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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스위스 비밀계좌 탈세

Posted May. 26, 2010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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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은행들은 300년 전부터 고객의 비밀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종교 박해를 받는 부유층이나 전쟁 피해를 겪은 서민의 재산을 맡아 지켜줬다. 독일 나치의 박해에 시달리던 유대인들도 돈을 싸들고 스위스 은행을 찾았다. 스위스 정부는 이를 계기로 1934년 은행이 고객의 정보를 공개할 경우 벌금을 물린다는 금융 비밀주의를 도입했다. 그 덕에 개발도상국의 독재자들이나 조직범죄의 자금도 스위스 은행으로 숨어들었다.

검은돈의 천국이라는 비난에 스위스의 철옹성 비밀주의도 점차 흔들리고 있다. 1990년대에는 법원의 범죄행위 판결이 있는 경우 예금자 신원을 공개했다. 스위스 최대 은행인 UBS는 2008년 미국의 압력에 탈세 혐의가 있는 미국 고객의 계좌정보를 미 국세청에 제공했다. 작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세피난처 국가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압박하자 스위스 정부가 은행법을 OECD 기준에 맞추겠다고 손을 들었다.

현재 한국과 스위스의 조세조약에는 정보교환 조항이 없다. 양국 일정대로 7월에 조세조약을 개정하면 내년 초에야 일부 정보를 받아볼 수 있게 된다. 이런 여건에서 국세청이 탈세혐의자 A 씨가 스위스 홍콩 싱가포르에 개설한 14개 계좌의 거래명세를 손에 넣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10여 년 전 미국에서 번 돈으로 서울에서 제조업체를 운영 중인 A 씨의 해외계좌 입금 총액은 5억 달러, 작년 말 잔액은 1억3000만 달러였다. A 씨는 4000억 원 이상을 외국으로 빼돌린 혐의로 종합소득세 등 2137억 원을 추징당했다.

국세청은 그동안 해외탈세에는 거의 손을 못 댔다. 외국 금융계좌 정보도 없었고 고도의 자금세탁 거래를 분석하기도 벅찼다. 해외투자를 빙자한 탈세 가능성을 방치할 수 없었던 국세청은 작년 11월 역외탈세추적 전담센터를 설치했다. 6개월간 힘겨운 조사 끝에 A 씨 등 4명과 이들이 소유한 기업에 3392억 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이번 조사를 지휘한 이현동 국세청 차장은 국부()를 유출하는 해외탈세는 시간이 걸려도 끝까지 잡아내겠다고 강조했다. 국세청이 스위스 등의 비밀계좌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되는 내년부터는 의외의 월척이 걸려들지도 모른다.

홍 권 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