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멋쟁이는 SSST<서울 성수동 수제화타운 브랜드>를 신는다

멋쟁이는 SSST<서울 성수동 수제화타운 브랜드>를 신는다

Posted April. 26, 2013 03:31   

中文

어릴 때부터 구두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었는데 뜻밖에 한국에서 기회를 찾았고, 놓칠 수가 없었다.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프랑스인 제안 보스코 씨(24)가 서울 성동구 성수동 수제화타운에 머물러 있는 이유다.

구두 장인들이 공짜 강의를 해주는 성수동 수제화타운 교육장에서 23일 보스코 씨를 만났다. 선생님도 프랑스어를 못해 말은 안 통하지만 눈으로 보고, 따라하면서 배우고 있다.

프랑스에서 가족이 신발 사업을 하는 보스코 씨는 지난해 12월 친구들과 서울에 놀러왔다가 홍익대, 이태원 등에서 본 서울 사람들의 스타일과 패션에 반했다. 그 전까지 한국에 대해 아는 건 싸이와 강남스타일뿐이었다. 서울 사람들의 구두도 눈에 들어왔다. 한국 디자이너와 협업을 해볼까 싶어 1월에 다시 한국에 왔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성수동 수제화타운 교육 프로그램 이야기를 접했다. 5개월 동안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이지만 이거다 싶어서 바로 지원했다.

꿈 키우는 수제화타운

성수동 수제화타운 교육장에는 보스코 씨처럼 꿈을 키워가는 10여 명이 열심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서울성동수제화협회협동조합의 우정현 교육소장은 성수동에서 수십 년 동안 고급 구두를 만들어 온 장인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없어서 2012년부터 성동구청과 함께 무료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며 올해 상반기에는 20여 명 뽑는 데 70명 넘게 몰렸고, 하반기에는 지원자가 100명 이상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 800여 개에 달했던 이곳의 공장은 최근 350여 개까지 줄었다. 고급 시장은 수입 브랜드에, 중저가 시장은 중국산 신발에 뺏기면서 활기를 잃어갔다. 하지만 구두 기업 사장들이 힘을 합쳐 협동조합을 만들고 교육장을 개설하면서 미래를 걸어 보겠다는 젊은이들이 나타났다.

박동희 서울성동제화협회 회장은 열심히 배워서 젊은 친구들끼리 수제화 공방을 만들겠다고 하는 걸 보면서 성수동을 진짜 명품 구두의 메카로 발전시킬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본다고 말했다.

교육장에서 만난 신태모 씨(29)도 구두에 미래를 걸 생각이다. 패션업계에서 일하는 여자친구와 결혼해 정장과 구두를 맞춰주는 브랜드를 함께 만들 꿈도 생겼다. 신 씨는 5개월 교육만 가지고는 장인들을 따라가기에 부족할 것 같아 앞으로 5년 정도 이곳 공장에서 일하고 배운 뒤 우리 브랜드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SSST가 백화점에 떴다

김민규 롯데백화점 구두바이어는 업무차 성수동에 자주 온다. 그러다 지난해 6월 성수동 수제화타운의 자체 브랜드 SSST 매장이 눈에 띄었다. 백화점 매장에서 파는 고급 수제화 수준의 품질에 가격은 3분의 1밖에 안 됐다. 이렇게 좋은 신발을 성수동 매장에서만 파는 게 안타까워 박 회장에게 연락했다. 백화점에서 한번 팔아 보실래요?

의기투합한 박 회장과 김 바이어는 24일 롯데 잠실점 지하 1층에서 수제화 특별전을 열었다. 하루 유동인구가 15만 명에 이르는 곳이다. 30일까지 열리는 짧은 행사지만 SSST에는 의미가 컸다. 처음으로 SSST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앞세워 백화점에서 소비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27, 28일에는 13세부터 구두를 만들어온 김명식 장인(73)의 수제화 제작 시연도 열린다. 이탈리아 페라가모나 구치 장인들이 하는 것과 같은 성격의 이벤트다.

처음엔 백화점에서 구두를 팔면 제품을 납품하던 브랜드 회사들에 눈치 보이는 것 아니냐, 구두만 만들 줄 아는데 매장 진열이나 관리는 누가 하느냐며 귀찮아하는 업체들도 있었다. 하지만 성수동 수제화타운이 살아나려면 장인들의 실력을 자유롭게 뽐낼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고급화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SSST는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성수동에서 만든 수제화라는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리는 QR코드를 신발에 붙이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올해 협동조합을 만들면서 회원들은 기계의 유혹에 빠지지 말자고 서로 약속했다. 좋은 가죽을 이용해 손으로 한국에서 만든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박 회장은 성수동에는 구두 기술만큼은 이탈리아 장인들 뺨치지만 못 배웠다는 생각 때문에 공장 기능공 정도로 위축돼 있는 사람이 많다며 이들이 자신의 기술에 자부심을 가지는 게 성수동이 부활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