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가 평화헌법 개정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 [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30일 14시 00분


코멘트

Q. 헌법 개정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어 온 아베 총리는 이번 제25회 참의원 선거에서 의석수 과반을 넘겼지만 개헌 발의선 유지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개헌 추진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요. 아베 총리가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의도와 명분은 무엇이며, 만약 일본의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김해인 연세대 철학·지구시스템공학 15학번(아산서원 14기)

A. 이번 참의원 선거는 2012년 12월 출범하여 2021년 9월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는 아베 정부에 대한 중간신임도를 묻는 선거였다고 할 수 있어요. 선거 이전까지 아베 내각 지지도는 40%대를 유지하였고 이를 의식한 아베 총리도 이번 선거에서 기대수준을 낮춰 53석만 넘으면 승리한 선거라 언급한 바 있습니다. 비단 한일 관계의 악화뿐만 아니라 일본 국내적으로 아베 총리에 대한 피로도는 적지 않은데요. 2017년 3월 자민당 당규를 개정하여 3연임을 하면서 최장 9년이라는 장기집권을 노리는 보수정권에 대한 일본 국민 및 여론의 시각도 우호적이진 않았습니다. 여기에 아베총리와 부인 아키에 여사가 연루된 사학비리가 있었고, 금융청이 ‘노후에 2000만 엔’이 필요하다는 보고서 제출 뒤 공적연금이 논란이 되었으며, 오는 10월에는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이러한 국내적 수세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 내 반한 감정을 부추기고 보수 세력 결집을 위한 이른바 ‘한국 때리기’를 수단으로 사용했지만 선거결과를 보면 별반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베 총리는 이번 선거를 통해 개헌 가능한 발의선인 164석을 확보하고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아베 총리는 임기 내 헌법 개정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국민들의 헌법 개정에 대한 찬성이 40% 미만이고 반대여론도 50%가까이 이르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개정까지는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베 총리는 임기 내에 헌법 개정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가능하면 국회에서 발의를 하여 국민들에게 헌법 개정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고자 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나 이번 참의원 선거 결과, 개헌 세력이 개헌 발의선에서 3석이 부족한 161석을 차지하는데 그쳤습니다. 물론 의석수는 과반수가 넘었지만, 오히려 자민당 의석수는 10석이 줄어든 113석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향후 임기 내에 독자적인 힘으로는 헌법 개정 발의가 불가능해졌고 자민당 내에서도 아베총리의 입지는 선거 전과는 사뭇 달라질 전망입니다.

이번 참의원 선거로 당장 헌법 개정은 어렵게 되었지만 현재 일본 자민당 내에서는 일부 야당에서 개헌에 대해 유보적 입장을 갖고 있는 의원들을 포섭하여 발의를 진행시키고자 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다시 자민당 당규를 개정하여 4연임을 가능하게 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적어도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는 동안 아베 총리는 헌법 개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아베 총리는 왜 헌법 개정에 대해 강한 집념을 보이는 것일까요? 그 배경은 태생적 한계라고 할 수 있고, 그 목표는 전후체제의 종식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아베 총리는 우리에게 A급 전범으로 알려진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정책적 성향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정한론의 근거지인 야마구치 현 출신인 기시 전 총리의 제국주의 향수가 외손자인 아베 총리에게 이어졌다고 할 수 있겠지요.

또 지금의 일본 헌법은 1946년 11월 3일에 승전국인 미국의 연합국최고사령부에 의해 제안된 내용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습니다. 미국에 의해 만들어진 헌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행 헌법은 패전 당시의 일본의 상황을 반영한 전쟁포기, 전력 불보유, 교전권의 부인 (헌법 9조)을 명기하고 있습니다. 평화헌법이라는 포장을 두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패전의 상징이기도 하지요. 아베 총리는 이를 개정해 스스로 자주헌법을 만든 뒤 전후체제의 종식을 선언하고 ‘강한 일본’ 그리고 보통 국가를 만들겠다는 초선의원 시절부터의 정치적 야심을 달성하겠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헌법 개정에 대해 우리가 찬성하거나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내정간섭에 해당하겠지요. 그러나 일본은 우리와 지정학적으로도 안보상으로도 매우 중요한 국가이기 때문에 일본의 헌법 개정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일본의 헌법 개정이 한반도 및 동아시아 정세에 상당한 파장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헌법 개정은 일본의 재무장 및 보통국가화를 의미합니다. 일본이 재무장을 하게 된다면 동아시아 지역정세가 ‘미국과 일본 대 중국’에서 ‘일본 대 중국’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일본은 지금까지의 미일동맹 체제와는 차별화된 동아시아 전략을 구사할 것이고 경제력에 걸맞는 안보 강대국으로 부상하려 할 것입니다. 우리는 무장한 새로운 강대국을 이웃으로 맞아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겠지요.

또 일본의 헌법 개정은 일본의 전후체제와의 단절 또는 청산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일 간에는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오히려 과거사 문제가 외교 갈등에서 통상 분쟁까지 확대되었고 나아가 양측의 안보 공세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만일 일본이 헌법 개정을 통해 새로운 보통국가로 탈바꿈하게 된다면 과거사 갈등은 더욱 심화되겠지요. 지금은 북한의 비핵화 및 한미일 안보 공조가 필요한 상황이라 미국의 중재나 관여가 가능하겠지만 헌법 개정이후의 일본에게는 더 이상 미국의 중재나 관여가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숙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대외전략연구실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