소리를 했다. 제멋대로 군다며 가르치려 들었다. 언젠가 형과 나는 쌓인 감정이 폭발해 씩씩대며 길에서 거친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때 할아버지가 지나가다 지켜보았는지 다가와 “이 녀석 형한테 그러면 못써”하며 끼어들었다. 나는 형에게 눈을 흘기며 입을 다물었다. 그때 할아버지는 수영 형을 안쓰럽다는 듯 쳐다보았었다.

“나 이거랑 이거.”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 엄마 손을 잡아끌며 들어온 꼬마가 진열대 중앙을 가리켰다.

“하나만 골라.”

손지갑을 든 아이 엄마는 새된 소리로 말했다. 꼬마가 가리키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는 두 개를 합해 만원도 채 되지 않았다. 나는 창용을 쳐다보았다. 녀석은 창고 안에서 핸드폰 문자 찍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사모님은 계산대에서 수화기를 든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 엄마에게 다가갔다.

“두 개 다 비싼 거이 아니니까 오마님 두 개 사주시오.”

아이 엄마는 나를 비스듬히 쳐다보았다. 북한 억양에 저런 식으로 반응하는 사람을 심심찮게 보아온 터여서 나는 무조건 미소로 대응했다. 플라 모델은 아이의 두뇌발달에 좋다고도 덧붙였다. 아이 엄마의 경직된 얼굴이 풀어졌다. 내 표정이 어쩌면 비굴하고 불쌍하게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성공이었다. 아이 엄마는 계산대로 가 지갑에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두 가지 모두 싸달라고 말했다. 사모님이 영수증을 뽑으며 웃는 낯으로 나를 건너다보았다. 나는 유리문을 밀고 나가는 모자에게 허리 꺾어 인사했다. 손님을 혼자 상대해 물건을 판 건 처음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바닥을 청소하거나 진열대를 정리하고 쇼윈도에 전시용 플라 모델의 진열 위치를 가끔씩 바꿔주는 게 고작이었다. 하루 마무리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사모님이 현금 서랍을 잠그며 계산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 문 닫을 준비하자, 하고 한마디 하자 창용이가 창고 문을 닫으며 나를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야, 문 걸어 잠그고 어서 셔터부터 내려버려!.”

녀석은 늘 내게 명령조다. 일하는 시간은 같지만 자기가 상사쯤 된다고 생각하는지 나에게 함부로 대했다. 속이 뒤틀려 주먹이라도 한 방 날려주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할아버지를 생각해서 꾹 참았다. 할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할아버지가 뜻밖에 그 남자와 함께 서 있었다. 며칠 뒤 학교 수업을 파하고 골목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길이었다.

고향 빵집 앞에서 남자는 할아버지가 내미는 빵을 건네받고 있었다. 여전히 한 손엔 소주병을 들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남자는 늘 소주병을 들고 다니면서 병째 나발을 분다고 동네에선 나발 아저씨 혹은 나발쟁이로 통했다. 나발 아저씨는 언제부터 저런 모습으로 이 동네에 흘러들었을까. 걸러질 뿐 스며들지 못한다는 건 얼마나 추운 일인가. 나도 모르게 나는 나발 아저씨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에 붙들렸다.

나발 아저씨는 방향을 틀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길 건너 공원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그 뒷모습을 우두커니 시선으로 좇았다.

2

“나 블랙 나이트 에프십사 땡겼다.”

첫 교시가 끝난 뒤 화장실 창문 가에 선 필록이가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좋겠다. 조립 다했냐? 씨팔 나도 사고 싶었는데 가격이 너무 빡세.”

줄줄이 서서 담배를 돌려 피우던 녀석들 중 하나가 툴툴댔다. 플라 드림에 이틀에 한번 꼴로 오는 녀석이었다. 와선 플라 모델 상자를 만지작대며 군침만 삼키다 갔다. 사모님이 계산대에 버티고 있을 때는 겨우 삼천 원짜리 플라 모델을 집어들고 지갑을 열었다. 주머니 사정이 달랑한 그런 녀석에게 블랙 나이트 에프십사는 엄두도 못 낼 고가의 모델이었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던 창용이가 거울을 보며 목소리에 힘주어 말했다.

“가격은 세지만 벌써 딱 세 개밖에 안 남았다 쨔샤. 일본에서 소량 들여온 거라 입고안내 메일 뿌리니까 이틀 만에 거진 다 나갔거든. 필록이가 열여덟 번째로 사갔지. 빨리 안 오면 그거 구경도 못하니까 알아서들 해. 아 그리고 이번 리스트에서 타미야제 미쓰비시 에이식스엠투제로 말이야. 그건 앞으로는 입고계획이 없는 모델이라 이번 기회 놓치면 구하기 어려울 거다. 우리 대머리 사장이 그러더라. 야, 종안아 너도 들었지, 그지? ”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창용의 말에 맞장구 쳐주었다. 담배를 피우던 녀석들 중 다른 하나가 창용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와, 그 진주만 공격에서 이름 떨쳤던 그 전투기? 모델 사진 보니까 영화에서 본거랑 똑같더라. 짱 나게 멋있겠다.”

“물론이지. 이번에 안 사면 후회할걸. 너희한테만 알려주는 거다.”

창용은 대단한 정보를 살짝 알려준다는 듯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였다. 어떤 녀석들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하긴 창용이가 흘려주는 플라 모델 입고정보는 주머니 두둑한 마니아가 아니면 생각도 못할 수준이었다. 그래도 창용이가 은밀한 목소리로 정보를 흘린 날은 효과는 직방이었다.

이틀 전만 해도 창용에게서 정보를 들은 아이들이 하교하자마자 가게에 나타났다. 상자를 집어든 녀석에게 창용은 영수증을 뽑으며 말했다.

“너 진짜 운 좋은 거야. 이거 하나 남은 거거든.”

녀석의 얼굴에 하마터면 못 살 뻔했다는 안도의 미소가 스쳤다. 창용은 녀석이 나가자 빈자리에 같은 모델을 채워 넣으며 나를 향해 씩 웃었다. 창용의 거짓말은 퍽 자연스럽다. 그건 내가 아직 갖추지 못한 수완이었다. 아이들의 구매 욕구에 불을 지르는 묘한 화술, 신모델을 안 사면 친구들과 대화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 유도. 나는 창용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담배 한 개비를 입술에 꽂으며 창용이가 말했다.

“야, 필록. 너 지난주에 사간 더글라스 에프삼오 스카이레이 조립 다 끝났냐? 조립 다했으면 그거 애들 좀 구경시켜 주라.”

“알았어. 그러지 뭐. 너희 놀랄 거다. 환상이야 환상. 안 그래도 내일 우리 플라 모델 동호회 모임이 있거든. 야, 너희도 얼마 전에 조립한 경주 카 갖고 나와.”

필록은 앞에 서 있는 녀석들에게 눈짓을 하며 말했다.

“오, 그렇구나.”

창용은 아이들 앞에서 엄지손가락을 곧게 세워 보이며 필록을 두둔했다. 필록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여유롭게 웃었다. 값비싼 플라 모델만 사가는 필록은 길 건너 주유소 사장 아들이다. 창용의 말마따나 브이아이피 고객이었다. 고객관리가 별거냐 비싼 고객을 우쭐하게 해주는 게 고객관리지, 하고 언젠가 창용이가 내뱉던 말이 떠올랐다. 마냥 웃고 있는 필록을 보며 나는 속으로 ‘그렇지 고객관리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 부부는 창용을 신뢰했다. 오늘만 해도 학교 대청소 때문에 지각한 건 마찬가지인데 사장님은 나에게만 잔소리를 쏘아댔다. 나는 너무 불공평하다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런데 정작 투덜대야 할 나도 참고 있는데 사장 부부가 보지 않는 틈틈이 창용이가 툴툴거리고 있었다. 상자를 정리하다가도 창고 문틈 쪽을 향해 비웃는 시선을 겨누기까지 했다. 정리하던 상자에 붙은 박스 테이프를 손끝으로 얇게 찢으며 중얼거렸다.

“에이 씨팔, 이게 다 누구 때문에 장사가 잘되는 건데. 회사 같은 데선 능력별 건수별로 인센티븐가 뭔가 준다는데, 난 뭐냐고. 내가 고등학생이라고 그냥 막 넘어가고 있어.”

창용이가 투덜대는 소리를 처음 듣는 건 아니었다. 사실 플라 드림의 매출을 확 올릴 수 있었던 건 내가 봐도 창용이가 요리조리 수완을 발휘한 덕이었다. 교내 플라 모델 동호회를 주도해서 마니아층을 다졌고, 그 애들을 중심으로 고객층도 늘렸다. 구경할 요량으로 가게에 들어온 손님도 놓치지 않고 지갑을 열게 했다. 그런 창용의 수완에 나는 여러 번 입을 떡 벌리며 부러워했다.

나는 창용의 목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문을 잡아당겼다. 창고 문틈으로 가게 안을 힐끔거렸다. 사모님의 고압적인 말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누구를 찾으시죠? … 성함을 말씀하셔야죠 … 네? … 무슨 일로 전화하신 거죠?… 잠깐만 기다리세요.”

사모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창고에서 뛰어나갔다. 잔뜩 굳은 표정을 한 사모님이 소리쳤다.

“얼른 가서 아저씨한테 전화 받으시라고 해라.”

나는 유리문을 밀고 나갔다. 습관처럼 나는 부동산 소개소 출입문 앞에 다다랐다. 가게에 없다 싶으면 플라 드림 옆 건물 일 층에 있는 미래부동산에 가보면 되었다. 사장님은 동년배인 미래부동산 이 씨와 바둑을 두며 어울렸으므로 다른 데 있나 기웃거릴 필요가 없었다. 파란색 셀로판지가 가로로 띄엄띄엄 붙은 사이로 내부가 들여다보였다. 벽에는 동네를 축약해놓은 지도가, 그 밑으로 주택, 오피스텔, 아파트, 상가 별 매물가가 인쇄된 종이들이 줄지어 붙어있었다. 세 사람이 탁자를 가운데 두고 갈색 가죽소파에 깊숙이 상체를 파묻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뿌연 담배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조금 열린 문틈으로 대화가 흘러나왔고, 재개발 어쩌고 하는 말이 여러 번 들렸다.

“공원 후문 쪽 야산 아래 그 일대 말인가?”

“그렇다니까. 지금 한창 추진 중인데 뭐 쉽지는 않은 모양이더라고. 보상금문제도 잡음이 많고 게다가 딱 절묘한 위치에 오래전부터 버려진 집이 하나 있는데 그게 골치야.”

“소유주가 없나? 없으면…어, 종안이 왜?”

나는 문을 반쯤 열어 고개만 들이밀었다. 대화 중간에 끼어든 것을 어색해하며 사장님에게 전화 왔다는 말을 전했다. 사장님은 하던 말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미안하다는 손짓을 하고는 유리문을 밀고 나왔다.

송수화기를 받아든 사장님은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몇 번 헛기침을 했다. 사모님이 전화기 앞에 팔짱을 끼고 선 채 사장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사장님은 귀밑까지 붉어져서는 수화기에 입술을 대고 겨우 네 네, 하며 힘겨운 통화를 했다. 사장 부부 사이에 서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하던 일이 있는 척하며 얼른 창고로 들어갔다. 상자를 정리하던 창용이 나를 보고는 사장 새끼 딱 걸린 모양이군, 하며 키득거렸다. 재미있다는 듯 플라 모델 상자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비행기가 충돌하는 장면을 만들어 보였다. 입에서는 폭발음을 흉내 낸 위잉--- 꽝, 하는 소리가 웃음소리와 섞여 나왔다.


