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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맘만 먹으면 본다

Posted August. 02, 200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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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A회계법인의 이모(29) 씨는 얼마 전 회사 전산실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회사의 세금 관련 파일을 중앙 컴퓨터에서 자신의 노트북컴퓨터로 복사한 지 1시간쯤 됐을 때였다.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노트북을 켠 후 시키는 대로 프로그램을 설치하라는 명령에 가까운 요구였다. 시키는 대로 프로그램을 설치하자 화면에서 커서가 스스로 움직이더니 노트북에 저장한 자료가 모두 삭제됐다.

이 씨는 내 노트북으로 무엇을 했는지 회사가 다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e메일과 메신저, 파일 복사는 물론 인터넷 검색까지 공공연히 사이버 공간에서 종업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기밀 보호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의견과 사생활 침해라는 의견이 엇갈린다.

얼마나 엿보나

국내 207개 기업을 대상으로 2003년 한길리서치가 벌인 설문에서 종업원이 어느 사이트에 접속하는지 감시한다는 응답은 42%였다. 종업원의 e메일 기록을 보관하고 이를 검열하는 기업은 16%. e메일은 개인 PC에서 지우더라도 기록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 수치는 최근 더욱 늘었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 측은 영업 기밀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기밀 유출은 외부 스파이가 아니라 내부 직원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기업에선 특정 단어가 들어간 e메일을 직원과 함께 열어보거나 용량이 지나치게 큰 메일을 통제하는 방법을 택한다. 모든 e메일을 일일이 보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든 e메일과 메신저를 볼 수 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의 포털사이트 MSN은 1일 어떤 메신저 프로그램을 쓰더라도 대화 내용을 밖에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메신저 프로그램은 문자 파일이 인터넷 망을 타고 오가는 것에 불과하다. 우체통에서 편지만 훔쳐내면 누구나 내용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데이터만 가로채면 다 볼 수 있다.

e메일 역시 메신저와 비슷한 원리다. 사내() 네트워크를 쓸 때는 회사 측에서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인터넷에선 검열을 막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돌아다닌다. 메신저 대화 내용을 암호화해 읽을 수 없게 만드는 심프(SIMP)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MSN이나 네이트온은 사용자들의 요구 때문에 아예 메신저 프로그램에 암호화 기능을 추가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사생활 침해 우려는 없나

미국에선 사이버 검열이 당연하다는 분위기다. 델라웨어와 코네티컷 주를 빼면 나머지 주에선 검열 사실을 종업원에게 알릴 필요도 없다.

e메일 모니터링 업체인 e캐빈의 정영태() 사장은 e메일 검열은 감시가 아니라 기업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도입하는 최소한의 자구책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종업원에 대한 사생활 침해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안태윤() 변호사는 프로그램 개발자나 고위 경영자처럼 중요한 기밀을 다루는 사람만 관리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사이버 검열에 대해 국내 법조계는 종업원의 사전 동의가 있으면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법무법인 광장의 임성우() 변호사는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편리성과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충돌하는 경우가 더 늘어날 것이라며 정보통신 강국이지만 프라이버시에 대한 논의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밝혔다.

홍석민 기자

김상훈 기자



홍석민 김상훈 smhong@donga.com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