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당선작
2017
2016
2015
2014
2013
2012
2011
2010
2009
2008
2007
2006
2005
2004
2003
2002
2001
2000
1999
1998






최명훈(가작)
△1975년 서울 출생 △2001년 성균관대 국문학과 졸업

-----------------------------------------------------------------------

언제나처럼 누런 봉투에 담긴 원고는 우편물이 가득 담긴 바구니에 아무렇게나 던져졌다. 우체국 여직원이 건네준 등기속달 영수증을 지갑 속에 구겨넣고 유리문을 열고 나섰다. 기억하건데 그날은 아주 추웠다. 전날 내린 눈은 아직 채 녹지 않았고, 언덕을 내려가는 길은 꽤나 미끄러웠다. 더욱이 곧 닥칠 서른의 스산함 때문에 옷을 단단히 여며야 했다.

놀이기구들이 뽑힌 생채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을씨년스러운 공원을 지나서야 도서관이 보였다. 벚꽃이 필적부터 꼬박 이 길을 오르내렸다. 왠지 그날은 어디 따뜻한 구들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낮술이라도 한잔 하고픈 날이었다. 오르던 길을 내려가기란 한결 수월했고, 글쓰기라는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작업도 이쯤에서 딱 내려두고만 싶었다.

이렇게 서른의 열병을 앓고 있을 즈음, 중국에 사는 선배로부터 한번 다녀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덜렁 여권 한 장만 들고 소풍 가듯 길을 올랐다. 꼬박 16시간을 단동행 일반선실, 몸도 뒤척일 수 없는 침대칸에 갇혀 도착한 대륙은 심히 넓었다. 그곳의 추운 날씨 때문이었는지 서른의 위기감과 조바심은 꽁꽁 얼어 온데 간데 없었다. 돌아오기 전날 취중의 한 사내에게 멱살을 잡혀 이역만리에서 불귀의 객이 될 뻔도 했지만 용케 살아 돌아왔다. 새벽녘 갑판에 올라 붉게 물든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햇덩이를 보는 순간, 내 안에서도 그것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를 다시 쓸 용기가 생겼다.

뼛속까지 스민 중국의 한기가 채 녹기도 전에 연락을 받았다. 썩 괜찮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중국여행과 이렇듯 반가운 소식은 내게 다시 한 해를 살아갈 힘을 줬다. 당선 아닌 가작이기에, 여러 지인과 은인들에게 감사의 표현은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

 

 

Copyright 2002 donga.com. E-mail.sinchoon@donga.com
Privacy poli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