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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리 PC 자동OFF 저녁이 있는 삶 켜졌다

Posted November. 15, 201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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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팅(업무 종료) 30분 전입니다. 얼른 마무리하세요.

13일 오후 6시 30분 경기 화성시 정남면 IBK기업은행 화성정남지점. 조명희 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외치자 조용하던 사무실이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개인용컴퓨터(PC)의 자판 소리가 커졌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20분이 흐르자 PC에 업무 종료 10분 전입니다라는 자막이 떴다. 서류를 만지던 손길은 더욱 빨라졌다. 이윽고 7시가 되자 PC가 꺼졌다. 서류 정리정돈을 끝낸 직원들은 하나둘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떠났다. 15분 뒤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정남지점 사무실 셔터가 내려졌다.

마지막에 사무실을 나선 조 과장은 인근 헬스장을 들렀다가 집에 갈 예정이다며 3, 4년 전만 해도 밤 12시까지 사무실에 머물러야 했는데 이제는 저녁에 여가를 즐길 수 있게 돼 좋다고 말한 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2009년부터 PC오프제를 도입한 기업은행의 전국 모든 지점에서 이런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오후 7시 칼퇴근을 유도하기 위해 PC를 강제로 끄고, 야근이 필요한 사람은 지점장의 사전결재를 받도록 한 게 핵심이다. 이후 불필요한 보고서나 회의가 줄어들고 생산성은 올랐다.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기업은행의 성공을 눈여겨본 다른 은행들도 PC오프제 동참에 나설 예정이어서 칼퇴근 풍경은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또 긴 노동 시간과 낮은 생산성으로 요약되는 한국 직장인들의 근무문화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인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44.6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두 번째로 길다. 그렇다고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생산성은 23위로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은행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화성정남지점은 2008년까지 평균 퇴근시간이 오후 11시 40분이었다. 공단에 위치한 특성상 중소기업의 대출 비중이 높아 신용분석보고서나 대출약정서 등 작성할 서류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본점도 사정은 비슷했다. 매일 저녁 구내식당은 야근자들로 바글거렸다. 먼저 퇴근하기 미안해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상사가 퇴근해야 집에 가는 직원도 적잖았다. 야근을 하면서도 서둘러 일을 처리하기보다는 인터넷으로 기사를 검색하며 시간을 보내는 직원도 상당수였다. 반복되는 야근을 하면서도 시간외수당은 신청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야근을 관례처럼 여겼기 때문이다. 당연히 피로는 누적되고 능률은 떨어졌다.



김유영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