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비화가야 무덤속 장신구 ‘1500년만의 외출’

비화가야 무덤속 장신구 ‘1500년만의 외출’

Posted October. 29, 2020 07:38   

Updated October. 29, 2020 07:38

中文

 가야 고분군 중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은 일제강점기 이후 도굴 피해를 심하게 입은 곳으로 꼽힌다. 이 고분군의 한 무덤에서 장신구 유물이 도굴되지 않은 채 무더기로 쏟아졌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지연)는 경남 창녕군 교동Ⅱ군 63호분을 발굴해 조사한 결과 비화가야 지배자의 금동관 금귀걸이 구슬목걸이 등을 확인했다고 28일 밝혔다. 신발이 발견되지 않은 것만 빼면 지난달 몸 전체 장신구 일체가 발굴된 경북 경주시 황남동 신라 고분과 비슷하다.

 교동Ⅱ군 63호분은 5세기 중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의 2m 북쪽에 있는 39호분은 안에서 빵봉지, 고무대야, 양동이가 발견되는 등 도굴로 황폐화돼 있었다. 창녕 지역 비화가야 고분은 덮개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 유물을 쉽게 훔칠 수 있는 구조여서 비화가야 유물은 그동안 금동관 조각이나 장신구만 확인됐을 뿐 전모를 알 수 없었다.

 이번에 발견된 유물의 면면은 화려하다. 머리 위치에서는 높이 21.5cm 금동관이 확인된다. 나뭇가지 모양 장식이 3단으로 세워져 있고, 관테 아래에는 곱은옥과 금동구슬이 드리워져 있다. 관 속에는 관모(冠帽)로 추정되는 직물의 흔적도 발견됐다.

 양쪽 귀 부분에서는 굵은고리귀걸이 1쌍이, 목과 가슴에는 남색 유리구슬을 서너 줄로 엮은 구슬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은장식 손칼이 달린 은허리띠를 둘렀으며 양손에는 각각 은반지 1개(오른손), 3개(왼손)가 확인됐다. 오른 팔뚝 부분에서는 원형금판에 연결된 곱은옥과 주황색 구슬도 나왔다. 팔찌나 손칼을 장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이 무덤의 주인을 키 155cm가량의 최고 지배계급이고, 긴 칼 대신 굵은귀고리와 손칼이 발견된 점을 감안해 여성으로 추정했다. 무덤 안팎으로 순장자가 최소 5명 묻힌 흔적도 나타났다. 이들은 무덤 주인공과 같은 방향으로 목관에 안치돼 낮은 계급은 아닐 확률이 높다.

 무덤 구조와 출토된 토기는 전형적인 가야 양식이지만 장신구는 신라의 것과 유사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양숙자 학예실장은 “낙동강 동쪽에 있던 비화가야가 신라와 교류가 많았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며 “다만 무덤 양식이 가장 보수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고고학적으로 가야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2014년부터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의 것으로 추정되는 묘역 중 미정비지역을 조사하다 63호분을 발견했다. 지난해 11월 대형 덮개돌을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고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착수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다음 달 5일 유튜브를 통해 이번 발굴조사에 참여한 단원들이 출연하는 실시간 온라인 발굴조사 설명회를 연다.


김민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