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활짝 피어난 ‘발레리나의 꿈’

주목받는 3人의 화려한 행보… 광고 출연, 해외진출 “춤으로 세상과 얘기해요”

<< 무대의 꽃 발레리나들이 전성시대를 꽃피우고 있다.
국내 발레단의 수석무용수들이 해외 유수의 발레단에 줄줄이 입단하는가 하면, TV 광고의 메인 모델로 발탁된 발레리나도 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예쁜 발레리나들.
그들은 이 봄을 맞아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

김주원 - 5년째 수석무용수 국립발레단의 간판

한 오렌지주스 광고. 새벽의 텅 빈 운동장에서 젊은 여성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그런데 이 낯선 모델의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동작 하나하나가 우아하기 그지없다.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주원(25)이다.

“광고 촬영은 분장 같은 준비부터 끝날 때까지 12시간 정도 걸렸어요. 힘들다기보다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작업이 발레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TV 광고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김주원은 이미 여러 패션잡지에 모델로 등장했던 경험이 있다. 만약 이번 일의 성공으로 모델 제의가 쏟아져 들어온다면? “관심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제 직업은 무용수예요. 발레를 더 잘 알릴 수 있는 정도로만 활동하고 싶어요. 설령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해도 힘들 거예요. TV 보면 예쁜 여자들이 정말 많이 나오잖아요.”

갸름한 얼굴에 풍부한 표정이 마치 요정 같은 이 발레리나는 자신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나 보다. 그녀는 올해로 벌써 5년째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래서일까, 춤추는 모습에서 자신감과 관록이 느껴진다.

김주원은 4월6일부터 9일까지 공연되는 국립발레단의 ‘지젤’을 앞두고 있다. 맡은 역은 물론 주역인 지젤. 그녀는 국내 최고의 지젤로 알려져 있다. 목선과 어깨, 팔을 타고 내려오는 지젤 라인이 가장 아름다운 무용수라는 평이다. 특히 애인을 잃고 상심에 빠져 세상을 떠난 지젤이 귀신 ‘빌리’가 되어 등장하는 2막에서 김주원의 춤을 주목해 보라. 그녀의 춤은 보는 이의 영혼을 소스라치게 만드는 특별함이 있다.

“지젤을 출 때는 제가 정말 지젤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요. 춤을 추며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아요. 하지만 실제의 저라면 남자에게 배신당했다고 죽지는 않을 거예요.”

지난해까지 함께 국립발레단 주역 무용수였던 김지영이 올해 초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의 솔리스트로 입단했다. 모스크바 볼쇼이발레학교를 졸업한 김주원 역시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발레의 수준도 국제화되었고 좋은 안무가들이 많이 초빙되고 있어 굳이 해외로 나갈 생각은 없어요. 또 해외무대에 설 기회도 많아졌어요. 올해 5월에는 도쿄의 신국립극장에서 장운규씨와 함께 ‘돈키호테’의 주역으로 출연하고, 6월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갈라콘서트에 참가해요.”

김주원은 요즘 지젤 말고도 ‘백조의 호수’와 ‘돈키호테’까지 연습하느라 매우 바쁘다. 얼마 전에는 어깨가 빠져 병원 응급실을 찾았을 정도다. “그 고통을 다 잊게 해줄 만큼 무대의 매력은 커요. 그리고 제 춤을 보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다고 말하는 팬들이 있는걸요.”

전은선 - 라이프치히발레단에 입단 새 출발

지난해 말 공연된 ‘호두까기 인형’을 끝으로 유니버설발레단을 떠났던 전은선(28)이 독일 라이프치히발레단에 입단했다. 김지영의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입단에 이은 두 번째 경사다.

“라이프치히발레단은 현대 발레를 주로 공연하는 20명 정도의 작은 발레단이에요. 드레스덴발레단과 라이프치히발레단 두 곳의 오디션에 합격했는데 유명한 안무가인 우베 숄츠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라이프치히를 선택했어요.”

전은선은 광주에서 발레를 시작해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한 국내파다. 적지 않은 나이에 유니버설발레단의 수석무용수 자리를 박차고 해외에 나간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결심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전은선은 라이프치히발레단에 군무무용수로 입단한다.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저는 유니버설발레단에서도 군무무용수로 들어가 수석무용수의 위치까지 올라갔어요. 지금까지 주로 클래식 발레만 해왔기 때문에 현대 발레 단체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클래식 발레의 기본이 있기 때문에 금방 배울 자신 있어요.”

한마디 한마디에서 발레에 대한 긍지가 배어나온다. 전은선은 부상당했을 때도 아픈 것보다 연습을 못하는 것이 더 안타까웠던 연습벌레다. 발레 외에는 별다른 취미도 없다. “춤은 제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떼려야 뗄 수 없는걸요. 무대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이지요.”

1996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한 후 전은선은 ‘백조의 호수’ ‘지젤’ ‘돈키호테’ ‘심청’ 등 유니버설발레단의 모든 레퍼토리에서 주역을 맡았다. 4월에 독일로 떠나 8월부터 라이프치히발레단에 합류할 예정.

“클래식 발레가 엄정하고 기교적인 면을 보여준다면 현대 발레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앞으로도 유니버설발레단의 공연에는 가끔 객원무용수로 합류할 계획이에요. 저도 제 앞날에 대해 기대가 커요. 지켜봐 주세요.”

윤혜진 - 차세대 한국 발레 이끌 신데렐라

윤혜진(22)을 처음 보았을 때 기자는 사실 좀 놀랐다. 168cm의 큰 키에 긴 다리와 팔, 그리고 가느다란 목선이 ‘천생 발레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체격 조건으로만 따지면 국내 발레리나 중 가장 좋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구나 싶었다.

윤혜진은 요즘 어깨가 무겁다. 국립발레단의 ‘지젤’ 공연에서 주인공인 지젤 역으로 발탁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국립발레단의 차세대 주역으로 떠오른 셈이다. 지난해 국립발레단에 입단했으니 초고속 성장이다.

“김지영, 김주원 선배와 같은 역을 맡아 춤춘다는 건 아예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걸 떠올리면 부담이 너무 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요. 그저 제게 주어진 지젤 배역만 생각하고 있어요.”

사진 촬영을 위해 윤혜진은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으고 한 발을 뒤로 빼는 ‘지젤 포즈’를 취했다. 그 순간 윤혜진은 영락없이 지젤이었다. “처음에는 애인 알브레히트의 배신을 알고 죽음에 이르는 1막의 ‘크레이지 신’이 가장 어려웠어요. 하지만 연습을 해보니 죽고 나서도 배신한 애인을 못 잊어 하는 2막의 2인무가 더 어려워요.”

외모는 여려 보이지만 윤혜진은 국립발레단 입단을 위해 대학(세종대)을 휴학하는 과감한 면모도 지녔다. “공부는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지만 춤은 제 나이 때가 가장 예쁘다고들 해요. 그리고 무대에서 춤추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제게는 가장 중요하고요.”

윤혜진은 왕년의 명배우 윤일봉씨가 마흔이 넘어 얻은 늦둥이 딸이다. 유동근, 전인화씨가 각각 외삼촌과 외숙모인 예술인 가족의 일원. 발레는 말이나 표정이 아니라 몸으로 연기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가족들로부터 여러 가지 도움을 받게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