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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 찰떡 남매...“연극은 사회적 메시지 담아야” 철학도 같아

연극계 찰떡 남매...“연극은 사회적 메시지 담아야” 철학도 같아

Posted November. 14, 2019 07:32   

Updated November. 14, 2019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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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헤르만(남편)을 많이 닮았어. 너도 불행해질 거야.”

 한 여인이 처음 본 소년에게 저주 섞인 말을 내뱉는다. 작품 내내 한 무대에 있지만, 마주 보지 못했던 여인과 소년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 ‘이미 너를 잘 알고 있다’는 듯 덤덤한 말투지만 팽팽하던 긴장감이 이 순간 폭발한다.

 연극 ‘맨 끝줄 소년’에서 이를 연기한 두 배우는 ‘연극계 찰떡 남매’ 우미화(45)와 전박찬(37)이다.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이들은 “이 짧고 강렬한 장면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했다.

 작품은 현실과 허구가 혼재된 글을 쓰는 소년 ‘클라우디오’(전박찬, 안창현)와 소년의 작문 실력에 빠져 점점 위험한 글쓰기를 주문하는 교사 ‘헤르만’(박윤희), 그리고 이들을 위태롭게 바라보는 아내 ‘후아나’(우미화)의 이야기다. 극적 사건은 없어도 대사와 연극적 상상력으로 묘한 스릴러를 구현해냈다. 유명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희곡으로, 손원정 연출가가 2년 만에 무대에 다시 올렸다. 우미화가 “작품은 우리 삶 속 허구와 실재의 경계를 묻는다”고 하자 전박찬은 “그 물음 끝에서 끔찍함을 느꼈다”고 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08년 시작됐다. 사흘짜리 워크숍 공연에서 연인 역으로 처음 만났다. 우미화는 “아기 같았던 전박찬 씨가 어느덧 믿고 기댈 정도로 내공이 단단한 동료가 됐다. 조금 더 기름진 배우가 된 것 같다”며 웃었다. 전박찬은 “처음에는 대학로에서 유명한 선배와 호흡을 맞추는 게 너무 떨렸다. 요즘에는 연습이 끝나면 술이 고플 때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술자리로 데려가는 좋은 선배”라고 맞장구쳤다.

 이후에도 둘은 연극 ‘말들의 무덤’ ‘아유 오케이’ ‘썬샤인의 전사들’ ‘낫심’에서 동고동락했다. 이들은 ‘연극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는 철학을 공유해 왔다. 오래도록 같은 작품에서 땀을 흘릴 수 있던 이유다. 우미화는 “근현대사의 아픔으로부터 연극인도 자유로울 수 없으니 늘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답했다.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 출연해 존재감을 드러낸 전박찬은 “사회적 참사를 담은 이야기여서 배우로서 좋은 기회였다”고 답했다.

 “작품이 매번 새롭다”며 토론을 이어가던 두 사람은 인터뷰 후 “산책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옮겼다. ‘연극의 맨 끝줄’까지 도달하고자 하는 이들 덕택에 오늘도 객석에서는 ‘명품 연기’라는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12월 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2만∼5만 원. 14세 이상 관람가. 02-580-1300


김기윤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