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응원’ 악명… 축구장의 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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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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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유럽챔피언스리그서 선수 눈에 레이저빔까지 발사… 우려 커지는 훌리건 난동

폭도로 변한 사람들이 몽둥이와 깨진 병을 휘두르고 돌을 던지며 거리를 점령한다. 상점은 부서지고 불타는 자동차가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는 곳에 장갑차와 중무장한 병력이 동원된다. 전장이 아니다. 폭력이 난무하는 일부 축구 경기장 주변 풍경이다.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은 최근 세르비아 축구협회에 경고를 날렸다. 경기장 안전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세르비아를 유로 2012에서 배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르비아의 모든 프로팀이 유럽에서 치러지는 각종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세르비아의 훌리건(축구장 난동꾼)은 최근 국내외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다. 세르비아 팬들은 지난해 10월 유로 2012 이탈리아와의 C조 예선 때 경기장에서 불을 피우고 상대국 국기를 불태우는 등 난동을 부려 경기가 시작한 지 7분 만에 중단됐다. 이들은 정치적 갈등을 빚고 있는 알바니아 국기를 불태우며 펜스를 부수는 등 경기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경기장 밖에서 경찰과 충돌했다. 또 해외 원정 응원에 나서 프랑스 팬들을 때려 중태에 빠뜨렸다. 이 중 14명이 지난 1월 구속됐고 일부는 징역 35년형에 처하기도 했다.

최근 유럽에선 각국 대표팀이 출전하는 유로 2012 예선뿐만 아니라 각국 프로축구 상위팀이 참가하는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가 한창이다. 흥분한 팬들이 폭력사태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열린 프랑스 마르세유와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간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는 마르세유 팬들이 맨유 선수 나니의 눈에 레이저 빔을 쏘아 경기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UEFA는 17일 이에 대한 청문회를 시작할 예정이다.

최근 훌리건의 세력 판도는 동진하며 확산되고 있다. 훌리건은 잉글랜드에서 시작됐다. 1980년대 잉글랜드 훌리건들이 가장 악명 높았다. 그러나 1985년 헤이젤 참사로 불리는 대형 참사 이후 제재가 강력해지면서 잉글랜드 훌리건들은 비교적 자국 내에서는 얌전해졌다. 그러나 이들은 경기장 외곽과 해외 원정에서는 여전히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포르투갈 등 축구 강국에서 훌리건은 뿌리 깊은 골칫거리여서 이들에 대한 단속도 그만큼 강화돼 왔다. 훌리건 전담 수사기관이 생겨났고 각국 경찰은 주요 훌리건 리스트를 작성해 이들의 경기장 출입 및 해외 원정 응원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훌리건도 이에 맞서 변화했다. 이들은 경찰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점잖은 복장을 하고 때로는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단체복을 맞춰 입기도 한다. 그러면서 소위 펌(firm)이라는 조직적인 응원체계를 통해 단결을 강화해 왔다.

한편 서유럽에서 훌리건이 경찰의 제재로 다소 숨죽이는 동안 이 같은 체계적 단속 기구를 갖추지 못한 동유럽에서 훌리건이 득세하고 있다. 러시아와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등이다. 러시아는 경제 갈등,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등은 유고연방 붕괴 이후 민족, 인종 간 갈등이 축구장 폭력사태로 연결되기도 한다.

경기장에서의 광적인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 속에서 각종 욕구불만의 배출구를 찾던 사람들이 자제력을 상실하면서 쉽게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민감한 정치 사회적 이슈를 끌어들이면서 폭력성을 배가하고 있다. 이들은 때로 인종문제 지역문제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축구는 그라운드 밖의 야만적인 폭력과도 맞서고 있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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