“위잉---.”

공원 위로 모형비행기가 허공을 갈랐다. 아이들이 공중에 시선을 던지며 와와, 소리를 질렀다. 산책 나온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아이들 무리에 섞여들었다. 크기만 작을 뿐 실제의 모습과 똑같은 비행기가 머리 위를 오락가락하는 게 퍽 신기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아지 목줄을 쥔 운동복 차림의 어떤 아줌마는 정말 시원하게 나네, 했고, 지팡이를 쥔 어떤 노인은 중절모를 벗어들고 조그만 게 제법 나네, 하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하나같이 눈요깃감을 만났다는 표정이었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갖고 싶어 미치겠다는 얼굴들이었다. 공터의 다른 한쪽에도 질주하는 무선 경주 카를 보려는 사람들이 둥그렇게 띠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더 많은 시선과 환호는 하늘을 향했다.

필록은 두 손안에 리모컨을 쥐고 허공에 비행체를 움직였다. 비행체는 넓게 곡선을 그리며 높이 올랐다가 내려오는 식으로 수직선회를 했다. 선회성능은 곡예를 선보이듯 매끄러웠다. 연속해서 삼 회 선회를 하며 원을 그릴 때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필록의 표정은 더글라스 에프삼오 스카이레이만큼이나 붕붕 떠 있었다. 나는 비행기의 움직임을 따라 쳐든 고개를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시선을 뗄 줄 몰랐다. 잠깐이지만 플라 모델 동호회에 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동호회 아이들처럼 고가의 플라 모델을 사 모으며 나도 마니아라고 과시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나는 공중을 가르는 무선모형비행기에 멍하니 시선을 걸쳐나 볼 뿐이었다.

비행기를 따라가던 내 시선이 순간 멈추었다. 눈에 나발 아저씨가 들어왔다. 멀찍이 벤치에 앉아 소주병을 입에 꽂은 채 비행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멀고 먼 무언가를 향한 듯 망연한 눈빛이었다.

그때였다. 공중을 가르던 모형비행기가 휘청 날개를 뒤집었다. 돌발 상황이었다. 아이들의 입에선 어, 어, 하는 단절음이 터져 나왔다. 모형 비행기는 가파른 선을 그리며 급강하하더니 나발 아저씨의 발밑으로 내려앉았다. 불시착이었다. 나발아저씨는 상체를 숙여 무선모형비행기를 집어들었다.

“이리 주세요.”

필록은 나발 아저씨에게 뛰어가 손을 내밀었다. 필록을 따라 간 아이들 어깨너머 나는 목을 빼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나발 아저씨는 못 들은 척 계속 비행기를 살펴보고 있었다.

“에이씨, 이게 얼마짜린 줄 알고 그렇게 함부로 만져요. 빨리 주세요.”

나발 아저씨의 손에서 낚아채듯 비행기를 뺏고서 필록은 비행기를 이리저리 보며 중얼댔다.

“에이 씨팔, 바퀴부분이 부러졌잖아.”

“어디 봐. 야 이거 바퀴는 좀 심하네. 접착제로 붙여도 보기 흉하겠다.”

창용이는 필록이가 든 비행기 바퀴를 만졌다. 필록이는 나발 아저씨를 건너다보며 투덜댔다. 벤치에서 몸을 일으킨 나발 아저씨는 뒤돌아 그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아이들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나발 아저씨의 뒤를 밟았다. 들키지 않을 만큼 떨어져서 따라갔다. 나발 아저씨는 공원 후문 쪽으로 가고 있었다. 후문을 지나자 야산 아래 나무가 우거진 길이 나왔다. 대로변이나 주택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조금 더 들어가자 오십 미터쯤 전방에 집 한 채가 보였다. 기와지붕의 한옥이었다. 지붕은 기왓장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갔고, 담장은 심하게 파손된 상태였다. 담의 안과 밖으로 어린아이 키만 한 잡초들이 웃자라 있었다. 버려져 방치된 지 오래된 흔적이었다.

부동산 소개소에서 버려진 집 운운하던 말들이 눈앞에 먼지 날리듯 떠올랐다. 주위를 살피던 나발 아저씨의 뒷모습이 무너진 담장 안으로 사라졌다.


다음날 학교를 파하고 가게로 향하는데 할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할아버지는 예의 빵 하나를 내게 주었다.

“감사합네다.”

빵 한입을 베어 물었다. 보드라운 빵의 속살이 입 안에서 녹는 순간 할아버지에게서 빵을 건네받던 나발 아저씨가 생각났다. 나는 주저하다 슬쩍 말을 꺼냈다.

“혹시 가끔 이 앞을 지나던 거렁뱅이 아저씨 아십네까? 일전에 빵도 주시던데….”

“뭐 잘 알아서 그런 건 아니란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양반도 너와 같은 처지다.”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기분이 탁 꺾이고 말았다. 초라한 모습으로 거릴 배회하는 나발 아저씨가 나와 같은 탈북자라니. 처음 남한에 와 밤거리를 배회하던 중 지하도에서 본 광경이 기억났다. 지하도 입구나 통로 벽에 부착된 액자형 광고판 밑에 신문지나 종이 박스를 덮고 드러누운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고급아파트나 첨단통신 단말기 따위의 광고판들이 환한 빛을 발하며 미래를 말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사라진 지 오래된 미래였다. 비질 한 번에 치워질 나방 시체 같은 그들의 몸뚱어리들은 푸석푸석해 보였다. 환한 불빛을 향해 날개를 파닥이다 추락한 사람들. 나는 광고판 아래 드러누운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벼랑 끝에 몰려 밑바닥까지 떨어진 사람들이 노숙자로 변태하는 것이 이곳 생리라고. “옛다. 마침 잘 됐다.”

“네?”

“그거 다 먹고 공원 후문에 그 집 알지? 폐가 말이다. 거기 좀 다녀와. 네 녀석 달음박질이면 십 분이면 갔다 올 수 있을 게다.”

할아버지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검은색 비닐봉지를 내게 건넸다.

“거긴 왜요? 지금 저더러 거길 가라 이 말씀입네까?”

“그 양반 어제오늘 안보이던데 굶고 있을 게야. 전에 나한테 거기 기거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

나는 옥수수 빵이 담긴 비닐봉지를 집어들었다. 할아버지의 부탁이라 거절할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발 아저씨에 대한 알 수 없는 호기심이 날 달리게 했다.

버려진 집은 낮에도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두리번거리며 담 안으로 들어섰다. 안마당은 넓었고 잡초가 무성했다. 여기저기 깨진 항아리 조각과 기왓장이 널려 있었다. 안마당 한가운데 서서 집의 정면을 바라보자 오싹해졌다. 마루로 올라서는데 나무 문짝이 부서진 채 먼지 쌓인 바닥 여기저기에 보였다. 천장 곳곳엔 거미줄뿐이었다. 나는 시선을 거두고 할아버지가 알려준 대로 이층으로 올라갔다. 개량한옥인지 복층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이 층 세 번째 방은 다락방과 이어진다고 했다. 다락방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좁고 높았다. 계단을 기다시피 올랐다가 내려가야 다락방에 닿게 되는 구조였다. 계단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나는 마지막 층계참에서 희미한 불빛을 확인하고 평평한 나무 바닥에 뛰어내렸다. 대낮인데도 창문이 없어 어둑했다. 책상과 선반 위에만 촛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 위에 둘둘 말린 담요가 움직였다. 뒤이어 기침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제대로 찾아왔다는 데 안도했다. 그것도 잠시 나발 아저씨가 몸을 일으키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는데 손이 절로 코로 갔다. 먼지 내와 곰팡내에 사람의 체취까지 섞인 악취가 보통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손을 코에서 떼고 나발 아저씨에게 다가가 빵 봉지를 건넸다.

나발 아저씨는 허겁지겁 빵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기 때문에 아저씨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다락방 안을 둘러보았다. 탁자 위에 세워진 작은 직사각 탁상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흑백사진 한 장이 유리덮개 안에 끼워져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컵에 꽂힌 촛불을 들어 사진 가까이 대었다. 오래된 흑백사진인 때문이기도 했지만 유리표면에 닿은 불그레한 촛불 빛에 사진이 군데군데 하얗게 보였다. 하지만 날렵하게 보이는 비행기와 그 앞에 군복 입은 한 남자가 군모를 가슴에 벗어든 채 서 있는 걸 알아볼 수는 있었다. 자세히 보니 청년이었는데 치아가 보이도록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저씨, 이 사진 속에 있는 사람 아저씹네까?”

나발 아저씨는 대답하지도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입 안에 빵을 우겨넣기만 할 뿐이었다.

“아저씨 뒤에 있는 건 미그전투기 아닙네까?”


“…….” 꾸역꾸역 삼키는 빵과 함께 내 말까지 삼켜버렸는지 나발 아저씨는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입 안 가득 우물거리기만 했다. 나는 나발 아저씨의 얼굴을 응시하다 무안해졌다. 무슨 말을 건네도 너는 지껄여라 나는 관심 없다는 식으로 아저씨는 묵묵부답이었다. 말 걸기를 포기한 나는 의기소침해져서 밖으로 나와 버렸다. 툴툴거리며 안마당을 지나다가 하릴없이 발길질을 했다. 발끝이 딱딱한 것에 걸리자 몸 중심이 휘청하면서 넘어질 뻔했다. 무성한 잡초 때문에 땅바닥에 비죽 나온 사금파리를 보지 못한 것이다. 놀란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오랫동안 숨 쉬지 않고 잠수를 하고 난 뒤만큼이나 바깥공기는 달았다. 시원하고 단 공기 때문이었을까. 머릿속까지 확 환기가 되는 기분이었다.

순간 확인하고 싶은 것이 반짝 떠올랐다. 나는 몸이 달아올랐다. 달리기 시작했다. 하얗게 내리꽂는 햇살에 눈이 부셔서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이마에 댄 채 달려야 했다.

가게로 들어서자마자 쇼윈도를 살폈다. 전시용 모형들 중에 미그전투기가 장갑차 뒤로 비스듬히 동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빨간 세일 딱지가 붙은 그것은 조금 전 다락방에서 본 그 전투기가 틀림없었다. 바닥에 부착된 스티커에는 정확히 ‘미그19전투기’라는 모델명이 찍혀 있었다. 낯선 곳을 지나다 조금 열린 집 대문을 발견하고서 문틈을 기웃대듯 나는 모형 미그19전투기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문이 활짝 열려 환한 빛 속에서 집 안의 구석구석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쇼윈도에 얼굴을 들이대던 나발 아저씨의 모습이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졌다. 모형일 뿐 날지 못하는 그것을 보며 나발 아저씨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3

수업이 끝나자 교문 밖으로 아이들이 무리지어 쏟아졌다. 필록이와 앞서 걷던 창용이가 턱짓을 하며 말했다.

“나발쟁이 또 보네.”

골목 모퉁이에 나발 아저씨가 서 있었다.

“공원에서 본 그 비렁뱅이잖아.”

“그래. 오래전에 탈북한 사람이라더라. 잊을 만하면 가게에 나타나거든, 우리 사장 여사가 아주 질색한다니깐.”

필록은 아이들 사이에 서 있던 나를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야, 종안이 넌 저 나발쟁이랑 대화가 좀 통하겠구나? 하하.”

