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가 보호무역 사례 감시 작년 원론적 선언보다 진전 두루뭉실부양책

국제 유동성 확대와 보호무역조치 신설금지 등을 골자로 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합의 내용은 글로벌 경기위축에 따른 수출 감소와 고질적인 금융 불안에 시달리던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보호무역주의 배격과 금융규제 강화 등 그동안 한국이 주장해 온 주요 의제가 상당부분 합의문에 반영된 것은 큰 수확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각국의 구체적인 경기부양책이 제시되지 않았고, 회원국들이 합의 사항을 실제로 얼마나 이행할지가 명확치 않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라는 지적도 많다.

보호무역 저지 구체적 방안 마련

참가국 정상들은 향후 2년간 무역금융 재원을 2500억 달러 확충하고 세계무역기구(WTO)가 보호주의 사례를 조사토록 하는 등 보호주의 저지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원론적인 선언에 그치지 않고 액션플랜(action plan)을 도출해 낸 것은 합의의 구속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합의 내용은 강제성이 없어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런 장치들이 각국에서 보호주의 정책을 내놓지 못하도록 하는 실질적인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11월 1차 G20 회의 때도 각국은 보호주의를 배격한다는 원칙에 합의했지만 그 후에도 보호주의 정책이 계속 쏟아져 나오면서 합의의 구속력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G20 정상들이 예상보다 높은 수준의 합의에 도달함에 따라 금융시장이 경기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투자심리 개선으로 글로벌 경제가 안정을 찾으면 자연히 한국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뜻이다.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개별적인 사안에서도 성과가 있지만 글로벌 금융시장 안정에서 오는 간접적 효과가 한국 경제에 더 큰 플러스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규제 강화도 기회, 부양책 미비 아쉬움

헤지펀드와 조세피난처, 해외 신용평가회사 등 금융부문의 규제강화도 한국 금융시장에는 악재가 아니라는 분석이 많았다. 최원근 하나금융연구소 금융시장총괄팀장은 한국의 금융산업은 글로벌 경쟁력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과도한 개방이 이뤄지는 바람에 피해가 컸다며 한국은 이번 금융규제 강화로 시장의 안정도 얻고 실력을 키울 기회도 가졌다고 말했다. 민상기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규제 강화는 한국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급격한 자금 이동을 줄여 시장 안정성을 높일 것이라며 다만 국제적인 자금 이동이 제약을 받으면 외국 돈을 빌려서 국내 산업을 일으키는 것이 당분간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재원 규모가 늘어나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기존 금융안정화포럼(FSF)을 확대 개편해 출범하는 금융안정이사회(FSB) 등 국제금융기구에서 한국의 역할이 얼마나 커질지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KDI 이한규 연구위원은 IMF는 출자 지분이 많을수록 발언권이 세지는데 앞으로 한국의 기여가 늘어난다면 국제 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G20 정상회의에서 발표된 경기부양책에 대해서는 아쉽다는 반응이 많았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5조 달러의 경기부양 규모는 기존 계획을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몇 %라는 식의 구체적 합의가 없어 실효성이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미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한국으로선 다른 국가들이 재정지출 확대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을 경우 경기부양의 의미가 반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재동 이서현 jarrett@donga.com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