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훈(30·CJ대한통운)에겐 악몽 같은 하루였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제5의 메이저대회’로 불리는 플레이어스챔피언십 첫날 ‘마의 17번홀(파3)’에서만 공을 네 차례 물에 빠뜨리며 11타 만에 가까스로 홀을 마무리하는 참사를 연출했다.
안병훈은 12일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베드라비치 TPC 소그래스 스타디움코스(파72)에서 열린 1라운드 17번홀에서만 옥튜플보기(8오버파)를 기록하는 등 중간합계 11오버파를 기록하며 공동 150위를 했다. 안병훈보다 더 나쁜 스코어는 헨리크 스텐손(13오버파)뿐이다.
16번홀(파5) 버디로 1오버파를 기록하며 선전했던 안병훈은 17번홀에서 대참사를 일으켰다. 이날 143야드로 세팅된 이 홀은 그린이 물로 둘러싸인 ‘아일랜드 그린’이다. 전장은 길지 않지만 주면 나무숲에서 강하고 변화가 심한 바람이 불어 클럽 선택을 어렵게 하는 등 까다롭기로 소문난 홀이다. 대회 기간뿐 아니라 일반 내장객 라운드를 포함해 연간 약 12만 개의 공이 호수에 빠져 공을 줍기 위해 1년에 네 차례 다이버를 동원해야 할 정도다.
안병훈의 티샷은 그린에 미치지 못하고 물에 빠졌다. 이후 그도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 1벌타를 받고 드롭 존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 번째, 다섯 번째 샷은 그린에 튄 뒤 ‘입수’했다. 일곱 번째 샷은 그린에 안착하는 듯했지만 백스핀이 걸려 다시 물에 빠졌다. 9번째 만에 공을 그린 위에 올렸지만 이 퍼팅마저 홀을 지나쳤다. 2퍼팅으로 홀아웃하면서 그의 스코어 카드에는 ‘11’이 새겨졌다. 이 대회 17번홀 사상 역대 두 번째로 나쁜 스코어다. 최악의 기록은 2005년 밥 트웨이(미국)가 3라운드에서 네 차례 공을 물에 빠뜨린 뒤 3퍼팅 끝에 홀아웃하며 기록한 12타다.
1라운드 뒤 안병훈은 자신의 트위터에 “누구에게나 나쁜 날이 있고 우리는 이것을 넘어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17번홀 티샷은 끔찍했다”는 글을 올렸다. 자신의 17번홀 영상과 함께 ‘17번홀에서 11타를 칠 것 같은 친구를 태그해 달라’는 골프채널의 글에 자신의 이름을 해시태그하기도 했다.
이날 재미교포 케빈 나도 3차례 공을 물에 빠뜨리면서 퀸튜플 보기(5오버파)를 기록하는 등 총 35개의 공이 물에 빠졌다. 2007년 1라운드(50개)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기록이다. 케빈 나는 허리 통증 등을 이유로 기권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황홀한 홀이 되기도 한다. 2019년 이 대회에서 라이언 무어(미국)를 비롯해 총 9명의 골퍼가 홀인원의 기쁨을 맛봤다. 1997년 4라운드에서 홀인원을 기록한 프레드 커플스(미국)는 2년 뒤인 1999년 1라운드에서 티샷을 물에 빠뜨린 뒤 1벌타를 받고 티박스에서 한 번에 공을 홀 안에 넣어 일명 ‘해저드 파’를 기록하기도 했다.
2008년 이 대회 우승자인 세르히오 가르시아(41·스페인)가 이글 2개를 포함해 7언더파 65타를 몰아치며 단독 선두로 나섰다. 가르시아는 17번홀에서 파를 기록했다.
강홍구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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