창용은 필록의 말에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 그렇다니까 사모님이 하도 질색해서 전에는 내가 나가달라고 아무리 말해도 꿈쩍도 안 하는데, 종안이 녀석이 뭐라고 하니까 말을 듣더라고. 역시 같은 북한 사람이라 통하는 게 있나봐.”

같이 걷던 아이들이 웃었다. 그들의 웃음소리를 등에 느끼며 나는 혼자 가게로 갔다.

나는 창고에서 플라 모델 상자를 정리했다. 창고 문에서 왼쪽으로는 재고품목들이 쌓여 있다. 쌓인 상자들 중 유독 미그19기 상자에 시선이 갔다. 정리할 때마다 보는 상자였다. 그런데 왠지 그것을 보자 평소와는 달리 숨쉬기가 빨라졌다. 나는 창고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미그19기 상자를 바라보았다. 까짓 꺼 하나쯤 …. 손님이 뜸한 시각이었다. 열린 창고 문틈으로 가게 안을 살폈다. 사모님은 전화통화 중이었고, 창용이는 가게로 아직 오지 않았다. 조도가 낮은 전구 아래 상자 더미의 그림자가 바닥에 넓게 누워 있었다. 나는 그 그림자를 밟으며 소리 내지 않고 재빨리 움직였다.


버려진 집 앞에 이르자 내 그림자도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둠 한 가운데 서 있었다. 낮에 한번 와 본 뒤로 밤에 오기는 처음이었다. 잡초를 밟으며 안마당을 지나 마루 한복판 쯤 왔을 때였다. 어디선가 고양이의 냐옹,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움칫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침을 힘겹게 목구멍으로 넘겼다. 버려진 집에 들락거리는, 배고픈 고양이일 뿐이라고 가슴을 자꾸만 쓸었다. 먼지 날리고 곰팡내 나는 곳이지만 문갑, 책장, 탁자 따위의 물건들이 있었다. 고양이는 그런 텅 빈 가구 어디쯤 웅크리고 있다가 인기척에 경계의 신호를 보낸 것뿐이다.

긴장을 털어내며 나발 아저씨가 있는 다락방으로 방향을 틀었다. 왼쪽으로 열 걸음쯤 되는 곳에 계단이 있었다. 걸을 때마다 나무계단에서 삐익, 소리가 났다. 부서져 내릴 것 같은 불안한 소리였다. 계단을 한발 한발 오를수록 낮에 왔을 때 본 적이 있는 이 층 방에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문득 한기를 느꼈다. 벽에 뚫린 커다란 구멍 같은 방 안에는 벽마다 무언가를 걸어놓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또한, 뭉쳐진 먼지 덩어리와 부서진 살림 집기 따위들이 굴러다녔다. 누군가 살았던 흔적은 음산한 기운과 뿌연 먼지뿐이었다. 낮에도 그랬는데 귀속을 파고드는 삐익, 소리에 정말 유령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어깨가 절로 움츠러졌다.

“유령이 나온다고?”

얼마 전 필록이가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에 놀라던 일이 생각났다.

“그래, 유령 나온다는 소문 파다한 걸.”

옆에 있던 한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 별일이네. 우리 아버지 얘기로는 공원 뒤쪽 그 집이 있는 일대가 재개발될지 모른다는데, 웬 난데없이 유령 소문이 나도냐. 야, 창용이 너 들어가 봤니?”

창용이는 화장실 창문 쪽으로 얼굴을 돌려 담배연기를 후, 하고 뱉다가 관심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필록이는 아이들을 둘러보며 그 집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는지 들어가 본 사람이 있는지 다시 손 들어보라고 했다. 나는 뜨끔했다. 필록이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 집에 접근하지 않길 바랐다.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을 내가 퍼뜨린 건 그런 바람 때문이었다. 유령 소문은 효과가 있었는지 그 근철 얼씬거리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사실 폐가에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은 어떻게 보면 아주 거짓말도 아니었다. 유령 같은 사람이 살긴 사니까.

마지막 층계참에 이르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우적우적 씹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락방의 평평한 나무 바닥에 뛰어내렸다. 나발 아저씨가 나무의자에 앉아 시든 사과를 베어 먹고 있었다. 내가 촛불 가까이 다가가자 나를 반기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경계하는 기색은 없었다. 나발 아저씨는 사과를 씹던 입을 손등으로 훔치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내 손에 들린 플라 모델을 힐끔거렸다. 나는 얼른 손에 든 걸 나발 아저씨 눈앞에 내밀며 말했다. “미그 19기라요.”

나발 아저씨는 말없이 미그 19기를 두 손에 받아들었다. 나는 아저씨의 표정을 살피면서 탁자 위에 탁상사진액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저씨 사진 속에 이거 미그19기 맞디요?”

“…….”

“사진 속에 이 사람 아저씨 맞디요? 지금 모습이랑 너무 달라 처음엔 못 알아봤습네다.”

“…….”

나발 아저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그19기를 이리저리 뒤집었다 기울였다하면서 살펴보기만 했다.

“아저씨 미그 19기 조종사 맞디요?”

“…….”

“고렇게 암말 안 한다고 내가 못 알아볼 줄 아십네까? 이야, 실제로 이 전투기를 몰았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콩닥콩닥 뜁네다.”

나는 들뜬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나발 아저씨는 나를 슬그머니 건너다보았다. 가게에서 나가달라고 말했을 때 내게 주었던 멍한 눈빛이 문득 생각났다. 지금 나를 보는 나발 아저씨의 눈빛은 그때와 달랐다. 이내 시선을 거둔 아저씨는 한 손에 미그19기를 잡고 날아가는 모습을 만들어 보였다. 잠시 뒤 아저씨는 입술을 떼었다.

“미그19기는 초음속 전투기야, 나는 소리부터가 틀리고든. 이게 을마나 대단한가하믄 별명까지 있다 아이네. 베트남전에서 미제전투기를 하도 마이 격추시켜스리 미군 조종사들 사이에서 무덤대령이라는 불렸던거고든.”

기복 없는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다락방의 적막 속에서 들어서일까. 그 목소리에 나는 미그19기가 오래전 전투에서 활약했던 장면을 마치 본 것처럼 눈앞에 그릴 수 있었다. 나발 아저씨의 말 하나 호흡 하나가 정교한 조립부품처럼 내 머릿속에서 신속하게 조립되었다. 나는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나발 아저씨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발 아저씨의 입에서는 십 년 전 휴전선 비무장지대를 넘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내가 그때 비행기를 몰고 왔을 때만 해도 대단했오. 남한 신문기자들이 내 사진을 찍어대고 질문을 퍼부어댔오. 마치 영웅이 된 것처럼 대접을 받았었고든. 같은 핏줄의 자유의 나라에 안긴 소감이 어떠냐고 기자가 물었을 때 나는 무조건 꿈만 같다고,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고든.”

나발 아저씨의 눈빛은 촛불의 빛보다 더 가늘게 일렁였다. 나는 여전히 꿈만 같은지, 행복한지를 물었다. 곧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발 아저씨는 대답 없이 입에 소주병을 꽂고 꿀꺽꿀꺽 소주를 삼켰다. 대화는 끊어졌다. 한숨소리와 목구멍으로 소주가 넘어가는 소리가 기묘한 정적을 다락방 안에 퍼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갑자기 나발 아저씨는 미그19기의 몸통을 거머쥔 손을 바닥에 늘어뜨렸다.

“지금 뭐하시는 겁네까?”

나발 아저씨는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상체를 숙였다. 그리고는 늘어뜨린 손을 바닥 위로 그으면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미그19기는 일정한 각도를 유지한 채 나발 아저씨 손에 천장 높이로 들어 올려지고 있었다. 이륙? 그랬다. 이륙이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팔뚝만 한 미그19기 모형은 조금 전 다락방 나무 바닥을 박차고 이륙했다. 나발 아저씨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피이융, 하는 엔진 소리는 힘찼다. 신문지가 덕지덕지 발린 벽과 비스듬히 기울어진 천장은 하늘이 되었다. 칠이 벗겨진 밤색 탁자와 나무 바닥과 누덕누덕한 매트리스는 강과 산이 되었다. 미그19기는 궤도를 공전하듯 방 안을 날았다. 나발 아저씨의 다리는 전투기의 추진력이 되었다. 다리가 지나갈 때마다 바닥에선 먼지가 풀썩풀썩 피어올랐다. 다락방 가운데 쭈그리고 앉은 나는 먼지를 마셔 연방 잔기침을 해댔다. 그러면서도 빙빙 도는 미그19기를 보고 한참 웃으며 손뼉을 쳤다. 나도 빙빙 돌고 있었다.

현기증이 일었다. 그때 천장 가까이 날던 미그19기는 점점 탁자 위까지 내려왔다. 저공비행 중이었다. 플라스틱 전투기 날개 밑으로 미사일이 한없이 투하되고 있었다. 내가 가져온 코카콜라 캔 위에도 떨어졌고, 때로 얼룩진 매트리스 위에도 떨어졌다. 반복된 공전은 어쩐지 날리는 먼지 속에서 간절한 기원이 되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발 아저씨도 현기증이 나는지 숨을 헐떡이며 매트리스 위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미그19기를 타고 멀리 날아본 것 같다, 하고 토막 난 말을 가뿐 날숨에 실어 내뱉었다. 먼지가 날려서 환기하고 싶었지만 다락방에는 창문도 없었다.

4

플라 드림 창고 안은 초가을 저녁인데도 더웠다. 긴장한 탓이었다. 처음도 아닌데 문구용 칼을 든 손이 떨렸다. 쌓인 상자들 중간쯤 한 상자의 봉인스티커를 막 벗겨냈다.

“야, 종안이 너 제법이다. 북한에서 놀던 가닥이냐?”

뒤통수에 꽂히는 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화장실을 한번 가면 십 분이 걸리는 창용이가 일 분도 되지 않아 창고 문 앞에 서서 웃고 있었다.

“…….”

“처음엔 긴가민가했는데, 너 제법 간도 크다.”

“…….”

“어떻게 할까. 모든 걸 사장님한테 말해버릴까. 사모님이 알면 아주 실망할 텐데 말야. 안 그래?”

창용의 말에 나는 움찔했다.

“…….”

“너 내 말만 잘 들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냥 넘어갈 수 있지. 네가 지금까지 훔친 것보다 더 근사하고 비싼 모델도 갖게 해줄 수 있어.”

창용은 눈을 번득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미그19기 외에도 플라 모델 여러 개를 빼냈다. 어렵지 않았다. 처음 미그19기를 빼낸 일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자 나는 대범해졌고 요령도 생겼다. 삼일 뒤 두 번째로 헬리콥터를 빼냈다. 그런 뒤로는 삼사일 간격으로 틈을 엿보았다가 장갑차나 항공모함 따위를 빼냈다. 그저께엔 잠수함도 손에 넣었다. 나를 믿어준 사모님을 생각하면 이러면 안되, 하며 손을 거두려다 가도 플라 모델을 갖고 싶은 걸 어쩔 수 없었다. 고가로 소량 매입해 들여온 플라 모델은 빤하기 때문에 건드릴 수 없지만 저가품목들은 비교적 빼내기 쉬웠다. 방법은 간단했다. 잘 팔리지 않는 것 위주로, 상자는 그대로 둔 채 속 내용물만 표나지 않게 빼내는 것이다. 빼낸 플라 모델은 속 비닐 포장째 쓰레기봉투에 담아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장소에 둔다. 그런 다음 퇴근할 때 집에 가져가 조립을 했다. 이 창고에 재고품으로 쌓여 있는 것 중에는 속에 다른 것들로 채워진 플라 모델 상자들이 섞여 있다. 그런 방식으로 슬쩍한 모델만 해도 스무 개가 넘는다.

