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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론 변경이냐 당론 채택이냐

Posted February. 17, 2010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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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친이(친이명박)계 일각에서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싼 당론 결정을 기존 당론의 변경이 아닌 새로운 당론 채택 과정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친박(친박근혜)계는 당론 채택설은 턱도 없는 발상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당론 변경이냐, 채택이냐의 논란은 단순히 절차상의 개념 정립 차원을 넘어 의결 정족수와 직결되는 사안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진수희 의원은 1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의원총회에서 세종시 수정안을 논의한다면 이는 당론 변경이 아닌 당론 채택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 의원은 2005년 2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수도분할을 내용으로 하는 여야 합의안을 들고 나왔을 때도 소속 의원들에게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안에 대한 당론 채택 여부를 물었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당헌 72조 1항은 의원총회의 의결은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돼 있다. 새로운 당론을 채택할 경우 이 조항이 적용된다. 반면 72조 3항에서는 당론을 변경할 경우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수정안 논의를 당론 변경 절차로 해석하면 한나라당 소속 의원(169명)의 3분의 2인 113명의 찬성이 필요하지만 당론 채택으로 본다면 85명 출석에 43명 찬성이면 통과될 수 있다. 친이계 의원만으로도 의결 정족수를 쉽게 채울 수 있는 셈이다.

당론 채택설은 세종시 수정안이 원안과 전혀 다른 새로운 지역발전 방안이라는 점에 기대고 있다. 친이계의 한 참모는 부처 이전을 백지화하고 세종시를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아닌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로 만드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기존 당론을 일부 변경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당론을 만드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선 박 전 대표가 2005년 2월 의총(당시 소속 의원은 총 120명)에서 찬성 46표만으로 세종시 관련 새 당론을 확보했음을 거론한다.

이에 대해 친박계는 그동안 친이계 주류 등 당 지도부도 여러 차례 당론은 세종시 원안이라고 강조했기 때문에 세종시 수정안은 당연히 당론 변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2005년 2월 의총 상황과 관련해서도 한 친박계 의원은 그때는 당헌 규정에 당론 채택과 당론 변경의 구분이 없었을 뿐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수도 이전 위헌 결정으로 불가피하게 당론을 바꿨다며 당시와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고 반박했다. 당론 변경에 관한 규정은 2005년 당 혁신위원회가 당헌을 손질하면서 추가했다. 그 전에는 당론 변경이든 채택이든 소속 의원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면 됐다.

친이계 내에서도 당론 결정 과정에 대한 개념 정리가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금으로선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론 채택설을 주장하는 쪽에선 절차상의 문제점을 제기함으로써 혹여 수정안이 당론으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재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자는 전술적 측면까지 감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친이계 핵심 의원은 처음부터 수정안 처리에만 몰두하다 보니 절차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이 문제를 미리 제기할 경우 찬성표를 확보할 자신이 없다는 신호를 줄 수 있어 주저한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고기정 김기현 koh@donga.com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