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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박찬욱에 빠진 칸… “티켓 구함” 즐거운 기다림

‘헤어질 결심’ 박찬욱에 빠진 칸… “티켓 구함” 즐거운 기다림

Posted May. 25, 2022 08:01   

Updated May. 25, 202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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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욱 감독 영화는 ‘복수 3부작’(‘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부터 시작해 모두 봤어요. 오늘 표를 못 구하면 내일도 와서 기다릴 거예요.”

 프랑스 니스의 한 대학에서 영화학을 전공하는 일리나 니야 씨는 23일(현지 시간) 제75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뤼미에르 극장 앞에서 2시간째 땡볕 아래 서 있었다. 그가 든 팻말에는 박 감독 영화 ‘헤어질 결심’의 영어 제목 ‘Decision to leave’가 적혀 있었다. 티켓을 구한다는 의미다.

 박 감독이 ‘아가씨’(2016년)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장편영화 ‘헤어질 결심’이 세계에서 처음 공개된 이날 극장 앞은 그의 ‘빅팬’을 자처하는 현지인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한글로 ‘헤어질 결심’이라고 쓴 팻말을 들고 티켓을 구하던 회사원 애나벨 퓨더 씨는 “박찬욱은 사회 현상을 세련되게 뒤틀 줄 아는 최고의 감독”이라고 말했다.

 2000여 석 규모의 극장은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은 세계 각국 관객들로 가득 찼다. ‘칸이 사랑하는 감독’으로 불리는 박 감독의 칸 경쟁부문 4번째 진출작 ‘헤어질 결심’은 전작들과 확연히 달랐다. 그는 22일 한국 기자들과의 현지 차담회에서 “전작들에 비해 자극적이지 않아 심심할 수도 있다”며 “우아한 고전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는 강력계 형사 해준(박해일)과 중국인 여성 서래(탕웨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서래 남편이 절벽에서 떨어져 사망하자 해준은 서래를 용의자로 특정해 수사한다. 서래는 그저 침착하다. “(남편이)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봐”라며 어색한 한국말을 읊조릴 뿐. 탕웨이는 ‘색,계’(2007년)에서 증명했듯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농밀한 연기를 소화해낸다. 눈빛으로 긴장감 수위를 미세하게 조절해내는 연기는 세계 최고 수준. 해준은 서래를 감시하려고 잠복근무를 하지만 망원경으로 서래를 관찰하는 눈빛은 걱정과 애정이 담긴 밀착 관찰에 가깝다. 감독은 줌인과 줌아웃의 반복적인 사용과 독창적인 카메라 앵글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와 심리가 변해가는 과정을 세밀화 그리듯 담아냈다.

 산과 바다를 배경으로 변사사건을 풀어낸 영화는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전개된다. ‘미장센의 천재’로 불리는 박 감독답게 귀퉁이 소품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영상화한 듯 안개가 낀 듯한 화면은 고전미를 더한다. 박 감독은 상영 전 “어른스러운 영화를 목표로 했다”며 ‘품위’를 강조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간 다음 5분 안팎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경쟁부문 월드 프리미어 시사회치고는 짧았다. 감독과 배우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는 방송 장비가 작동하지 않아 관객들이 이들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영향도 있었다. 박 감독은 “길고 지루한 구식 영화를 환영해주셔서 감사하다”며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관객 반응은 엇갈렸다. 영화적 미학 면에선 세계 최고라는 극찬과 함께 이야기가 난해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영화사에서 일하는 데이비드 리트백 씨는 “영화 속 모든 묘사가 생생하면서 아름다웠다”며 “모든 게 조화롭게 모여들며 마무리됐다”고 했다. 프랑스 관객 알투 밀러 씨는 “박 감독이 보여주는 미장센은 최고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와 장면이 담겨 복잡했다. 이야기가 갈수록 난해해진다”고 했다.

 외신은 호평이 다수인 가운데 무반응에 가까운 평가를 낸 경우도 있었다. 미국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는 “기술적 문제가 발생하기 전부터도 반응은 조용했다”며 기립박수가 5분에 그친 데 초점을 맞췄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별 다섯 개를 주며 “긴장과 음모, 감정적 대립, 맛깔 나게 조작한 플롯 뒤틀기는 매우 히치콕스럽다”며 호평했다.

 이번 영화제에는 ‘헤어질 결심’과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든 한국영화 ‘브로커’까지, 2편이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브로커’는 26일 처음 공개된다. 이미 한 차례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감독인 만큼 ‘브로커’가 황금종려상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높다. 여기에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 문수진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각질’까지 한국영화는 모두 5편이 초청돼 K콘텐츠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분위기다.


손효주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