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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광복 63년 건국 60년, 대한민국의 길

[사설] 광복 63년 건국 60년, 대한민국의 길

Posted August. 15, 2008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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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큼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어떤 민족도, 어떤 나라도 반세기 남짓한 짧은 기간에 우리처럼 많은 것을 이룩하지는 못했다. 하루 세끼도 해결하기 어려웠던 적빈()의 신생 독립국이 전쟁과 분단의 비극을 딛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됐다. 경제뿐이랴. 민주화도, 정보화도 이뤄냈다. 전후() 독립한 110여 개 국 중 지금 우리와 견줄만한 나라는 이스라엘과 대만 정도다. 이 두 나라도 우리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에서 출발했다. 광복 63년, 건국 60년의 대한민국사()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기적의 역사였다.

우리 현대사에서 광복과 건국은 똑같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광복이 비록 우리의 자체 역량으로 이룬 것은 아니었다고는 하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선열들의 줄기찬 독립투쟁이 있었기에 결국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었다. 광복의 토대 위에서 대한민국을 세웠고,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오늘의 이 빛나는 성취를 이룬 것이다. 오늘날 건국을 광복과 떼어놓고 보려는 움직임이 있긴 하나, 이는 명실상부한 주권재민()의 현대국가를 처음 갖게 됐다는 점에서 건국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자는 뜻일 뿐이다. 양자는 결코 나눠서 볼 수 없다. 그런 시도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할 뿐이다.

건국의 역사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극심한 이념 갈등 속에서 분열과 혼란이 그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남쪽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가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총선을 치르고 정부를 수립한 건국 주역들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의 위선을 간파하고, 조선공산당과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전국 각지에서 획책한 반란과 폭동에 치열하게 맞섰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민주당(한민당)을 중심으로 한 자유 민족진영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대한민국은 이들의 피와 땀 위에 세워진 것이다.

좌파 통일지상주의자들은 지금도 남한이 미() 군정의 비호 아래 먼저 단독정부를 수립해 분단을 고착시켰다는 논리를 폄으로써 대한민국 건국세력에 민족 분열의 책임을 뒤집어씌운다. 그러나 소련의 붕괴 이후 공개된 일련의 비밀문서를 보면 스탈린이 먼저 북에 단독정권을 수립할 계획을 세우고 치밀하게 추진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이 단독정권을 수립 후 남로당 세력을 동원해 남한을 적화하기 위해 도발한 전쟁이 바로 625전쟁이다.

건국 주역들의 선택이 옳았음은 오늘의 북한이 증명한다. 북한도 다음달 9일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60주년을 맞지만 주민은 만성적인 경제난에 허덕이고, 인권은 세계 최악의 상태로 떨어져 있다. 북한은 해방과 함께 중국 소련 같은 폐쇄적인 대륙문명권에 편입됐다. 1991년 소련은 붕괴했고, 중국은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하기 전까지 가난에 찌든 폐쇄국가였다. 당시 우리가 북한의 선택을 따랐다면 어떻게 됐겠는가.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은 자유 민주 시장경제 법치주의 국제 협력이었고 이는 9차례 헌법이 개정되는 동안에도 국가의 기본이념으로 흔들림 없이 계승됐다. 대한민국은 건국 이후 개방, 상호 교류, 국제협력으로 특징되는 해양문명권과의 유대를 강화함으로써 자유와 번영의 토대를 마련했다. 경제발전과 국가안보는 미국과 유엔의 힘을 빌렸다. 그 결과가 오늘의 대한민국이고, 많은 나라들이 우리의 삶이며 힘이다.

이처럼 건국 60년사는 부끄러운 역사가 아니라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루어진 성공의 서사시다. 전쟁과 독재를 겪으며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큰 흐름에서 보면 가난과 절망을 풍요와 희망으로 대치해나간 도정()이다. 우리는 괄목할만한 국력 성장을 바탕으로 일본 도쿄에 24년 늦었지만 베이징보다는 20년 앞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를 수 있었다.

이제는 우리는 그 도정의 새 출발선에 섰다. 건국에의 자긍심을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과 열정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선진화로 가는 수밖에 없다. 국가의 선진화, 국민의 선진화, 의식과 문화의 선진화만이 건국의 주역들이 꿈꾸었던 평화와 번영의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국민 모두가 정치적으로 암울했고 경제적으로 가난했던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맨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다시 뛰자. 이명박 정부부터 한강의 기적을 뛰어넘는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하라. 지난 정권 10년 동안 이념 과잉의 반작용으로 실용() 새로운 국정의 가치가 됐지만. 실용을 통해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분명한 청사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남북문제를 비롯한 대() 4강 외교에서부터 국민이 안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북정책의 원칙을 확고히 세우고, 운용은 유연하게 해야 하며, 한미동맹을 심화 발전시켜 나가되 주변국들과도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급한 것은 경제다. 1인당 국민소득이 선진국이 되는 기준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가 지난해 2만 달러가 되기까지 12년이 걸렸다. 선진국 지표로 꼽히는 3만 달러가 되는데 다시 이처럼 긴 시간이 걸린다면 우리의 미래는 밝을 수 없다. 세계화의 파고를 넘고,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에서 벗어나려면 뭘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할지 국민이 믿을 만한 전략과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기업의 체질 개선과 생산성 향상은 물론이고, 노동조합도 기업 경쟁력에 타격을 입히는 투쟁중심의 노선을 버리고 협력적인 노사관계로 나가야 한다. 그래야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범사회적인 도전 정신의 회복과 창의성 발휘 풍조 또한 절실하다.

87년 체제와 함께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갖추었으나 민주주의의 콘텐츠는 질적으로 성숙하지 않았다. 해방공간에 비견될 정도로 이념의 대결이 심해 선진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민통합의 노력이 절실하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성적 논의와 적법 절차보다는 떼법으로 집단이기주의를 관철시키려는 풍조가 팽배하다. 법의식과 사회계약의 미비로 시위문화는 20년 전에서 거의 개선된 것이 없음을 광우병 파동이 여실히 보여줬다.

통합의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요청된다. 마침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815를 계기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발전과 통합이란 이 정권의 국정지표이자 가치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치밀한 전략과 계획이 뒤따라야 한다.

건국 60주년에 우리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결코 순탄치 않다. 우리가 세계사의 방향에 역류하는 세력에 뒷다리를 잡혀 있노라면 대한민국은 좋은 기회를 다 놓치고 무대의 뒷전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 광복 63년 건국 60년을 맞아 각계 지도층과 국민 모두가 건국이념을 마음의 좌표로 삼고 세계를 향해 나아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