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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하지 않는 인간 표상

Posted April. 15, 2021 07:33   

Updated April. 15, 2021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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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마른 풀이 무성한 들판 위에 외로이 앉아 있다. 앙상한 두 팔로 힘겹게 몸을 지탱한 채 고개를 들고 멀리 있는 자신의 집을 응시하고 있다. 대체 이 여성은 누구기에 풀밭 위에서 혼자 이러고 있는 걸까?

 앤드루 와이어스는 스무 살에 연 첫 개인전에서 작품을 완판하며 일찌감치 성공을 예감했지만, 그에게 최고의 명성을 가져다준 건 31세 때 그린 바로 이 그림이다. 그림 속 모델은 미국 메인주에 살던 크리스티나 올슨이라는 여성. 아내 베치의 소개로 이미 7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이웃이자 친구였다. 어릴 때부터 퇴행성 근육 질환을 앓던 올슨은 서른 살 무렵부터 전혀 걸을 수 없게 되었지만 휠체어 사용을 단호히 거부했다. 여기에 묘사된 것처럼 두 팔로 하체를 끌며 기어 다니는 것을 선호했다. 작가는 창밖으로 그녀가 들판을 가로질러 기어가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올슨은 당시 55세였지만 그림에선 아주 젊게 그려졌다. 머리와 상체 부분을 그릴 때 26세의 아내를 모델로 세웠기 때문이다. ‘크리스티나의 세계’라는 제목은 그녀의 약한 육체가 아닌 강한 정신의 세계를 뜻하는 것으로, 장애를 비범하게 극복하는 친구에 대한 경의를 표현한 것이다. 어떤 고난에도 절망하지 않는 한 인간의 강한 의지와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그림인 것이다.

 와이어스는 그림을 완성한 그해 뉴욕 개인전에 선보였지만 전문가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잭슨 폴록 같은 추상화가들이 주목받던 시기였기에 유화도 아니고 템페라로 그린 사실주의 그림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졌던 탓이다. 하지만 뉴욕현대미술관(MoMA) 관장 앨프리드 바의 생각은 달랐다.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고 바로 구입했다. 관장의 홍보 덕에 그림은 점차 유명해졌고, 곧 모마의 대표 소장품 중 하나이자 20세기 미국 미술의 아이콘이 됐다. 올슨 역시 장애에 굴하지 않는 강한 인간의 표상이 되었고 그녀의 집은 명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