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을 건너 돌아오는 말[내가 만난 명문장/김세실]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되고 싶을까.”―최은영의 ‘밝은 밤’ 중멀게만 느껴지는,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어떤 시간으로부터 툭 날아온 편지처럼 ‘밝은 밤’은 우리에게 아득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서사는 지연이 ‘희령’이라는 도시에 터를 잡아 유년 이후로 왕래가 없던 할머니를 만나며 시작되는데 할머니 영옥이 손녀 지연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어두웠던 지연의 일상을 빛으로 이끈다. 걸음을 뗄 때마다 마주친 상처와 모욕에도 불구하고 끝내 영옥을 살아가게 한 사랑의 서사는 손상된 지연의 내면을 한 겹씩 들춰내며 마음을 온전히 바라보게 한다. 홀로 남겨졌던 지연의 속처럼 마음이 진공에 놓이면 어떻게 될까. 어떠한 힘도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공간에 마음을 내려두면 어떻게 될까. 무거워서 가라앉을까, 가벼워서 붕 떠버릴까. 가라앉지도, 뜨지도 못한 채 심연을 일렁이는 지연을 감싸는 영옥의 말들에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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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