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7호/200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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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몸통찾기 내게 맡겨라

양국 사학자들 ‘동족설’ 연구 활발 … 일본 천황 ‘백제 후손’ 언급으로 새롭게 관심 불러

일본과 한국 사이에 예부터 깊숙한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은 ‘일본서기’(日本書紀) 등에 자세히 적혀 있다… 나 자신과 관련해서는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속일본기’에 적혀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지난해 12월23일 아키히토 일본 천황)

일본 천황의 발언에 대해 한국측은 그 진의를 확인하기에 분주했다. 그 와중에 재야사학자 김성호씨(한국농촌경제연구원 고문)가 “일 왕가에 백제 왕실의 피가 섞였다는 아키히토 일왕의 발언은 ‘깃털’에 불과하다. 아키히토 일왕이 언급한 간무뿐만 아니라 일 왕가 자체가 백제인의 후예”라고 한 발언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렇다면 재야학자들이 주장하는 몸통의 실체는 무엇인가.

“백제인들이 일본에 왕국 건설”

일단 일본 천황의 발언대로 간무 천황의 어머니인 화씨부인(다카노 니이가사·?~789년)이 백제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화씨부인의 아버지는 왜(당시 일본은 왜·야마토로 불렸음) 왕실에서 백제조신이라는 벼슬을 지낸 화을계(야마토노 오토쓰구)로 그는 백제 무령왕(501~523년)의 직계 후손이다. 즉 무령왕이 아들 순타태자를 일본으로 파견했는데 일본에서는 사아군으로 불렸으며 그 아들이 법사군이고, 화씨부인은 그 후손이라는 것이다. 이 내용은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어 한일 사학계가 대체로 인정하는 바다. 물론 국내 사료에서 순타라는 이름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화씨부인이 진짜 무령왕의 후손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김씨의 주장대로 단순히 일 왕실과 백제 혹은 신라 왕실이 혼인관계를 맺은 수준이 아니라면 논쟁의 수위가 달라진다. 김씨는 이미 1982년 저서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에서 비류백제설(백제는 비류백제와 온조백제가 있어 사실상 삼국시대가 아닌 사국시대였다는 주장)을 발표해 학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396년 고구려 광개토왕이 해로를 통해 비류백제를 기습공격하자 왕이 왕족과 신하를 거느리고 바다 건너 왜로 달아나 일본의 15대 왕 오진(應神)이 됐다고 말한다. 비류가 일본 천황의 시조라는 설은 1993년 ‘고대천황도래사’를 펴낸 와타나베 미츠토시도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학계는 “짜맞추기식 가설에 불과하다”며 외면해 왔다.

‘백제의 일본 건국설’을 좀더 치밀하게 입증한 이는 고려대 최재석 명예교수다. 최교수는 80년대 중반부터 고대 한일관계와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를 연구했고, 1990년 발표한 논문집 ‘백제의 대화왜(大和倭)와 백제화 과정’에서 일본 고대 천황과 지배층의 원적(原籍)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비류백제설을 받아들이진 않았으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말한다. 최교수는 우선 ‘일본서기’ 중 비다쓰 천황(30대)기 572년 10월에 백제대정(百濟大井·백제 귀족의 집단거주지)에 백제궁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백제대정은 35대 고교쿠 천황 시대까지도 존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1182성씨의 계보와 유래를 기록한 ‘신찬성씨록’(815년)에도 비다쓰 천황이 백제인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일본서기’ 중 덴치 천황(38대)기에는 백제의 마지막 보루인 주유성이 나당연합군에 의해 함락된 후 국인(國人)들이 이렇게 한탄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9월7일 백제의 주유성이 처음으로 당에 항복하였다. 이때 국인들이 서로 말하기를 ‘주유성이 떨어졌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백제의 이름이 오늘로 끊겼으니 조상의 묘소에 어찌 다시 갈 수 있겠는가.”

여기서 ‘국인’은 누구인가. 최교수는 백제에서 건너와 일본에 왕국을 건설한 사람들이 백제가 망하자 돌아갈 고향을 잃었다고 통곡하는 대목이라고 해석했다. 또 ‘일본서기’에는 641년 죠메이 천황(34대)이 백제궁에서 세상을 뜨자 16세의 동궁(후에 덴치 천황)이 궁 북쪽에 빈소를 설치하고 이를 ‘백제대빈’이라 했다는 기록도 있다. 죠메이 천황이 백제인임이 확실하면 그의 아들 덴치(38대), 덴치의 동생 덴무(40대), 덴치의 둘째 딸 지토(41대) 천황까지 모두 백제인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거슬러 올라가면 게이타이 천황(26대)부터 고토쿠(36대) 천황까지 혈연관계상 모두 백제인이다.