“무슨 말이네? 더 근사하고 비싼 거이?”

“이런 거지 좁밥 쥐새끼 같은 놈. 쥐새끼처럼 남들 찾지도 않는 싸구려 모델들만 창고 구석에서 살살 속 파먹고 말야. 꿈을 좀 크고 높게 가져 봐라. 쨔샤.”

“그러니끼니 내래 이제 어드러케 하면 된다는 기야. 네가 원하는 거이 뭐이가?”

“차차 알게 될 거다.”


불안한 마음을 다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와 달리 불이 켜져 있다. 수영 형이 들어와 있었다. 주방 벽에 붙은 작은 식탁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형은 불콰해진 얼굴로 내게 밥은 먹고 다니냐, 하며 명랑한 표정을 지었다. 밤늦게 어딜 쏘다니다 왔느냐고 다그치지도 않았다. 억지스런 미소는 금방이라도 금이 가 부서질 듯 위태했다. 수영 형의 그 모습에 나는 명치 부근이 꽉 조여 오는 것을 느꼈다. 식탁 맞은 편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한밤중의 주방에는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벽시계의 초침소리만 있는 듯했다.

며칠 전이었다. 수영 형은 출근하려고 운동화를 신다말고 아랫배를 움켜쥐었다. 배가 아픈지 식탁 위에 야채트럭 시동키와 지갑을 던져놓고 화장실에 급히 들어갔다. 나는 형의 반지갑을 열었다. 몇 장의 지폐가 끼워져 있는 칸 위로 알록달록 스티커커플사진이 꽂혀있었다. 혜원누나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었다. 용돈이 떨어져 만 원짜리 몇 장 빼내려던 생각이 싹 달아났다. 형은 헤어진 지 석 달이 넘었는데도 그 사진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지갑을 원래대로 두고 개수대 앞에 서서 밥그릇을 씻는 척했다. 지갑 속의 사진을 보기 전엔 새벽까지 몸을 혹사하며 일하는 형을 지독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는 지금의 형은 지독하기는커녕 움켜쥐면 금방이라도 몸뚱어리 전체가 바스러질 것만 같았다.

내가 수영 형과 동거를 하게 된 건 양말 두 켤레 훔친 일이 계기가 되었다. 그깟 걸로 경찰 아저씨의 손에 뒷덜미를 잡힌 건 정말 창피한 일이었다. 지갑이나 좀 더 쓸 만한 물건을 슬쩍하던 거에 비하면 시시한 거였다. 물론 처음부터 남의 물건에 손을 댔던 건 아니었다.

나는 하나원을 수료하고 쉼터에서 생활했다.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쉼터를 운영하는 아저씨한테 가진 돈을 뜯겼고 툭 하면 휘둘러대는 주먹질에 시달렸다. 내가 그런 폭행을 당하고 있을 때 말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왜 그러냐고 누가 물으면 쉼터 아저씨는 내가 되먹지 못하고 불량해서 버릇을 고쳐주는 거라고 말했다. 물었던 사람은 그뿐 쉼터 아저씨의 폭행을 묵인해버렸다. 견디다 못해 뛰쳐나왔지만 낯선 이곳 어디에도 갈 곳은 없었다. 피씨 방을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했던 피씨 방에서 손님의 시계가 없어진 일이 있었다. 어두컴컴한 피씨 방에서 열 시간 넘게 게임에 열중하던 손님은 빨간 눈을 들이대며 언성을 높였다. 다짜고짜 시계가 없어졌다며 나를 물고 늘어졌다.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손님들도 주인아저씨도 나를 도둑으로 몰았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일한 대가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쫓겨났다. 가는 곳마다 나는 이방인이었다. 얻어먹거나 훔치는 일은 아침에 눈떠 배가 고프면 반복되는 일상이 되었다.

시시한 양말 두 켤레에 내 뒷덜미를 움켜잡은 경사 아저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수영 형에게 나를 보냈다.

“이 녀석 자네가 데리고 있어보지 않겠나.”

수영 형은 경사 아저씨 옆에 어깨를 움츠리고 서 있던 나를 유심히 뜯어보았다. 거지새끼를 눈앞에 보듯 코를 막으며 웃기도 했다. 기름기로 눌어붙은 더벅머리에 시커먼 얼굴이었고 옷도 거지꼴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네 고향은 어디네?”

고향을 묻는 말로 수영 형은 나를 데리고 있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자신도 나처럼 나 홀로 탈북해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어른스런 말투로 말했다. 경사 아저씨는 수영 형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내게 말했다.

“지난해 서울에 있는 대학까지 졸업한 형이니까 너도 형의 반만이라도 닮도록 노력하면 여기서 잘 살 수 있어.”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트럭 운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힘든 시기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일 것이고, 건실하다는 사람도 허우적대는 현실에서 그런 형을 백 퍼센트 닮아봤자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오락가락하던 중인데 형이 다가와 내 어깨를 툭 쳤다.

“잘 지내보자.”

한집에 같이 살게 되면서 형은 나의 사고방식과 생활습관에 간섭을 했다. 이곳에서 살아가려면 머릿속에서부터 밥 먹는 습관까지 철저히 이곳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거였다. 결혼하기로 했다던 혜원 누나와 헤어진 뒤로 간섭은 더 했다. 짜증이 났다. 그래도 오갈 데 없는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충고까지 해준 사람은 수영 형이 처음이었다. 나는 형의 빈 잔에 소주를 가득 부어주었다. 초점 잃은 형의 두 눈이 반짝였다.


아무 일 없이 일주일이 지났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도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사장 부부에게 창용이가 무슨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쫓기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내 나이 아직 열여섯이라는 생각과 이미 열여섯이라는 느낌이 뒤섞여서 막연할 뿐이었다. 수영 형한테 얹혀살면서 손 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용돈을 벌어 쓸 수 있는데다, 플라 모델을 항상 볼 수 있는 플라 드림만큼 최상의 일자리는 없었다. 창용은 사장 부부가 부를 때마다 깜짝 놀라는 내 얼굴을 곁눈질하며 웃고 있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빠져나오는 길이었다. 골목 모퉁이에서 창용이가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잠시 할 이야기가 있다며 공원으로 가자고 했다. ‘녀석은 이제야 내게 원하는 걸 말하려는 심산인가.’

온갖 생각이 다 떠올랐다. 창용은 공원의 공중화장실 옆 벤치로 나를 끌고 갔다.

“거기 앉아.”

나는 머뭇거리며 벤치에 앉았다. 공중화장실 뒤쪽에서 필록이를 비롯해 다섯 명의 녀석들이 건들거리며 걸어 나왔다. 플라 드림에 자주 오는 마니아들이었다.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필록이가 말했다.

“어서 와라, 종안이.”

나는 다섯 명의 녀석들을 차례로 쳐다보다가 필록이를 응시했다.

“내가 너한테 긴히 할 말이 있어서 널 데려오라고 부탁했지.”

“나한테 무슨 말?”

“너 슬쩍하는 솜씨가 좋다며?”

“……?”

나는 창용을 쳐다보았다. 창용은 어깨를 으쓱하며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그래서?”

“쥐새끼처럼 여러 번 슬쩍했을텐데 조립한 거 구경 좀 하자. 새꺄. 우리 모임에 한번 갖고 나와 봐. 우리 모임은 사실 뭐 그런 너절한 모델은 별로 취급하진 않지만 이제 너도 모임에 끼워줄까 생각해.”

“그래, 그거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네?”

“또 있어. 아주 중요한. 너의 협조가 필요한 멋진 계획에 대해서.”

“뭐이가?”

“에이 짜식, 종안이 인마 얼굴 풀어. 이제부터 넌 우리 모임 멤버가 된 거야. 창용이가 네 얘기 많이 하더라.”

나는 창용을 쳐다보았다. 창용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말인데 플라 모델 동호회 일주년 모임을 크게 할 생각이다. 새로 회원가입도 받고, 기존회원은 각자 최근에 조립한 근사한 모델을 선보이고 정보도 교환하고 친목도 하고 그럴 생각이거든. 그래서 창용이랑 이야기했는데. 창용이가 아주 멋진 정보를 주었어. 내일모레 플라 드림에 새로 입고되는 것들이 아주 빵빵한 거라고 말야.”

창용은 벤치 등받이에 걸터앉았다.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흔들었다.

“내가 목록을 대충 봤는데 이야, 정말 대단한 것들이야. 여기 봐봐. 우리 마니아 기존회원들이 들으면 눈이 확 돌아갈 것들이더라고.”

필록이가 내 옆에 붙어 앉으며 말했다.

“그런데 씨, 나 엄마한테 신용카드 압수당해서 살 수가 없잖아. 게다가 상당히 고가라 마니아회원들이 모두 다 살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이번 일은 스릴 있고 또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이번 일이라니?”

“이 자식 알면서 능청떨기는. 털자는 얘기야 인마. 너도 당연히 우리 계획에 동참해야 하고.”

“뭐이! 내래 아이 하겠오.”

“무슨 소리. 네가 빠지면 안 되지. 너처럼 솜씨 좋은 녀석이 동참해줘야지 우리 계획이 성사되는 거라고. 만약 계속 거부하면 네가 지금까지 창고에서 훔친 사실 다 불어버린다. 어떻게 할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디데이는 내일모레야. 입고날짜가 사모님이 아니라 사장새끼가 있는 날에 맞춰진 건 우리에겐 굉장한 기회라고.”

창용은 눈을 번득이며 더 없는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사장 부부는 번갈아 저녁 이후 가게에 남아 뒷마무리를 했다. 사모님이 남는 날은 하도 꼼꼼하게 문단속이며 물건정리를 하게 해서 한눈팔 사이가 없지만 사장님이 남는 날은 매사가 헐거웠다.

“입고목록 빼내다가 사장새끼 수첩을 슬쩍 들쳤는데 말야, 수첩 모퉁이에 갈겨쓴 메모가 있더라. 사모님 없을 때 간드러진 목소리로 전화받으면서 뭔가 메모하더니만 그게 그날 저녁 요거 만나는 시간이랑 장소더라고.”

창용은 실눈을 떠가며 새끼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필록이가 킥킥거리며 내게 말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 그럴 필요 없다니까. 넌 그냥 우리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아무 일도 없어. 너도 이 목록에서 네가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는데 뭘 망설이냐.”

“내가 원하는 거 아무거나?”

필록이가 내 눈 앞에 종이를 들이댔다. 창용은 눈짓으로 종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내가 사장새끼 몰래 복사 뜨느라고 십년감수 했잖냐. 이번 것들 짱으로 좋아. 자 봐.”

사장님이 갖고 있던 걸 난 보지도 못했는데 창용은 언제 빼내서 복사까지 떴는지 모를 일이었다. 필록이가 내 눈앞에 들이댄 종이를 손에 쥐어들고 훑어보았다. 하나같이 탐나는 것들이었다. 그중 내 눈에 들어온 이름이 있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그19기가 끼어 있다니. 게다가 무선조종으로 하늘을 나는 모델이었다. 쇼윈도 진열대에 이십 프로 세일딱지가 붙은 날지 못하는 싸구려 미그19기와 달랐다. 필록은 내 손에서 종이를 홱 낚아챘다.

“인마. 이번에 제대로 뽀다구 나는 걸로 가질 수 있다니까.”

