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하는 사람들[내가 만난 명문장/김준현]
“당사자가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온화한 중재자인 척할 수 없고 객관적 거리를 확보한 관찰자일 수 없다. 당사자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아무리 작고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무언가를 걸게 만드는 것.” ―이장욱 ‘영혼의 물질적인 밤’ 중가끔 ‘몇만 명이 죽었다’ 같은 단문 앞에서 아연해질 때가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낱개의 수로 셀 수 있다는 게 무서울 때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무한에 가까운 우주가 문장으로 다뤄질 때 얼마나 쉽고 가벼워지는지 몸서리친 적이 있다. 그래서일까. 한때는 읽고 쓰는 일을 가장 안전한 자리에서 비정한 세계와 대면하는 일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다. 페이지를 사락사락 가볍게 넘기며 소설 속 인물이 겪는 삶의 희로애락을 관람하는 일이라고. 울고 전율하고 심호흡을 하더라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죽음을 지근거리에 둔 이의 마음에 빙의해 시를 쓰고 나서도 언제든 안온한 나의 책상으로 빠져나오면 그만이라고. 그러나 그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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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