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 죽방렴

남해안의 여느 고장과 마찬가지로 경남 남해군에도 섬이 참으로 많다. 본섬인 남해도 이외에도 창선도 노도 호도 대도 등을 포함해 모두 82개에 이른다. 그 중 가장 큰 창선도는 본섬과의 사이에 창선대교가 놓여 있어 여타 작은 섬들과 달리 이미 오래 전에 절해고도의 처지에서 벗어났다. 창선대교가 걸쳐 있는 창선면 지족리와 삼동면 지족리 사이의 좁은 물목을 지족해협이라 하는데, 이곳에서는 죽방렴(竹防簾)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어구를 볼 수 있다.

죽방렴은 물살이 빠른 해협에 조류가 흐르는 방향으로 말뚝을 부채살처럼 세워 놓는 함정어구(陷穽漁具)의 일종이다. 물고기들이 조류를 따라 죽방렴의 불통 안으로 들어오면 물이 빠진 뒤에 후릿그물로 떠 담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고통을 덜 받고 잡힌 물고기는 맛이 살아 있어 그물로 잡은 것보다 더 높은 값을 받는다고 한다. 지족해협 일대에 20여 개쯤 남은 죽방렴에서는 주로 멸치를 비롯해 한치 갑오징어 병어 감성돔 등을 잡는데, 썰물 때에는 죽방렴 안에 든 물고기를 잡는 광경을 창선대교 위에서도 구경할 수 있다.

죽방렴이 있는 지족리에서 남해도의 가장 큰 포구인 미조항 쪽으로 얼마쯤 가다보면 물건리라는 갯마을을 지나게 된다. 이 마을의 1500m 가량 되는 바닷가에는 흔히 ‘물건리어부림’(천연기념물 제150호)이라는 인공림이 잘 조성되어 있다. 숲이 조성된 지는 300년쯤 되었으며, 송악 마삭줄 등의 덩굴식물과 팽나무 푸조나무 느티나무 등 이름조차 생소한 갖가지의 나무가 1만여 그루나 들어차 있어 사시사철 녹음이 짙다.

이 숲은 거센 파도와 강한 바람으로부터 마을의 농토와 가옥을 보호해 주는 방조·방풍림뿐만 아니라 바다 쪽에 그늘을 만들어 고기떼를 모으는 어부림(魚付林) 구실을 한다. 또한 이 마을에는 아직도 삼베 짜는 집이 여럿 있는데, 무더운 여름철이면 삼베 짜는 아낙들이 이곳 숲 그늘에 삼삼오오 모여 삼실에 풀을 먹이거나 헝클어진 삼실을 추스르기도 한다. 마을 주민들에게는 더없이 요긴한 숲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이 숲을 해치면 마을이 망한다”는 전설이 전해오기도 한다. 실제 100년 전쯤에 마을 주민들이 이곳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판 적이 있었는데, 그로부터 얼마 뒤에 거센 폭풍우가 몰려와 집집마다 큰 피해를 봤다고 한다.

물건리를 지나 남해도 제일의 미항(美港)인 미조항으로 이어지는 3번 국도는 맑은 바다를 바라보며 달린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바다와 아담한 갯마을들을 바라볼 수 있을 뿐더러 길도 한갓져서 해안 드라이브코스로도 제격이다. 특히 물건리와 미도항의 중간에 위치한 항도마을은 한가로운 포구, 소나무 우거진 작은 섬, 아담한 자갈 해변과 새파란 바다, 민가의 울긋불긋한 지붕이 한데 어우러져 동화 속의 마을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이 마을 근처의 국도변에는 잠시 쉬어갈 만한 쉼터도 마련되어 있어 미조만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기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