필록의 말이 끝나자 창용이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종안이 네가 정말 우리 친구가 될 수 있는지는 이번 일을 함께하느냐 마냐에 달렸어.”

나는 아이들과 헤어져 돌아오면서 필록이의 말을 떠올렸다.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는데 뭘 망설이냐’

마뜩치 않은 구석이 있었지만 기대되는 건 사실이었다.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걸으면서 거리 여기저기에 시선을 대어보았다. 아저씨는 어디서 배회하고 있을까. 만나면 날 수 있는 미그19기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리모컨을 아저씨 손에 쥐어 줄 테니 실컷 날려보라고 말해줄 생각이다.


이틀 뒤 손님이 뜸한 시간을 틈타 고향 빵집 할아버지에게 갔다.

“어서 오너라, 얘야. 빵 하나 주련?”

할아버지가 주는 빵은 옥수수 빵이었다. 할아버지가 개발한 것으로 다른 빵집에서는 낼 수 없는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있었다. 이 동네에서 고향 빵집의 옥수수 빵은 인기품목이었다. 아무래도 할아버지는 어딘가에 숨겨둔 고향의 냄새를 옥수수 빵에 솔솔 뿌려 놓는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고서는 길 건너 파리바게트나 크라운베이커리 같은 고급스런 빵집보다 손님이 많을 리가 없었다. 고향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입맛은 다 똑같은 모양이었다.

할아버지는 전쟁 때 아내와 아들 둘을 북에 두고 왔다고 했다. TV에서 이산가족 상봉에 관한 뉴스가 나오면 할아버지는 우울해했다. 언젠가 빵집 안에 비치된 TV 앞에 앉아 눈가를 손등으로 훔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할아버지 우시는 기야요, 하고 물으면 늙으면 저절로 눈물이 나는 법이라며 웃곤 했다. 이산가족 상봉을 하려고 시도를 했지만 아직 연락도 없고 생사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함께 옥수수 빵을 만드는 할머니가 귀띔해 준 말이었다. 내가 빵집에 들를 때마다 반겨주는 이유는 내가 북에서 왔기 때문일까. 아무튼 나는 할아버지 앞에서만큼은 북한 억양이 튀어나올까 봐 조바심치지 않는다.

“아닙네다, 빵 먹으로 온 거이 아니고요. 혹시 나발 아저씨 오늘 보셨습네까?”

“에휴, 그 양반 술 좀 작작 마셔야 할 것인데. 오늘 오전에 보긴 봤다. 말도 마라. 술이 잔뜩 취해설랑 구걸한답시고 동네 애 엄마한테 다가가서 놀라게 했지 뭐냐. 대낮에 길거리에서 큰 소리가 나서 사람들이 다 한마디 하더라.”

나는 한숨이 나왔다. 탈북해서 부랑자로 전락한 나발 아저씨를 좋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얼마 전 TV뉴스에서 탈북자가 강간을 했네, 살인을 했네,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때 동네 사람들은 나발 아저씨를 슬금슬금 피해 다녔다. 내 경우도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언젠가는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를 위험인물인 것만 같았다. 따가운 시선은 가시가 되어 몸 어딘가에 지금도 박혀있는지 뭉근히 아려왔다. 나발 아저씨를 두고 안 좋은 소리가 나돈다는 얘길 들으니 몸 여기저기가 더 쑤시는 것 같았다. 그럴 땐 북도 남도 아닌 나만의 요새 속에 숨어들어 테러리스트를 꿈꾸는 게 최고다. 전투기를 출격시키고, 정찰기를 띄워 요새를 지키는 상상 말이다.

아랍테러단체들이 비행기를 납치하고 인질극을 벌인다고 들은 적이 있다. 문득 그들처럼 복면을 한 내가 인질들을 나의 요새에 끌고 와 무언가를 요구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남한을 상대로 한 인질극에서 나는 탈북자들을 차별대우하지 말라고 요구할 생각이다.

수영형 일만 하더라도 생각만 하면 가슴이 탁탁 막혀온다. 탈북자라고 여기저기서 외면당하니까 형은 괜히 나한테 화풀이하느라 잔소리를 해댔다. 석 달 전만 해도 혜원누나와 찍은 스티커커플사진을 내게 보여주며 행복해했었던 형이었다. 수영형이 탈북자라는 사실을 안 혜원누나 부모가 헤어질 것을 강요하기 전까지 말이다.

학교에서 돌아와 집 대문을 열려는데 안에서 톤이 높은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만큼 얘기했으면 알아들었겠죠? 안 되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되는 겁니다.”

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문밖에서 나는 형의 목소리가 힘겹게 꺼져가는 것을 듣고 말았다. 형은 중년여자로부터 다짐받는 말을 되뇌고 있었다. 근래 형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무튼 범죄자나 이방인 대하는 듯한 시선만 아니라면 좋을 것 같다. 북한에도 요구해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어이없는 건 거긴 민간인 인질극이 통하지 않는 나라라는 사실이다. 이미 둑 무너지듯 탈북자들이 쏟아져 나오는 마당에 인질 협상이 긴장을 줄 만큼 강력한 것은 아닌 거다. 북도 싫고, 그렇다고 남쪽에도 정붙이지 못한다면 선택은 어디일까. 하긴 나처럼 요새라도 없으면 숨 쉴 수 있는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요새는 없는 것이 없는 다락방이다. 항공모함, 탱크, 잠수함에서 전투기 그리고 왕년 미그19기 조종사도 있다. 다락방에서 나발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묘한 느낌이 들곤 했다. 탱크와 전투기가 촛불의 일렁이는 빛에 흔들려 실제의 크기로 커지는 느낌 말이다. 웅장한 기계음을 발하며 움직여 줄 것 같은 플라 모델들. 눈을 감으면 나발 아저씨가 올라탈 수 있을 만큼 그것들은 커졌다. 어쩌면 허공을 가르며 날 수 있는 미그 19기가 곧 있으면 요새에 추가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발 아저씨는 어디서 배회하고 있는 걸까.

가게로 돌아왔다. 창고 문 가까이 새로 입고된 플라 모델 상자들이 포개어져 있었다. 사장님은 볼펜을 낀 손가락으로 상자를 톡톡 건드리며 수를 세는 중이었다. 나는 순간 눈 부위가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야, 종안아 이리로 와서 이거 모델별로 수량체크 좀 해봐. 가게 안보고 어딜 돌아다니다 오냐. 바빠 죽겠는데.”

나는 쭈뼛거리며 사장님에게로 갔다. 사장님 앞에 쌓여 있는 상자 더미는 노끈도 풀지 않은 채였다. 물건은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사장님은 급한 듯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펜과 입고된 모델 목록을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적힌 모델명과 가격대를 훑어보았다. 며칠 전 공원에서 보았던 목록 원본임을 금세 알아보았다. 종이를 쥔 손이 조금 떨렸다. 사장님은 수량을 다 체크한 뒤 창고 안에 넣고 마니아 회원들에게 입고정보를 이메일로 날리라고 지시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은 계속 모델 목록이 찍힌 종이에 가 있었다.

문득 시선을 돌렸다. 계산대에서 손님 물건을 계산하던 창용과 눈이 마주쳤다. 그때 사장님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말야, 오늘 급한 약속이 있어서 먼저 나가봐야 하니까 너희 뒷마무리 잘하고 퇴근해야 한다.”

사장님은 급하게 옷걸이에서 재킷을 빼 걸쳤다. 못 보던 고급스런 재킷이었는데 안주머니에 들어갔다 나온 손에서 칙칙, 소리가 들렸다. 수고해라, 하며 나가는 사장님한테서 강한 향수냄새가 풍겼다.

5

“야, 감시카메라 전원 꺼.”

창용은 목소리를 낮추어 내게 명령했다. 나는 창용의 지시대로 감시카메라 전원을 껐다. 손이 떨렸다. 불을 끄고 셔터를 내렸다. 뒷문으로 필록이와 다섯 명의 아이들이 들어왔다. 목장갑을 낀 손은 각각 자루를 들고 있었다. 필록이와 창용이는 창고로 들어가 새로 입고된 모델들을 자루에 담았다. 나는 주춤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행동할지 창용이는 별다른 말을 해주지 않았다. 필록이를 따라온 아이들은 매장 진열대에 있는 상자들을 끄집어내어 바닥에 팽개치고 있었다. 싸구려 모델들을 마구잡이로 자루에 담았고, 벽과 쇼윈도에 전시용으로 있던 플라 모델들까지 부서뜨렸다.

“야, 너희 이럴 필요는 없지 않네.”

나는 아이들의 행패를 저지했다.

“짜식, 비켜봐. 이래야 무슨 강도라도 든 것 같잖아.”

아이들이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었다. 내 팔을 뒤로 묶어 바닥에 주저앉혔다. 창고에서 불룩한 자루를 들고 나온 창용이 날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게 오늘 너의 임무야. 어렵지 않아. 오늘 이렇게 강도한테 당한 거로 연기하면 그만이거든.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누군가 풀어주겠지. 넌 그냥 밤에 정리하고 문 잠그고 나오다가 강도한테 당했다고 그러면 되는 거야.”

나는 입까지 틀어 막혀 있어서 소리도 내지 못했다. 필록이가 정색하고 말을 덧붙였다.

“이렇게 해야 일 처리가 깔끔하지. 종안아, 낼 아침까지 수고해. 네 몫은 남겨 둘 테니까 걱정 말고. 다시 말해두지만, 넌 복면을 쓴 사람이 침입해 널 결박하고 돈이랑 플라 모델을 가져갔다고 말해야 해. 여러 명이라고 말하면 괜히 우리 모임이 의심받을 수도 있다고.”

가게는 어둠 속에 묻혔다. 바닥에 주저앉은 나는 일어나지도 못한 채였다. 어디선가 밤 공기의 서늘한 기운이 어두운 공간을 휘돌았다. 녀석들은 뒷문을 일부러 살짝 열어놓고 빠져 나간 모양이었다. 바닥에서 올라온 냉기가 결박된 몸을 서서히 마비시키고 있었다. 모든 게 순식간에 벌어졌다는 생각에 내 머릿속까지 멍해졌다. 내가 이렇게 어둠 속에 처박혀 버리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사물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였다. 진열대의 모서리, 바닥에 널브러진 플라 모델 상자들, 쇼윈도에 어질러진 플라 모델 조각들 따위. 가게가 도둑맞은 것이 아니라 내 머릿속이 온통 털려버린 듯했다.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는 무뇌아가 된 기분이 바로 이런 걸까. 열린 뒷문 틈새로 아스팔트를 치고 달아나는 타이어의 미끄러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가 사라졌다. 그런 소리 말고는 밤은 한없이 적막했다.

순간 다락방에서 이륙했던 미그19기가 저공비행을 하며 미사일을 투하하는 장면이 어둠 속에 그려졌다. 가게 안을 뒹구는 부서진 것들이 미그19기가 한바탕 일을 벌여놓고 간 흔적처럼 보였다. 그런 상상을 하자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하긴 내 모양새도 가게 안을 뒹구는 플라 모델 조각들과 다를 게 없었다. 던져지고 부서지고…. 하지만 어둡고 불편한 밤을 눈 꼭 감고 견디기로 한다. 내가 원하는 걸 가지려면 그 정도 어렵지 않다. 창용이가 말한 대로 강도당했다는 진술을 그럴듯하게 꾸며대기만 하면 아무 일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내 처지가 그렇게 억울하거나 황당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아니 너무 쉬운 방법이라고. 필록이가 약속한 내 몫을 생각했다.


