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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총장이라는 자리

Posted July. 07, 2018 07:26   

Updated July. 07, 2018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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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판용) 고려와 조선시대에 최고 공립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의 장(長)을 대사성이라 불렀다. 고려 말기 정몽주로부터 조선 전기의 신숙주, 중기의 이황, 후기의 김정희까지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이 대사성을 지냈다. 오늘날 서울대의 총장은 현대판 대사성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서울대 총장에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형법학자 유기천 교수 같이 지성과 용기에서 모두 존경받는 분들이 없지 않았으나 유신과 5공 시절을 거치면서 그 위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총장의 위상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1991년부터 총장 직선제가 도입되면서 학식과 경륜보다는 ‘마당발’ 교수들이 총장이 되는 일이 빚어졌다. 총장 이력을 바탕으로 국무총리가 되고 더 높은 자리를 기웃거린 경우도 나타났다.

 ▷대학 총장에게는 ‘지성의 대표자’라는 역할 외에도 최고경영자(CEO)라는 역할이 있다. 영국은 대학 총장 자리를 이원화해 챈슬러(Chancellor)를 두고 그 밑에 바이스 챈슬러(Vice chancellor) 혹은 프레지던트(President)를 둔다. 챈슬러는 대학교에 상주하지 않으면서 지성을 상징하는 명예총장이고 프레지던트가 실질적 총장이다. 미국은 대학 총장 자리를 대체로 일원화해 프레지던트라고 부르고 CEO의 역할을 점차 중시해왔다. 동양은 좀 달라서 일본 도쿄대는 총장을 대학의 관리책임자로 보지 않고 학문의 전당의 상징으로 본다.

 ▷서울대 법인화 이후 간선제로 첫 선출된 성낙인 총장과 그 후임으로 총장 후보에 추천된 강대희 의대 교수는 자타가 인정하는 마당발이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 많다는 것만으로는 CEO 역할을 잘 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마당발로 그 자리에 갔기 때문에 존경받는 자리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다. 급기야 성추행 의혹에 휘말린 강 교수는 총장 후보를 사퇴했다. 정희성 시인은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라”고 했다. 서울대 총장은 조국의 미래가 정말 궁금해질 이 때 필요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시대의 지성인이면 좋겠다. 


송 평 인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