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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재익 장학금

Posted December. 04, 201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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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0월 9일 서남아시아와 대양주 6개국 순방에 나선 전두환 대통령은 첫 기착지인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 도착해 미얀마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의 묘소를 참배하러 나섰다. 전 대통령이 도착하기 바로 전 묘소에서 굉음과 함께 폭발물이 터졌다. 대통령은 무사했으나 각료급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중상을 입었다. 북한이 대한민국 국가원수를 암살하려고 계획적으로 저지른 테러였다. 암살범은 북한에서 밀파된 공작원 3명이었다.

이때 순직한 김재익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의 부인인 이순자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남편과 자신의 모교인 서울대에 전 재산 20여억 원을 기부했다. 기부금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제3세계 개발도상국의 젊은 관료들이 서울대에 와서 선진 정책을 배우도록 지원하는 김재익 장학금(김재익 펠로십 펀드)으로 조성된다. 매년 20명 정도의 개발도상국 공무원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국제개발정책학석사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대는 김재익 장학금으로 수혜 대상을 더 늘릴 계획이다. 개도국 공무원들이 김재익 경제철학을 배우고 아울러 북한의 만행도 인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김 전 수석비서관의 가족들이 서울대에 기부한 것은 고인의 뜻에 따른 것이다. 미국 하와이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어렵게 경제학을 공부했던 고인처럼 서울대에 유학 온 개도국 젊은 공무원에게도 공부할 기회를 주고, 모국으로 돌아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유학을 마친 후 김 전 수석은 1974년 경제기획원 관료로 투신한다. 당시 한국 경제는 풍전등화의 운명이었다. 한 해 전 석유 가격이 갑자기 4배나 급등하는 오일 쇼크가 닥친 데다 그해 광복절 기념식장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흉탄에 쓰러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절이었다.

김 전 수석비서관은 경제기획원에서 6년 동안 근무하면서 세 가지 뚜렷한 업적을 쌓는다. 부가가치세제를 도입해 나라 살림의 기초를 마련했고, 기계식 전화기를 전자식 전화기로 바꿔 만성적인 전화 적체를 해소함으로써 오늘날 정보통신시대의 기반을 다졌다. 원자력발전소 7,8,9,10 호기 건설에 기여해 원전 시대를 여는 데도 한몫을 했다. 북한이 계속 도발을 자행하고 세계 곳곳에서 경제위기가 터지는 지금 김재익 같은 애국심 강한 관료가 그립다.

박 영 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