“도둑이야!”

사모님의 호들갑스런 비명 때문에 잠에서 깼다. 벌써 아침인가. 추위에 떨다 새벽녘에 잠이 들었었다. 밝은 빛이 들이친 가게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진열대는 흐트러져 있었고, 바닥 여기저기 플라 모델 상자들이 뒹굴고 있었다. 벽과 쇼윈도에 장식해놓은 전시용 플라 모델들은 제자리를 이탈하거나 일부가 파손되어 있었다.

“이를 어째, 이게 무슨 일이람.”

사모님의 흥분된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나는 묶인 채 계산대 아래 바닥에 모로 누워 있었다. 때문에 사모님의 눈에 띄지 못했다. 사모님은 흐트러진 진열대와 열린 창고에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러다 현금 서랍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서야 계산대 쪽으로 다가왔다. 서랍에 손을 대려 하다가 바닥에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사모님은 내 입에 물려있는 재갈을 풀어주었다. 등 뒤로 묶인 손목과 발목도 풀어주었다. 신고한 지 십 분도 지나지 않아 경찰들이 유리문을 밀고 들어왔다. 가게 안의 광경은 그들 눈에도 명백히 간 큰 절도범의 소행으로 보였을 터였다. 가게가 털렸다는 소문을 들은 주변 사람들이 유리문 밖에서 기웃대며 소란스런 소리를 보태고 있었다. 다급히 달려온 사장님은 잔뜩 찌푸린 표정을 지었다.

사장 부부는 서로 떨떠름한 시선을 주고받을 뿐, 각자 우왕좌왕하며 경찰들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사모님과 말을 주고받던 경찰이 다시 내게로 왔다. 범인의 인상착의와 당시 상황을 집요하게 캐물었다. 경찰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주눅이 들어선지 찬 바닥에 결박된 몸으로 밤을 난 터여선지 담요까지 등에 둘렀는데도 나는 몸을 마구 떨었다. 하지만 나는 용케 의심받지 않았고 실수 없이 필록이가 시킨 대로 말했다.

“돈이랑 창고에 있던 고가의 물건이 상당수 없어진 거 보면 단순히 돈만 노린 게 아니라 플라 모델을 아주 좋아하는 놈인 것 같은데….”

경찰이 수첩에 메모를 하며 말했다. 그러자 다가온 사장님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바로 어제 꽤 고가인 희귀물건이 소량으로 입고되었는데 그게 몽땅 없어진 거 보면 어제 물건 들어온 걸 아는 놈일 겁니다. 참 종안아 어제 입고목록 회원들에게 이메일로 보냈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장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그렇다면 우리 가게에 자주 오는 놈 중에 범인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그 회원들이 몇 명이나 되죠?”

내가 대답했다.

“이백 팔십 세 명이야요.”

“휴우, 골치 아프군. 일단 그 명단 넘겨주세요.”

“종안아, 명단 뽑아드려라.”

“그래도 자주 오는 고객들 중에 수상쩍다 싶은 사람은 없나요?”

경찰이 사장님에게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사장님은 글쎄요, 하며 눈만 깜박였다.

창용은 오전 수업 중에 불려왔다. 경찰의 질문에 또박또박 답하며 아주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장 부부에게 다가가 당일 책임지고 늦게까지 남아있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 크다며 어른스럽게 죄송하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면서 경찰이나 사장 부부에게 내가 어떻게 진술했는지를 은근슬쩍 확인하는 걸 잊지 않았다. 창용은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슬며시 내게로 와서 어깨를 두어 번 툭툭 쳤다.


주위를 살피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밤하늘은 달도 별도 없었다. 우물 밑바닥에서 올려다본 시커먼 뚜껑 같았다. 저녁 무렵부터 바람이 불더니 밤이 되기도 전에 하늘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목 뒷덜미를 사정없이 치고 달아났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다. 공원 후문과 주택가 쪽에서 반짝이는 불빛에 바짝 몸을 낮추었다. 예기치 못한 누군가의 눈이 희미한 빛 속에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심장박동이 절로 빨라졌다.

무너진 담 안으로 발을 디뎠다. 잡초를 밟을 때마다 스삭,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깨진 기왓장을 밟았는지 발밑에서 뚝, 소리가 났다. 내가 내는 소리도 이런 어둠 속에선 이물스럽다. 작은 손전등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일부러 가져오지 않았다. 불빛이 새면 끝장이다. 최대한 어둠이 되어야 한다는 건 국경을 넘을 때 이미 터득했다. 발끝으로 가늠해 마루 위로 올라섰다. 걸음을 뗄 때마다 음산한 느낌이 와락 달려들었다.

여기 오는 길을 다른 날보다 유독 더 조심하고 긴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놈 때문이다. 무선 모형 미그19기. 놈을 쥔 손이 땀으로 미끈거렸다. 어제 하교 직후 필록이는 집 앞 골목에서 주위를 살피고서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너 입 뻥끗하면 어떻게 된다는 거 네가 더 잘 알거야. 우린 한 배를 탄 거라는 걸 명심해. 알아서 처신할 줄 믿겠어.”

“응, 알갔오.”

내 목소리는 들릴 듯 말듯 기어들어가 내가 생각해도 비굴하게 느껴졌다.

“이건 네 몫이다. 자.”

얼른 그것을 건네받아 품에 안았다. 누가 보기 전에 집으로 뛰어갔다. 집에 그것을 숨겨둔 채 가게로 출근했다. 가게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내내 들떠 있었다. 밤에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달려갔다. 무선모형미그19기 상자의 봉인스티커를 살짝 벗겼을 땐 꿈만 같았다. 비닐포장 안에서 꺼낸 설계도를 브이자로 벌린 다리 사이에 펼쳐 놓았다. 방바닥에 칼, 펜치, 니퍼, 에어브러시 등과 같은 조립공구들과 조립부품들도 잔뜩 펼쳐놓았다. 수영 형이 오기 전에 얼른 조립을 끝낼 생각으로 손을 바삐 움직였다. 방바닥에 펼쳐 놓고 조립하고 있는데, 만약 형이 느닷없이 들어온다면 곤란했다. 돈이 어디서 생겼냐, 돈 함부로 쓴다, 하며 잔소리할 게 뻔했다. 아니 잔소리보다는 수영 형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수영 형이 좌절에 빠져 휘청거린 지 여러 달째였다. 설계도를 들여다보면서도 나는 형이 야채트럭을 몰며 밤거리 어느 도로를 달리고 있을까, 생각했다. 실은 야채트럭보다 몇 톤은 더 무거운 마음을 모느라 안간힘을 쓸 형의 얼굴을 상상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시내의 복잡한 도로처럼 설계도가 잠시 눈을 헷갈리게 했다. 무선모형 미그19기를 나발 아저씨 얼굴 가까이 들이밀었다.

“아저씨, 이건 정말 납네다.”

“어드러케?”

“이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거라요.”

“정말 기리쿠나 야. 이거이 내가 몰던 백두번개야.”

“백두번개?”

“내가 붙인 별명이디.”

나발 아저씨는 사과 조각을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너무 고요했으므로 사과 한 조각 씹는 소리, 소주 한 모금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술 냄새가 지독하게 났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여러 번 들은, 미그19기를 몰고 귀순했다는 이야기가 아저씨 입에서 또 흘러나왔지만 나는 지겨워하지 않고 들어줄 수 있었다. 그건 나발 아저씨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화려한 모험이었기 때문이었다.

시커먼 얼굴이 불빛에 일렁거렸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촛불은 벽에 어둡고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었다. 무선모형미그19기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뒤집어보는 나발 아저씨의 벽 그림자는 수영 형이 내 생일날 보여주었던 영화 ‘킹콩’을 닮았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올라서서 전투기를 손에 들고 엉거주춤 등을 옹그린 딱 그 모습이었다. 손에 비행기를 든 나발 아저씨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커다란 벽 그림자는 어떤 미소도 없이 시커멀 뿐이었다. 영화를 볼 때만 해도 우렁찬 괴성을 지르던 킹콩이 무서웠었다. 지금 떠올려보니 킹콩의 커다란 몸은 이 세상 어느 인간보다 쓸쓸해 보였던 것 같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현대식 빌딩 숲과 손가락만 한 인간들의 시선. 킹콩에겐 낯설 뿐 어떤 위안도 되어주지 못했다.

“이거이, 지난번 공원에서 허공을 윙윙거리며 날던 것처럼 난다 이 말이네?”

나발 아저씨는 날개 표면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물었다.

“기린데 이거이 무척 비싼 거일 텐데, 웬 거인가?”

“…….”

어디서 난 건지 말할 수 없었다. 다락방에 즐비한 플라 모델들도 아저씨는 내가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사오는 줄 안다. 그것들은 대부분 내가 버는 적은 돈으로 하나나 두 개 정도 구입해도 부담되지 않는 싸구려들이었다. 리모컨으로 조종해서 하늘을 날 수 있는 무선 모형은 내가 살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남한에 와 십 년을 살았으니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정도 가늠하는 건 당연했다. 끝내 나는 말하지 않았다. 아저씨도 더는 묻지 않았다.

“요거이 한번 날려봐야겠구나 야. 제대로 나나 봐야 할 거 아이네.”

나발 아저씨는 무선 미그19기만 손에 든 채 앞장서서 밖으로 나갔다. 나는 깜짝 놀라 나발 아저씨의 등 뒤에 따라붙으며 말렸다. 야밤에 비행기를 날리다니 느닷없었다. 게다가 바람도 불고 비가 올지 몰랐다. 나발 아저씨는 막무가내였다. 이미 야산으로 오르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내 짧은 머리카락을 흩뜨렸다. 구름 때문에 달은 보이지도 않았다. 어두웠지만 주위의 사물들을 가늠할 수는 있었다. 나무 사이를 지나 잡초들을 밟으며 한참 올라갔다. 나발 아저씨는 여러 번 와 본 사람처럼 넓은 평지가 있는 곳을 금방 찾아냈다.

“여기가 좋겠오.”

공원전경과 삼거리 전체가 내려다보였다. 모두가 잠든 밤이었기 때문에 공원 안도 주택가도 거리에도 불빛은 겨우 셀 수 있을 정도로만 반짝였다. 어두웠지만 나는 나발 아저씨의 얼굴이 한껏 기대로 상기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발 아저씨도 내 얼굴에서 그런 기색을 보는 걸까.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우리는 은밀한 탈출을 시도하는 탈옥범들처럼 비장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머리카락을 흩뜨리고 볼을 때리며 달아나는 바람 따위 두렵지 않았다.

나는 아저씨의 손에 리모컨을 쥐여주었다. 설명서에 나와 있던 것을 기억해내며 요 버튼은, 이 스틱은 해가며 작동법을 알려주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나발 아저씨의 입술은 치아를 드러내며 조금씩 반달이 되었다. 나발 아저씨가 달처럼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발 아저씨의 손가락이 리모컨 버튼과 스틱 사이에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그19기는 나발 아저씨의 조종으로 밤하늘을 힘차게 날았다. 전투기모형이지만 비행은 여느 무선모형비행기와 같았다. 어스름 달무리 한가운데를 힘차게 갈랐고 나무들 위로 긴 선을 긋기도 했다. 턱을 쳐들고 미그19기를 바라보는 나발 아저씨의 입에 반달이 가득하다. 환상을 믿는 아이의 천진한 표정을 보는 느낌이었다. 정말 미그19기라면 나발 아저씨는 그것을 잡아타고 어디로 가고 싶을까. 일정한 각도로 수평으로 날던 미그19기는 조금씩 변화를 보였다.