성왕과 긴메이 천황은 ‘동일인물설’

2년 전 ‘일본 천황은 한국인이다’는 책을 펴낸 홍윤기 교수(외국어대 연수평가원)는 “한국과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니라 가깝고도 가까운 동족”이라고 말한다. 또 게이타이 천황(26대)과 백제 무령왕이 친형제간이며, 긴메이 천황(29대)은 백제의 성왕과 동일인물이라는 새로운 설도 내놓았다. 긴메이 천황이 백제의 성왕이라고 하는 것은 일본 고대사학자 고바야시 야스코의 주장을 이어받은 것이다. 고바야시는 그의 저서 ‘두 얼굴의 대왕’에서 “성왕 18년(540년) 고구려 우산성을 공격하다 패전한 성왕이 즉각 왜국으로 망명하였다. 그리하여 왜국의 가나사시노미야를 거처로 삼고 왜국 왕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삼국사기’ 중 ‘백제본기’를 보면 백제 성왕이 540년 패한 것은 사실이나 왜국으로 망명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 하나의 설에 불과하다.

홍교수는 왜국과 백제를 넘나드는 복잡한 왕실가계를 이렇게 정리했다. 백제의 개로왕, 개로왕의 차남 곤지왕자(곤지왕자의 형이 문주왕)가 일찍이 왜국으로 건너갔는데 그의 장남인 모대왕자는 다시 백제로 돌아와 24대 동성왕이 되었다(문주왕이 후사 없이 죽었기 때문에 조카가 왕위를 계승했다). 백제에서는 동성왕(모대왕자)의 차남 사마가 25대 무령왕이 됐고, 일본에서는 동성왕의 3남 오호도가 후사가 없는 부레쓰 천황(25대)의 뒤를 이어 게이타이 천황(26대)이 되었다는 것. 이 가계도대로라면 무령왕과 게이타이 천황은 친형제다.

홍교수는 무령왕이 503년 게이타이 천황에게 보낸 청동거울 ‘인물화상경’(일본 국보 제2호)에 새겨진 글씨에서 근거를 찾는다. 이 청동거울에는 “계미년 8월10일 일십대왕 시대에 남제왕(남동생이라는 의미로 게이타이 천황을 가리킴)이 오시사카궁에 있을 때 사마(무령왕의 이름)께서 아우의 장수를 염원하여… 최고급 구리쇠 200한으로 이 거울을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사실 이 거울의 비밀을 제일 먼저 파헤친 것은 원광대 소진철 교수였다. 소교수는 ‘금석문으로 본 백제 무령왕의 세계’에서 이 거울이 백제 무령왕이 동생의 나라 왜왕을 승인하는 일종의 신임장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곤지왕자의 가계에 대해 이견도 있다. ‘오진(應神·15대 천황)릉의 피장자는 누구인가’로 일본 사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시와타리 신이치로 같은 이는 거울에 새겨진 일십대왕이 곤지이고, 남제왕은 게이타이 천황, 사마는 무령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천황도래설’을 지지하는 일본 학자들 사이에서는 일본을 건국한 천황이 누구인지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가야계라고 보는 10대 스진 천황, 다른 하나가 백제계인 15대 오진 천황인데, 이시와타리씨는 백제 개로왕의 동생으로 왜국으로 건너온 곤지가 곧 오진 천황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오사카부의 하비키노시에는 곤지왕자를 제신으로 모시는 ‘곤지왕 신사’(현 아스카베 신사)가 남아 있다.

한일 고대관계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3세기 초 등장한 히미코 여왕이다. 90년대 일본에 히미코 열풍을 몰고 온 이 최초의 여왕은 백제가 아닌 가야국과 관계가 깊은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에는 비미호(卑彌呼)로 알려진 히미코 여왕에 대한 기록은 중국 정사인 ‘삼국지’ 중 위지동이전에 나타난다. 이 문제를 깊이 연구한 고(故) 이종기씨는 ‘춤추는 신녀’라는 책에서 일본 고대왕국의 비미호 여왕이 가락국 수로왕의 딸 묘견공주라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96년 최진의 ‘다시 쓰는 한일고대사’, 98년 박병식의 ‘도적맞은 우리 국호 일본’, 98년 송기윤의 ‘천황은 백제인인가’, 99년 이봉하의 ‘가야가 세우고 백제가 지배한 왜국’ 등이 한일관계의 새로운 시각을 전파하고 있다. 의사 출신 재야사학자 이봉하씨는 진무 천황이 가야계 신라인이며 오진 천황과 동일인이라는 설, 고교쿠와 사메이 천황은 백제 무왕의 딸이며 의자왕의 여동생이라는 설 등 한일 사학계에서 발표된 새로운 가설들을 종합했다. 물론 이 책들은 대부분 그동안 발표된 것을 정리하는 수준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주장들이 이미 80년대 초부터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데도 이를 검증할 학술적 성과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단순히 이야깃거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철의 왕국 가야’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송기윤 PD는 “취재를 위해 만난 일본인 사학자들이 부분적으로 고대 한일관계의 연관성을 인정했지만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면 답변을 회피하기 일쑤였다. 특히 일본 천황의 뿌리를 묻는 질문이 나오면 자리를 피하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말한다. 최재석 교수도 “천황의 뿌리가 백제에 있다는 설에 대해 일본 학자들 대부분 사석에서는 인정하지만 공식적인 답변은 피한다. 그렇다고 한국 학자들까지 이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21세기에 새로 등장한 ‘한일동족설’에 대해 한국인들은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일제강점기 일본이 한반도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운 ‘일선동조론’의 악몽을 떠올리기도 한다. 근거 없는 우월감이나 지나친 피해의식 모두 새로운 역사연구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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