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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국빈과 선물

Posted December. 03, 2004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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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의 꽃은 양국 수뇌의 정상()회담이다. 사전에 두 나라 실무진이 분주히 오가며 회담의 형식과 의제 및 용어 선택은 물론, 정상의 동선()까지 세심히 결정한다. 정상회담에 있어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형식과 의전이다. 이 때문에 숙소, 식사, 경호, 행사장, 방문지는 물론 선물 품목과 수행원의 면면까지 철저하게 조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 국가의 안목과 품격, 외교 및 문화 역량이 한눈에 드러난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 국가원수로는 최초로 영국을 국빈() 방문(State Visit)했다. 한국 대통령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함께 왕실근위대를 사열한 뒤 기마근위병의 호위를 받으며 왕실마차를 타고 버킹엄 궁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인 전체가 그런 대접을 받는 듯 가슴이 뿌듯했다. 영국에서 유학한 빌 클린턴 대통령은 토니 블레어 총리의 강력한 추천에도 불구하고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 때문에 국빈 방문의 예우를 누리지 못했다.

노 대통령은 국빈 만찬 후 영국 여왕과 30여분 간 차를 마시고 환담하면서 취화선 박하사탕 초록물고기 오아시스 등 4편의 한국영화를 담은 DVD를 여왕에게 별도로 선물했다고 한다. 할리우드 영화에 맞서 문화적 자존심을 지켜내고 있는 국산영화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는 탁월한 선택이다. 1993년 테제베(TGV)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소피 마르소 등 프랑스 유명 문화 예술인들을 여럿 데리고 내한했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문화외교에 비교될 만하다.

그러나 작품 선택이 과연 적절했는가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을 제외한 세 편이 현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이창동 감독의 작품인 것을 시비하는 것은 아니다. 세 작품 모두 국제영화제 수상작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단지 평단 일각에서 이 세 편에 대해 소외되고 상처받은 주인공을 통해 한국의 현실을 외눈박이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지적도 있었던 점이 마음에 걸린다. 1999년 한국을 국빈 방문했을 당시 인사동과 하회마을에서 한국 반가()문화의 품격과 향취를 만끽한 여왕이 아니신가. 여왕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해 줄 영화도 많았을 텐데.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