미그19기는 넓게 곡선을 그리며 높이 올랐다가 내려오고 있었다. 지난번 공원에서 필록이가 선회성능을 자유자재로 선보였던 비행을 시도하려는 걸까. 나는 숨죽이고 미그19기의 비행을 주시했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미그19기는 두 번째 선회를 했다. 밤하늘 한복판을 동그랗게 오려내는 비행이었다. 완벽하게 세 번째 원을 그리면 밤하늘에 동그란 구멍이 뻥 뚫릴 것만 같았다.

‘구멍이 뚫리면 그 속으로 미그19기는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몰라’

나발 아저씨도 나처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발 아저씨의 표정이 미그19기 만큼 떠 있었다.

그때였다. 세 번째 선회를 하려던 미그19기가 키 큰 나무에 부딪혔다. 갑자기 불어댄 바람 때문에 조종된 각도를 이탈한 거였다. 떨어지면서 나뭇가지를 몇 번 퉁퉁 스치다가 잡초 위로 널브러졌다. 나발 아저씨의 얼굴에서 환한 달이 사라졌다. 백두번개라도 되는 듯 나발 아저씨는 한참 동안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백두번개가 풍요와 기회의 땅이라 일컫는 남쪽 이곳에 떨어진 건 불시착이었을까. 우주의 어느 낯설고 추운 혹성에 불시착한 우주 비행선처럼 말이다.

날개가 부러진 미그19기를 다락방에 두고 밖으로 나왔을 때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비에 온몸을 맡긴 채 달렸다. 집에 당도했을 때 밤 열두 시 반이 막 넘고 있었다. 불 꺼진 방문에서 수영 형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일상의 틈새를 힘겹게 통과하는 마찰음 같은 소리. 위잉, 소리를 내며 밤하늘을 날던 백두번개가 떨어지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형의 방문 앞에 우두커니 선 채 한참 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흠뻑 젖은 옷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6

“가게 여기저기 파손된 데도 복구해야 하는데, 좀 일찍 올 수 없니?”

이튿날 하교하자마자 가게로 갔지만, 사모님의 목소리엔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다.

경찰은 내가 넘겨준 회원명단을 중심으로 조사를 벌였다. 회원명단에는 이 지역 사람 외에 타지역 사람도 섞여 있었다. 때문에 조사는 사건 후 하루 이틀 내에 끝날 수 없었다. 그 사이 제품문의 메일이 여러 통 날아왔다. 사건 소식을 미처 접하지 못한 회원들이 보낸 것이다. 그 회원들을 조사대상자에서 지워나간다 해도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녀석들이 지문 같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사건발생 일주일째에 접어들었는데도 범인 추적은 난항이었다. 오히려 녀석들은 버젓이 제품문의 메일을 사건 다음날 보내오는 능청을 부리기까지 했다.

사모님은 팔짱을 낀 채 쇼윈도 앞에 서 있었다. 플라스틱 인형만큼이나 딱딱하고 차가운 표정이었다. 사장님은 계산대 의자에 앉아 장부만 하릴없이 뒤적거리고 있었다. 나는 사건 이후 가게 안에서는 숨소리 내는 것도 조심했다. 도둑맞은 물건과 현금까지 피해액수는 적지 않았다. 플라 모델 상자가 찌그러지거나 흠집이 생겨서 제값에 팔 수 없는 것이 많았다. 쇼윈도와 벽에 비치해놓은 전시용 플라 모델도 상당수 부서졌다. 게다가 사장님의 외도문제까지 터졌다.

도난사건이 있은 다음날 가게 안이 한참 어수선한 때였다. 가게에 들어서는데 유리문을 열기 전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가게 안에는 맞은편 스포츠용품점 주인아저씨와 미래부동산소개소 이 씨가 싸움을 말리고 있었다. 사모님이 사장님의 멱살을 쥐고 소리를 질렀다.

“또 계집질이야. 내가 지겨워, 지겨워서 못살겠다고 이놈아.”

사모님의 힘은 셌다. 자그마한 사모님에게 멱살이 잡힌 사장님이 맥없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사모님은 별렀다는 듯 끝장을 보겠다는 태세였다.

“내 저럴 줄 알았지. 사장새끼 쌤통이다. 여자한테 처바를 돈 있으면 나나 주면 좀 좋아.”

창고로 들어섰을 때 나는 상자들을 정리하던 창용이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플라 드림을 찾는 손님은 줄었다. 사장 부부 사이에선 찬바람과 한숨만 오락가락했다. 경찰은 용의자에 대한 단서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독이 오른 사모님은 담당형사에게 짜증스럽게 쪼아댔다.

“도대체, 도둑을 맞았는데 도둑이 없을 리 있겠어요? 수사를 하긴 하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이 근방에 절도전과가 있는 놈들도 다 조사해 보고, 회원명단을 중심으로도 백방으로 조사를 해본 결과 깨끗해요. 이쪽은 아닌 거 같고.” 서에서 전화가 온 건 담당형사가 돌아간 지 세 시간 후였다. 수화기를 귀에 바짝 댄 사모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라구요?”

창용의 눈빛이 흔들렸고, 나의 시선과 부딪쳤다. 서로 긴장한 기색을 확인한 창용과 나는 사모님을 쳐다보았다.

“어머, 기막혀. 말이 다 안 나오는군요. 네, 네, 곧 가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사모님의 얼굴은 며칠 전 사장님의 외도사실을 확인했을 때만큼 흥분해있었다. 현장사진을 들이밀며 사장님의 멱살을 잡아 흔들던 사모님의 표정을 다시 보는 듯했다.

사모님이 헉헉대며 통화내용을 말했다. 동네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치려 했다는 신고로 나발쟁이를 연행했다. 추궁을 하던 중 나발쟁이가 플라 드림 도난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낌새를 포착했고 여기에 미래부동산 이 씨의 제보로 나발쟁이의 거처까지 확보했다. 그곳이 야산 아래이면서 공원이 끝나는 지점에 버려진 폐가라는 사실에 모두 의아해했다. 형사들은 폐가를 덮쳤고 그 결과 폐가 이 층 다락방에서 다수의 플라 모델들을 발견했다. 전화내용의 요는 플라 드림 주인이 현장으로 직접 와서 없어진 물건들이 맞는지 확인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사모님은 창용이와 함께 유리문을 밀고 황급히 나갔다. 나는 심장이 마구 뛰었다. 가보지 않아도 그곳 선반과 탁자 위에 늘어놓은 플라 모델들 수십 점을 하나하나 다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들을 보는 순간 경악할 사모님의 표정이 눈에 선했다.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무조건 도둑맞은 플라 모델들이라고 형사에게 말할 게 뻔했다. 그 옆에 선 창용은 없어진 물건들이 맞다고 확인해줄 것이고.

사모님과 함께 유리문을 밀고 들어온 창용은 웃음으로 번들거렸다.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미스터리 현장을 보고 왔다는 표정이었다.

“야,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냐?”

“……?”

“그 나발쟁이가 플라 모델 마니아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날 없어진 물건 중에 가장 고가였던 무선모형 미그19기까지 발견됐어. 어떻게 된 거야? 왜 그 물건이 거기 있지?”

창용이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내 귀에다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무튼 잘된 일이야. 이번 일 우리한텐 아무 걱정거리가 없어진 거라니깐. 나발쟁이가 아주 우릴 도와준다. 안 그래?”

“…….”

아무 말 없이 나는 바닥에 대걸레를 밀었다.


사건은 종결되었다. 이틀 뒤 나는 쇼윈도 진열장 안을 정리하고 있었다. 새로운 전시용 플라 모델을 진열해야 했는데 그전에 바닥과 유리창에 낀 먼지를 닦아내는 중이었다. 플라 모델들을 한쪽에 밀어 둔 채 물걸레로 통유리를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문질렀다. 그런데 통유리에 나방이 붙어 있었다. 팔을 뻗어도 닿지 않는 높은 곳에 누런 나방이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힘을 주어 좀 더 위로 팔을 뻗어 보았다. 닿지 않았다. 통유리에 손을 대고 발끝을 세우다가 하마터면 중심을 잃어 옆에 놓인 플라 모델을 발뒤꿈치로 칠 뻔했다. 당황한 나는 자세를 바로 하여 다시 발끝을 세우고 팔을 뻗어보았다. 나방은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손에 든 물걸레를 정확하게 조준해서 나방을 향해 힘 있게 던졌다. 물걸레를 던지고 나서야 나는 나방이 통유리 안이 아니라 밖에 붙어 있었다는 걸 알았다. 물걸레가 유리면에 턱, 하고 닿자 나방은 진동을 느꼈는지 누런 날개를 파르르 떨며 유리면 위를 빙빙 돌더니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문득 정체를 알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솟구쳤다. 눈앞에서 사라진 나방이 나발 아저씨를 감옥에 가게 했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방이 앉았던 통유리 위쪽을 향해 물걸레를 팽개치듯 던졌다.

통유리 위에서 물걸레가 떨어지자마자 내 시선은 밖으로 향했다. 유리문 우측에서 좌측으로 분홍색 차 보자기를 손에 든 다방여자가 껌을 질겅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만 했다. 유리문 앞으로 다방여자가 지나가는 걸 어제도 보았다. 유리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옆 건물 일 층 미래부동산으로 들어갔다. 막 전화벨이 울렸다. 송수화기를 든 사모님이 아저씨를 불러오라고 말했다. 나는 유리문을 밀고 나갔다. 반쯤 열린 미래부동산 유리문 너머로 남자들이 가죽소파에 엉덩이를 파묻고 앉아 있었다. 플라 드림 사장님 옆으로 미래부동산 이 씨, 그 앞에는 길 건너 주유소를 하는 필록이 아버지 그리고 자주 소개소를 들락거리는 구청직원으로 보이는 남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보조의자에 앉은 다방여자가 보온병을 기울이자 커피 잔 위로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뛰어들어가 사장 아저씨를 부를까 하다가 문밖 고리 틈으로 귀를 세웠다. 누구의 것인지 한 목소리가 흥분하고 있었다.

“그런 배라먹을 도둑놈이 우리 가까이 있었다는 게 끔찍한 일이지요. 그런 놈들이 괜히 우리 주위에 밭 붙이지 못하게 해야 돼요. 비 피하고 바람 막아줄 곳이 없어야 했는데.”

“난 말이오. 그놈이 어디서 살 길래 훤한 대낮이면 멀쩡하게 출근하듯 거릴 어슬렁대나 궁금했어. 어디서 기어 나오나 했더니 그게 그 폐가였구만.”

“나도 몰랐어. 그 놈이 거기서 살고 있었다니.”

“혹시 그 놈 버려진 집에 보상금 노리고 점유권 행세 할라고 들어가 살았던 거 아닐까?”

“그야 모르지 아무튼 이번에 잡혀 들어간 거 잘 된 거라니까.”

“처음엔 쭈뼛쭈뼛 나는 모르는 일이오하고 멀뚱거렸대요. 벙어리처럼 말이죠. 그러다가 결국 순순히 자백하더랍니다.”

“그래, 그 폐가가 있으니까 그런 놈들이 기어들어가서 버티고 살았던 거야. 암. 이번 기회에 무슨 수를 써야 해요. 안 그래도 그 일대 재개발계획이 옥신각신 지연되었는데 이제야 일이 수월하게 되겠어요.”

