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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태아 성() 감별

Posted August. 01, 2008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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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의 성()을 알아맞히는 문제와 관련된 속설이 한국처럼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엄마 배가 볼록하면 딸, 두루뭉술하면 아들. 아침 입덧은 딸, 저녁 입덧은 아들. 이런 식이다. 첫 아이가 앞으로 안기면 딸 동생, 엉덩이부터 들이밀며 안기면 아들 동생을 본다는 말도 있다. 꿈에 은수저를 받으면 아들이요, 알밤을 따거나 보면 딸이라는 등 태몽과 관련된 속설도 100개가 넘는다. 뱃속 아기의 성별이 얼마나 궁금했으면 이런 얘기들이 나왔을까.

간단한 검사로 태아 성별을 쉽게 알 수 있는 요즘에도 적잖은 부모들은 이런 원시적 수준에서 헤매고 있다. 1987년부터 태아 성 감별 고지()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어길 경우 의사면허를 취소하는 등 깜짝 놀랄 정도의 처벌을 받는다. 부모는 성별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아기 이름 짓는 것부터 아기용품 구매에 이르기까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간호사가 갓 태어난 아기의 성별을 알려주는 순간 가족대기실에서 만세 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도 우리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헌법재판소가 어제 태아 성 감별 고지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금지 조항이 저출산과 양성평등이라는 시대 변화에 맞지 않고 의료인의 직업 활동의 자유와 임부()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고 본 것이다. 지구상에서 태아 성 감별을 금지한 나라는 전통적으로 남아선호가 강한 우리나라와 중국뿐이다. 이런 규정 자체가 우리 문화와 의식의 낙후성을 드러낸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급속히 떨어지면서 남녀 출생성비가 균형을 회복하고 있다. 1996년 116.6(여아 100명 당 남아 수)이던 것이 10년 후인 2006년엔 107.4로 자연성비(103107)에 근접했다. 아들을 갖기 위해 셋째 아이를 임신하는 경향이 강한 탓에 셋째 아이의 남아 출생률이 여전히 높고 세계 1, 2위의 낙태국가란 점에서 문제의 법조항을 폐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문제 조항이 폐지되면 딸이 아니라 아들의 낙태가 늘어날 것이란 얘기가 공공연한 것을 보면 말이다.

정 성 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