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보은 법주사

속리산 법주사 마당에 서면 거대한 스타디움에 들어선 것 같다. 원형 경기장이 아니라, 직사각형의 긴 축구장이다. 양쪽으로 늘어선 산들은 관중석이고 푸른 나무들은 관중이다. 그 나무들이 아우성치는 운동장에 서면 ‘국가대표 선수’가 된 기분이다.

법주사에서는 너무 많은 것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마음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절에 와서 마음이 복잡해지다니, 될 일인가. 그러므로 3가지 정도만 보아야 한다. 탑과 집을 합쳐 놓은 5층 팔상전(捌相殿)이야 안 들어갈 볼 수 없으니, 나머지 두 가지는 마음이 먼저 가는 곳에 눈길을 주면 된다. 그 뒤로는 아무리 호기심이 생기더라도 무시하고 지나쳐야 한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법주사에서는 쌍사자석등, 사천왕석등, 연꽃처럼 만든 돌연못, 쌀 80가마가 들어가는 돌그릇, 마애여래의상, 철당간 따위의 보물들이 가득 차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법주사다운 보물을 소개하면, 법주사 마당으로 들어서는 금강문 왼편에 있는 마애여래의상이 새겨진 바위다. 그 바위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미륵불이 연꽃인지 연꽃 모양의 의자인지 쉽게 구분이 되지 않지만, 하여튼 보기 드물게 걸터앉아 있다. 둥글고 온화한 얼굴, 길고 큼직한 코와 늘어진 귀, 보름달처럼 도드라진 눈두덩, 머리 폭보다 더 좁은 원통형 허리, 꼼지락거릴 것 같은 발가락이 인상적인 마애불이다.

그런데 그 마애불의 오른손 편에 기이한 암각화가 있다. 상고시대 암각화라고도 하고 법주사 연기 설화가 서린 암각화라고도 한다. 소 세 마리가 굴처럼 생긴 바위 안쪽에서 걸어 나오고 있고, 그 위에 스님이 앉아 있다. 이끼가 살짝 덮고 있어 그 형태를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그다지 귀한 대접을 받고 있지 않는 이 암각화에는 꽤나 깊은 사연이 담겨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누구도 똑부러지게 해독을 못하고 있으니, 상상력을 한껏 발동해보기 바란다.

법주사에서 문장대까지 오르려면 3시간 30분은 잡아야 한다. 문장대에서 곧장 넘어가면 오송폭포가 있는 장암계곡이 나온다. 계곡이 가팔라서 1시간 30분이면 공원 관리사무소까지 다다를 수 있다.

속리산 동쪽으로 천왕봉 아래의 장각계곡이 깊지만, 휴식년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추천할 만한 계곡은 장암계곡에서 흘러나온 물이 보은 농암면으로 흘러가면서 만들어 낸 용유계곡과 쌍용계곡이다. 용유계곡은 상주시에서, 쌍용계곡은 문경시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쌍용터널 앞뒤로 10리 계곡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시원스럽고 거침없다. 다만 터널과 찻길 때문에 계곡 한쪽이 무너졌지만, 길가에 차를 대놓고 계곡으로 내려가 탁족하면서 세상을 잊을 만하다. 특히 쌍용계곡 초입인 농암면 내서리 마을에 있는 사우정(四友亭) 앞의 개울은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물장난하며 놀기 좋다. 그 물 속에 산다는 쉬리가 괴롭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