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정치

2차 北美정상회담 성과 없다면, 北민심 더 악화될까? [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입력 2019-02-13 14:12업데이트 2019-10-1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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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일본 아사히신문이 북한 청진 장마당의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아사히신문은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시장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생존싸움을 벌이는 주민과 북한 지도층 간의 거리가 벌어질 수 있다는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 전문가의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핵개발로 조성된 대외 제재 국면이 김정은 체제의 내구성에 어떤 영향을 줄지 궁금합니다.
-차지현 연세대 경제학과 14학번(아산서원 14기)

A. 북한 내부 소식통들의 전언에 따르면 2017년 8월부터 시작된 유엔 제재의 효과는 약 1년 뒤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북한 내 부동산의 극적 하락입니다. 북한은 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이미 집을 사고파는 세상이 된지 오랩니다. 그래서 북한 간부들을 포함한 권력층들은 축적한 돈을 집을 사놓는데 많이 썼습니다.

하지만 요즘 평양을 보면 자고 나면 집값이 뚝뚝 떨어집니다. 불과 반년 만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2019년 2월 현재 몇 달 전 고점 대비 반값, 많게는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1998년 한국의 외환위기 상황을 연상케 해, 북한판 외환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재작년 8월 북한의 3대 돈줄인 석탄·수산물 수출과 의류 임가공을 꽁꽁 틀어막는 유엔의 강력한 대북 제재가 시작된 뒤 1년 정도는 잘 버티는가 싶었는데 결국 터질 것이 터진 것입니다.

최근 몇 년간 가장 핫한 지역으로 부상하던 평양역 뒤편 평천구역의 150m²짜리 새 아파트의 호가는 1만5000달러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골조만 세우고 분양해도 순식간에 팔리던 아파트가 반년 만에 실내마감까지 끝내고도 3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습니다.

이런 상황의 주원인은 대북 제재입니다. 수출이 꽁꽁 막히자 달러도 씨가 말랐습니다. 북한 권력층의 최대 돈줄은 수출입 과정에서 이면계약을 통해 챙기는 달러입니다. 가령 석탄의 국제 시세가 t당 100달러면 수출시 장부에 70달러로 적어 보고하고 나머지 30달러를 숨기는 식입니다. 이를 통해 매년 국가 무역에서 증발한 수십억 달러가 평양의 부동산과 사치품 구매에 쓰입니다.

2015년 북한 평양 대동강변에 완공된 미래과학자거리에 고층 아파트가 솟아 있는 모습. 치솟던 평양 부동산 가격은 외환위기로 최근 몇 달 새 큰 폭으로 떨어졌다. 동아일보 DB.

최근 몇 년 동안 평양에 새 아파트가 많이 공급된 것도 가격 폭락을 부추겼습니다. 최근 수천 채씩 분양된 미래과학자거리나 여명거리는 새 발의 피입니다. 돈주들이 투자한 소규모 건축물이나 재개발 등을 통해 지어진 아파트는 훨씬 많습니다. 이처럼 공급은 늘어났는데 돈줄이 꽉 막히니 가격이 폭락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20년 동안 꾸준히 상승하던 평양 부동산은 한순간에 10년 이상의 상승 폭을 반납했습니다. 이 정도면 돈 냄새를 기막히게 맡는 ‘돈주’들이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헐값에 매물들을 사들일 만한데 지금은 그런 움직임도 없습니다. 권력층부터 부동산의 대폭락으로 주머니가 비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돈주는 곧 권력을 가진 간부들입니다.

요새 한국도 부동산 가격 하락과 거래 절벽으로 시끄러운데 만약 평양처럼 서울 집값이 반값이 된다면 당장 나라가 망할 것처럼 여론이 들끓고, 광화문은 시위대로 넘쳐날 가능성이 크겠죠. 하지만 아직 평양은 잠잠해 보입니다. 반항할 수 없는 북한 체제의 속성 때문으로 봅니다.

지방의 충격은 더 큽니다. 여기도 겉으론 평온해 보입니다. 마치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초기 수십만 명이 굶어죽어도 밖에서 몰랐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북한 사람들이 집값 폭락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북한 사람들도 인생 최대의 목표가 집 한 채 마련인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겉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질 않을 뿐이죠.

여기에다 북한 당국이 새해가 밝자마자 세도와 관료주의를 없앤다고 간부들을 죄고 있는 것도 불만을 사고 있습니다. 이번 조치는 뇌물 받는 간부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국가에서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 북한에서 뇌물은 곧 월급이고, 승진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진다는 점입니다. 권력으로 달러와 부동산을 축적해 온 간부들 사이에서 “핵무기 집착으로 경제 망치고, 왜 우리 옆구리를 차냐”는 불만이 공공연하게 나돌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부동산 가격 폭락과 뇌물 근절 캠페인은 결과적으로 김정은 정권의 안정성을 크게 위협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값 폭락에 비례해 등을 돌리는 곳이 바로 북한 체제 수호의 핵심 보루인 평양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선 간부들의 주머니에 달러가 채워져야만 합니다.

부동산의 대폭락은 매우 심상치 않은 징조입니다. 올해 계속 가다가는 북한에서 큰 일이 터질지 모릅니다. 당연히 급격히 경제가 악화되면 북한의 내구성은 급격히 약화되고, 간부들부터 “김정은을 믿고 있다가 우리가 굶어죽게 생겼다”고 원망할 것입니다. 물론 사소한 반항도 처형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특성상 당장 봉기가 일어나긴 어렵겠지만, 인민의 마음 속에서 김정은에 대한 충실성은 곧 떠나게 될 것입니다.

집값이 순식간에 반값, 3분의 1로 주저앉으면, 다음 수순은 북한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났던 자영업자들이 망하고, 이들이 장악했던 소비, 유통, 물류가 스톱이 되게 됩니다. 지금처럼 대북제재가 계속되면 북한의 2019년은 매우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 해가 됩니다. 다시 아사자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한국은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에서 돈이라도 빌려왔지만, 북한이 돈을 꿔올 만한 곳이 없다는 점입니다. 결국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이 제재를 풀도록 만드는 것이겠죠.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동아일보DB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반드시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반드시 막힌 돈줄을 풀겠다”고 내부에 던진 약속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현 상황에서 김정은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북미 회담의 성과를 추동하는 가장 큰 힘은 바로 이렇게 악화되고 있는 북한 내부 상황에서 나옵니다. 급격히 악화되는 민심을 하루빨리 달래야 하는 김정은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반드시 성과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과거처럼 더 버티기 어렵고, 미국에 많은 양보를 해야 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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