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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南北정상회담, 단절된 ‘北-美비핵화’ 잇는 다리 돼야

평양 南北정상회담, 단절된 ‘北-美비핵화’ 잇는 다리 돼야

Posted September. 07, 2018 08:16   

Updated September. 07, 2018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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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파구는 없었다. 멈춰선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복원하기 위해 평양에 다녀온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사절단이 전하는 북한의 입장은 기존과 달라진 게 없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실험장 폐쇄 같은 북한의 선제적 조치에 미국도 6·25 종전선언 같은 상응조치를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남북은 평양에서 열기로 한 세 번째 정상회담 날짜를 18∼20일로 확정했다. 그 이전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개설하기로 했다.

 김정은은 특사단과 만나 “우리의 선제적 조치들에 상응하는 조치가 이뤄진다면 비핵화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조치들을 계속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어제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임기 안에 비핵화를 실현해 나가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고 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김정은이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자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이 ‘확고한 비핵화 의지’를 거듭 천명했다지만, 여전히 미국에 ‘동시 행동’ 원칙에 따른 상응조치가 전제된 조건부 비핵화였다. 물론 북한 공식매체가 김정은의 비핵화 관련 발언을 그대로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남북,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 속 ‘완전한 비핵화’ 단어가 전부였던 것과 비교하면, 비록 김정은의 육성은 아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비핵화 관련 발언을 보도한 것 자체는 진일보한 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딱 거기까지다. 김정은이 밝힌 비핵화 의사는 6개월 전 처음 방북한 특사단에게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이번 발언은 북-미가 함께 만들어야 한다며 미국을 향해 종전선언이나 제재 완화 등 보상을 촉구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김정은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영구 불능 상태로 만드는 등 ‘선의의 선제적 조치’를 했는데도 국제사회가 의문을 제기하는 데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정 실장은 전했다. 아무런 보상이 없다는 불만인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이제는 북한이 핵무기·시설 리스트를 제출하고 원자로와 우라늄농축시설의 핵물질 생산 활동을 중단하는 실질적 이행조치에 나설 단계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상응조치를 요구하며 비핵화 프로세스 진입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남북은 북-미 협상 복원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논의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통화에서 문 대통령에게 ‘수석 협상가(chief negotiator)’ 역할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특사단도 북측에 나름의 중재안을 제시했을 것이다. 정 실장도 공개할 수 없는 김정은의 대미 메시지가 있다고 밝힌 만큼 이를 계기로 북-미 협상이 재개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정은의 진정성에 대한 의문이 계속되는 한 앞으로 북-미 협상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당장 남북 정상회담까지는 시간이 많지 않다. 불과 열흘 남짓이다. 그 전에 북-미 실무협상 재개 여건이라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선 남북관계 과속 논란은 피할 수 없다. 정부에선 남북관계 진전이 비핵화를 견인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온다. 이런 기류가 자칫 평양 정상회담을 박수 받지 못하는 이벤트로 만드는 결과를 낳지 않을지 걱정이다. 비록 남북관계가 앞서가더라도 북-미관계를 잡아 이끌 만큼의 거리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