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원주 구룡사

구룡사는 치악산에서 가장 큰 도량이다. 그렇다고 해서 치악산 계곡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다. 길 한쪽에 비껴서 있다. 경사가 심한 산비탈에 자리 잡았기에, 절집을 성벽처럼 높다랗게 지어 안정감을 유지하려 했다. 풍수에 능한 사람이 어렵사리 터를 잡고, 절 집을 올린 것 같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산세를 보고 집을 지었다. 그래서 지붕선이 뒷산의 능선과 닮아 있는 모습을 곧 발견할 수 있다. 요즘처럼 산등성이에 아파트를 짓는 몰염치함은 없었다. 산 속에서 높은 집을 짓고 싶거든 구룡사를 둘러볼 일이다.

구룡사로 들어서는 사천왕문은 이층 팔작지붕으로 웅장하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다시 이층 건물이 거인처럼 지켜서 있다. 그 거인의 가랑이 밑으로 들어서면 대웅전 마당이 나온다. 마당은 좁은데, 탑은 크다. 근자에 기계로 깎아 만든 화강암 탑이라, 너무 하얗고 너무 크다. 도무지 절과 어울리지 않는다. 탑은 그렇게 클 필요가 없는데 욕심을 부렸다. 그래서 구룡사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지금은 대웅전 뒤편으로 조사당을 한참 짓고 있다. 상량식을 하느라 절 마당에 연등이 가득하다.

구룡사는 누가 터를 잡았던가? 의상대사다. 원래 대웅전 자리에 연못이 있었다. 그곳에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다. 의상은 그 연못 자리가 좋아,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고 용들과 도술 시합을 했다. 용들이 먼저 솟구쳐 올랐다. 그러자 뇌성벽력이 치고 산들이 모두 물에 잠겨버렸다. 용들이 흐뭇해 하며 주변을 살피니, 의상은 비로봉과 천지봉에 줄을 걸어 배를 매놓고 그 안에서 자고 있었다. 다음은 의상이 움직였다. 부적을 한 장 그려 연못에 넣었다. 그러자 연못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고, 용들이 뜨거워 날뛰었다. 그때 놀란 용 여덟 마리가 절 앞산을 여덟 조각 내면서 동해로 도망치고, 한 마리는 눈이 멀어 계곡의 못에 머물렀다.

그래서 절 이름도 구룡사(九龍寺)라 했다. 세월이 흘러 절이 퇴락하게 되었다. 어느 날 한 노인이 나타나, 절 입구의 거북바위 때문에 절의 기가 약해졌으니 그 혈을 끊으라 했다. 그대로 했더니, 절이 더 힘들어졌고, 폐사가 되려 했다. 이번에는 한 도승이 나타나 훈수를 했다. 거북의 혈맥을 끊어서 절이 쇠락해졌으니 다시 그 혈맥을 이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절 이름을 구룡사(龜龍寺)로 바꾸었다.

거북바위는 눈에 띄지 않지만, 구룡사 입구의 다리 옆에 근자에 만들어놓은 돌거북 두 마리가 있다. 구룡사를 지나 계곡 안쪽으로 들어가면 구룡소가 나온다. 아홉 마리 용이 놀던 넓은 못이다. 구룡소 위쪽에는 텐트를 치고 취사할 수 있는 야영장이 있다. 야영장에서 40분쯤 걸어 올라가면 세렴폭포가 있다. 야영장에 텐트를 쳐놓고 가족들끼리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숲바람 속에 올라갔다 올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