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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미국의 그늘,제론토크라시

Posted January. 06, 2021 07:38   

Updated January. 06, 2021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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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젊은 나라다. 중앙정보국(CIA) 월드팩트북 기준 3억3000만 인구의 중위연령이 38.1세로 주요국 중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 일본(47.3세) 독일(47.1세) 이탈리아(44.4세) 캐나다(42.2세) 한국(41.8세) 프랑스(41.4세) 등과 비교하면 미국의 젊음이 더 두드러진다.

 그러나 정치 분야의 고령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3일 개원한 117대 의회에서 상원의 평균 연령은 64세, 하원은 58세다. 1981년 시작한 97대 의회에서 이 수치는 각각 53세와 49세였다. 불과 40년 만에 의회가 10년 늙은 셈이다.

 양당 지도부는 어떨까. 권력서열 3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은 모조리 70, 80대다. 20일에는 미 역사상 최고령인 79세 대통령까지 취임한다. 노년층이 사회 전반을 장악해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는 정치체제를 뜻하는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란 용어가 최근 미 언론지상을 장식하는 이유다. 뉴리퍼블릭 같은 진보성향 매체는 아예 “미국이 노년 페티시에 빠졌다”는 신랄한 비평까지 내놨다.

 제론토크라시가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고령화와 평균수명 연장이 낳은 불가피한 측면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젊은 세대에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고 고령자 권익을 보호하며 노인 빈곤을 해결하는 일 같은 긍정적 의미의 ‘어르신 정치(senior politics)’가 사라지고 극소수 기득권 고령자의 의제만 과하게 대표되는 모습이 나타난다는 데 있다. 오래전 계층이동의 사다리에 올라타 ‘용’이 된 장노년층이 젊은 가재, 붕어, 개구리가 승천할 사다리를 치우는 데 직간접으로 일조하거나 방관하고 있다는 의미다.

 여론조사회사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 내 Z세대(1997∼2012년 출생자)의 절반이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실직하거나 급여가 줄었다”고 했다.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의 40%도 가세했다.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생)의 25%와 대조적이다. 그런데도 유명 장년 정치인 중 청년실업 대책을 내놓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2일 매코널 대표와 펠로시 의장의 자택에는 ‘내 돈 내놔라’ ‘2000달러’ 같은 낙서와 돼지피가 등장했다. 상원 다수당인 공화당이 지난해 12월 29일 코로나19 현금지급액을 당초 양당이 합의한 600달러에서 2000달러로 늘리려는 시도를 저지하자 일부 시민이 양당 1인자의 집에 몰려간 탓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각각 재산이 최대 2500만 달러, 5800만 달러로 추정되는 의회 내 대표적인 자산가다. 의회 입성 시기도 각각 1985년과 1987년으로 비슷하다. 돈 때문에 정치인 집을 훼손한 일은 비판받아 마땅하나 미 사회 전반에 ‘당적에 관계없이 30, 40년간 중앙정계에서 호의호식한 당신들이 전대미문의 전염병으로 고통 받는 서민의 심정을 어찌 알겠느냐’는 분노가 흐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노인 중심의 권력구조는 그 특성상 세대 갈등 및 양극화 심화, 국가경쟁력 약화 등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미국에서도 2020년 기준 이미 밀레니얼 세대 인구가 7212만 명으로 베이비부머(6956만 명)를 추월했지만 경제 권력 또한 베이비붐 세대가 쥐고 있다. 현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평균 연령은 58세로 2006년보다 15세 높아졌다. 20년 전 미 전체 노동인구의 15%를 차지했던 55세 이상 근로자의 비율도 30%로 증가했다. 서유럽 선진국 중 국가부채, 청년실업률, 개인소득 감소율이 가장 높은 이탈리아, 한때 미국과 함께 세계를 호령했던 옛 소련의 몰락 또한 각각 2000년대, 1980년대 연이어 고령 지도자가 집권한 여파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2015년 44세에 최고권력자에 오른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당시 남녀동수 내각을 출범시킨 후 “지금은 2015년이니까”란 이유를 댔다. 늙은 사회를 바꾸는 일보다 시급한 일은 없다는 그의 교훈은 지금도 유효하다. 특정 국가만의 일도 아닐 것이다.


하정민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