“그 폐가가 문제였거든. 소유주를 찾을 수 있어야지 원. 게다가 그 놈이 거기서 들어가 산 게 아마 일 년도 안 되는 모양이니 점유권 같은 건 턱도 없지. 잘 됐어. 아주 잘 됐어요.”

“맞아요. 아주 잘 됐어요. 자 마셔요. 커피는 프림 팍팍 넣고 뜨거울 때 확 들어야 해.”

잘 된 일이라니. 나는 그냥 가게로 돌아갔다. 사모님에겐 사장님이 화장실 갔는지 미래부동산 사무실에 보이지 않더라고 말했다.

창고에 들어가 불도 켜지 않은 채 문을 닫았다.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틈새로 들어오는 빛을 응시하다 눈을 감았다. 미그 19기를 몰고 귀순한 이야기를 하던 나발 아저씨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내가 버려진 집에 플라 모델들을 두지 않았더라면 나발 아저씨는 감옥에 가지 않았을까. 야산에 올라 미그 19기를 날리며 환하게 웃던 나발 아저씨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상했다. 알 수 없이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정체불명의 두려움이 밀려왔다. 목구멍 속에서 꿈틀대는 수많은 말들을 누구한테 모두 털어놓고 싶지만 딱히 떠오르는 사람도 없었다. 수영형? 어림도 없는 일이다. 형에게 실망만 줄 뿐이다.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자 텅 빈 세상에 나 혼자 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플라 모델로 가득 들어찬 어두운 창고 안이 갑자기 무섭게 느껴졌다. 몰래 훔치며 짜릿함을 맛보았던 전과 달랐다.

나는 창고에서 나와 고향 빵집 할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울었니?”

“그냥 눈물이 나네요.”

“너도 이제 나이를 먹으려는 모양이구나. 나이를 먹으면 눈물이 많아지는 법이란다.”

“할아버지도 나발아저씨가 했다고 믿습네까?”

“글쎄다. 난 모르겠다. 그 사람은 충분히 이곳에 적응해서 잘 살만한 사람이었어. 전에 누구더라, 나이를 먹으니 기억력도 엉망이네 그랴. 누구한테 들었는지 기억은 도통 안 나지만 그 양반 처음에 정부에서 받은 정착금을 사길 당했다나, 돈을 몇 배로 불려준다는 꼬임에 넘어가 빈털터리가 된 거라던데. 그래서 같이 살던 마누라도 도망가고, 막노동으로 전전하면서 겨우 살았다는데 참 안된 일이야. 순박한 사람이었는데. 술이 죄다. 그놈의 술 말이다.”

술 때문이라니. 할아버지는 가끔 엉뚱하게 말이 휘어버린다. 정곡을 찌르지 않고 넓게 정곡 언저리를 덮는 말을 하곤 해서 내가 다 헷갈렸다. 그래도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처지여서인지 모르겠다. 안타까운 건 내가 먹는 나이는 계속 소화를 해내는데, 할아버지가 먹는 나이는 소화가 되질 않고 곧잘 토해진다는 것이다. 그건 하얀 머리카락이 되기도 하고 늘어져 접히는 주름이 되거나 눈물이 된다. 많이 토해서 할아버지가 탈진하게 되면 북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을 보지 못하게 될지 모르겠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내 고민을 말해도 될까.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 더 뒤돌아보고는 발길을 돌렸다.


나는 그 길로 경찰서로 갔다.

발걸음마다 땅바닥에 쩍쩍 들러붙는 기분이 들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경찰서 정문에 ‘믿음직한 경찰 안전한 나라’라는 문구와 함께 경찰복장을 입은 마스코트가 보였다.

건물 입구에서 경찰 아저씨가 무슨 일로 왔느냐며 나를 가로막았다. 순간 나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나발 아저씨를 만나러 왔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아저씨의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무슨 일로 왔는지 말해라. 누굴 만나러 온 거냐?”

나는 누굴 만나러 왔는지 제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많은 대화를 했었던 나발 아저씬데 이름을 모른 채였다는 게 어이없었다. 그때 나를 수영 형에게 보내주었던 경사 아저씨가 지나가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너 여기 무슨 일로 온 거냐. 또 말썽 피운 건 아니지?”

나는 경사 아저씨에게 매달렸다. 이름을 대진 못해도 조금 안면이 있다고 경사 아저씨에겐 누굴 만나고 싶다는 걸 말할 수 있었다. 할 말이 있어요. 십 분이면 돼요. 아니 오 분만이라도. 경사 아저씨는 동료에게 눈짓을 하더니 나를 나발 아저씨가 갇힌 철창 앞에 데리고 갔다.

“아저씨 납네다.”

나는 경사 아저씨가 저만치 비켜주는 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철창 안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은 나발 아저씨가 고개를 들었다.

“네가 여긴 웬일이냐.”

“아저씨.”

“넌 여기 와서는 아이 돼. 올 필요도 없오. 의심받기 전에 날래 가라.”

“아저씨 다 알고 있었습네까? 왜 자백하셨습네까?”

“무슨 소리네? 내가 다 한 짓을 내가 했다고 한 것뿐인데.”

“…….”

“차라리 잘된 일이야. 안 그래도 감옥에 들어올 방법을 찾고 있었오. 게다가 가을 닥치고 곧 겨울인데, 당분간은 먹고 자는 건 해결한 셈 아니네. 감옥에 있는 게 내래 편한기야. 감옥 밖이 오히려 더 감옥 같아 못살겠오.”

“…….”

“네가 아무 말 안 하고 모른 척하는 거이 고거이 나를 위한 배려가 될 기야. 찾아와 줘서 고맙다. 난 아무렇지 않아.”

눈물이 고였다. 나발 아저씨는 바보처럼 네가 왜 울긴 우냐, 하며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내가 우는 이유는 아저씨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단지 아저씨가 안쓰러워서가 아니다. 알 수 없는 통증이 전류처럼 나의 몸 중심부를 관통했기 때문에 참을 수 없어 눈물이 났다고 말한다면 아저씨는 이해할까.

부끄럽다고 느끼자마자 온몸을 질러오는 통증이었다고 한다면 말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배려라는 걸 한다는 게 고작 모르는 척, 입을 다무는 일이라니.

아무래도 나는 앞으로 ‘배려’라는 말을 생각할 때 부끄러움까지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경험한 첫 배려는 부끄러움이었으니까. 복잡한 설계도의 플라 모델을 수도 없이 만든 내가, 죽을 똥을 싸면서 탈북해 중국에서 힘든 시간을 견뎌냈던 내가 겨우 말이다. 나는 아저씨에게 ‘미안합네다’ 한마디만 건네고 경찰서를 나왔다.

경찰서 입구를 막 나서려는데 경사 아저씨가 어깨를 툭 쳤다.

“종안이 이 녀석, 아까 무슨 일로 그렇게 울었어?”

깜짝 놀란 나는 얼굴에 온 신경을 쏟아 정색을 하며 말했다.

“기냥요. 기래도 같은 고향 아저씨잖습네까. 안타깝고 기래서….”

“그래. 안타까운 일이다. 참 이거 가져가거라. 현장에서 나온 물건들 돌려주는 과정에서 빠졌더구나.”

경사 아저씨가 내민 것은 날개에 초록색 테이프를 감은 무선모형미그19기였다.

“어떠냐. 요즘 착실하게 잘 지내고 있는 거지?”

“네. 그럼요.”

나는 눈물자국으로 어룽어룽해진 얼굴에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곤 무선모형미그19기를 들고 얼른 거리로 내달렸다.


포크레인이 버려진 집을 무참히 밟고 지나간 건 사건이 종결된 보름 뒤였다. 흉물스러웠던 그 집은 부서져 잔해가 되었다.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도 우스갯소리로 증발해버렸다.

초가을의 햇살이 쏟아지는 한낮에 나는 그 집 앞에 섰다. 누군가 몰래 갖다 버린 쓰레기 더미와 보기 흉한 건물 잔해들만이 눈에 들어왔다. 발걸음을 옮기려다 문득 고개를 돌렸다. 잔해 속에 부서진 플라스틱 조각들이 보였다. 경찰들이 수거할 때 빠뜨린 플라 모델인 모양이었다. 다락방의 일렁이는 촛불 아래서는 퍽 커 보였던 것들이었다. 무선모형 미그19기와 나란히 선반 위에 놓였던 것 중에 어떤 것일 터다. 장갑차였을까, 잠수함이었을까. 부서진 건물 잔해와 먼지 속에 그것들은 쓸모없는 플라스틱 쪼가리에 불과했다.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깨진 기왓장 아래 햇빛을 받아 하얗게 반짝이는 것이 있었다. 유리조각이었다. 유리덮개가 깨진 채 탁상사진액자가 널브러져 있었다. 허리를 굽혀 손끝으로 깨진 유리조각을 걷어냈다. 액자 틀에 끼워진 오래된 흑백사진 한 장을 빼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고양이의 가냘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대낮이었는데도 오싹한 전율이 등줄기를 긋고 내려갔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곤 부서진 집 뒤로 난 경사로로 내달렸다. 야산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었다. 무작정 오르고 올랐다. 엄마 아빠의 손을 놓친 채 국경에서 도망치던 숨 가빴던 기억을 더듬으며 기어올랐다.

중턱쯤 오르자 나발 아저씨와 올랐던 지점에 이르렀다. 아래로 공원 전경이 보였다. 플라 드림이 있는 건물 앞 삼거리도 훤히 내려다보였다. 초가을 하늘은 말끔히 닦아놓은 통유리처럼 맑았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얇은 재킷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누렇게 바랜 사진을 꺼냈다. 사진 속에 군복을 입은 청년이 미그 19기 앞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감옥 밖이 오히려 더 감옥 같아 못살겠오.’

웃고 있는 입가에서 생생한 목소리가 울려나오고 있었다. 바람소리였을까. 나발 아저씨는 웃음을 머금은 채 빛바랜 사진 속에 갇혀 있다. 감옥 같은 삶을 벗어나기 위해 미그19기를 몰고 모험을 감행했지만 착륙한 곳은 또 다른 감옥이었나. 감옥 아닌 곳이 세상엔 없는 걸까. 문득 사진 속 나발 아저씨의 모습 위로 수영 형이 겹쳐졌다. 아니 그건 내 모습이기도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미그 19기를 보았다. 한쪽 날개에 초록색 테이프가 두세 겹 감겨 있다. 손톱으로 테이프의 끝에서 손가락 마디만큼씩 두 조각을 잘라냈다. 잘라낸 테이프 조각으로 미그19기의 동체 위에 사진을 붙였다. 나방의 날개처럼 부스러지거나 파닥거리지 말기를 기대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잘 날 수 있을까.’

리모컨을 손에 쥐고 미그19기를 힘껏 날렸다. 그것은 시퍼런 멍뿐인 하늘을 정면으로 찔러버릴 듯 한순간 위로 솟았다. 넓게 원을 그리며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식으로 수직선회를 했다. 하늘을 동그랗게 오려내는 비행이었다. 두 번째 선회를 하고 세 번째 선회를 하는 동안 이 광경을 나발 아저씨가 봤으면,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늘에 동그란 구멍이 뚫렸다. 그 속으로 미그19기가 빨려 들어가듯 뻗어나갔다. 넓게 포물선을 그린다 싶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것이 사라진, 아니 무사히 내려앉았을 저 아래 어딘가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플라 모델 동호회 일주년 기념행사를 공원에서 거창하게 하려던 계획은 진행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자중했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여전히 창용이가 떠들어대는 새로운 플라 모델 입고정보에 침을 삼키고 눈을 반짝거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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