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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오바마의 미국, 뉴리더십으로 세계 끌어안기를

[사설] 오바마의 미국, 뉴리더십으로 세계 끌어안기를

Posted November. 06, 200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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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시대가 열렸다. 그 시대사적 의미가 실로 크다. 미국 건국 232년만의 첫 흑인 대통령이거니와 이 젊은 지도자가 약속한 변화와 희망에 세계가 목말라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과연 세계를 더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으로 바꿔낼 수 있을 것인가.

버락 오바마 미 44대 대통령 당선인은 스스로가 국경과 인종의 벽이 사라져가는 지구촌의 축약판이다. 케냐인 아버지와 미국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는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살기도 한 그의 이름에는 지금도 후세인이란 성()이 들어있다. 그는 흑인이지만 주류 백인의 삶을 살았다. 그런 그가 미국의 새 지도자가 된 것은 안으로는 인종과 이념 갈등을 치유하고 밖으로는 보다 민주적이고 다원화된 국제사회를 창출해달라는 시대적 요구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미국도 세계도 지쳐있다. 1991년 소련()제국의 붕괴와 함께 40년간의 냉전체제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귀결됐지만 그 후 십수 년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한 탓이 크다. 특히 조지 W 부시 정권 8년간 피로가 누적됐다. 911 테러와 이에 대한 미국의 일방주의적 대응은 그 정점()이라 할 만하다. 미국은 국제사회와의 충분한 소통공감 없이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에 뛰어들었고 그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도 방만한 미국식 자본주의의 불행한 중간결산이다.

오바마는 이런 부()의 유산을 청산하고 미국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세계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염증을 내면서도 약한 미국이 초래할 혼란과 비효율을 원하지 않는다. 일각에선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으로 이뤄진 다극체제를 대안으로 거론하지만 시기상조다. 지금과 같은 혼돈 상황에서 그런 유사 다극체제가 제대로 작동할지도 의문이다.

미국이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는 게 현실적으로 최선의 대안이다. 어떤 리더십인가. 미국외교협회(CFR) 리처드하스 회장의 지적처럼 미국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거의 없다는 자각에서 출발하는 겸손의 리더십이어야 한다. 이란 핵 문제부터 국제금융의 새 틀 짜기에 이르기까지 국제사회와 대화하고 협력하라는 얘기다. 그것이 세계화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미국의 가치이자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와 시장과 인권()을 확산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오바마가 참석할 수는 없겠지만 금융위기를 논의할 15일 워싱턴 G20 정상회담이 그 신호가 되기를 바란다.

오바마 시대는 한국에도 도전이자 기회다. 최대 현안인 핵 문제에 대해 오바마는 북한과 직접 대화할 의사를 밝혔다.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북과의 조건 없는 대화가 6자회담 프로세스와 충돌할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북이 먼저 미국 측에 대화를 제의하고 나올 공산도 크다. 그러나 북미 간의 어떤 대화도 북핵 폐기에 반드시 도움이 돼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 원칙만 지켜진다면 우리로선 미국의 대화 의지를 당근으로 삼아 핵 폐기와 북의 개혁 개방을 유도하는데 유리한 국면을 조성할 수도 있다.

오바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미국 민주당은 의회를 장악한 1993년과 2007년 각각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과 페루 및 콜럼비아와의 FTA를 재협상한 전례가 있다. 우리로선 어떻게든 재협상은 피해야 한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최근 우리라도 먼저 비준하자고 나선 것도 그래서다. FTA 처리 양상이 한미관계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고 보면 국내 여야의 초당적인 대처가 긴요하다. 미국의 민주당 정부는 전통적으로 공정무역이라는 이름 하에 보호무역 성향을 보여왔다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오바마의 미국이 큰 흐름에서 고립주의로 갈 것이라는 관측도 신경이 쓰인다. 오바마 정부는 이라크 전쟁에서 한 발 빼면서 의료보험 개혁과 예산적자 줄이기 등 국내 문제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을 포함한 해외주둔 미군의 감축 문제가 거론될 수도 있다. 주한미군 일부가 아프간에 전환 배치될 가능성도 있다. 2012년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단독행사)을 앞둔 우리로서는 예의 주시하고 기민하게 대응해야 할 대목이다.

세계 슈퍼파워이자 우리의 유일 동맹국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우리에게도 크고 작은 변화가 불가피하다. 문제는 그러한 변화를 슬기롭게 타고 넘어갈 수 있느냐에 있다. 미국에 민주당 정부가 들어선다고 워싱턴과 평양에 당장 대사관이라도 세워질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상대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시기와 방법을 놓쳐서도 안 된다. 오바마 시대가 가져올 미국 및 세계의 변화에 차분하게 대응하면서 한미관계를 국익() 극대화의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