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꽃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39〉
박카스 빈 병은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신다가 버려진 슬리퍼 한 짝도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금연으로 버림받은 담배 파이프도 그 낭만적 사랑을 냉이꽃 앞에 고백하였다 회색 늑대는 냉이꽃이 좋아 개종을 하였다 그래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긴 울음을 남기고 삼나무 숲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냉이꽃이 내게 사 오라고 한 빗과 손거울을 아직 품에 간직하고 있다 자연에서 떠나온 날짜를 세어본다 나는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송찬호(1959∼)봄이 오면 생각나는 시인, 송찬호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 시인은 충북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그곳에 심긴 나무처럼 살고 있다. 스스로 초목이 되어 사는 사람이 봄이 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곧 꽃이 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꽃과 나비 같은 것은 상상이 아니다. 그건 보고 듣고 만진 진짜이며 진심이다. 그래서 봄에는 송찬호 시인이 더 좋다. 시인은 꽃이 피어서 어여쁘고 나는 기쁘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이 꽃에는 나의 역사와 너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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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