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진료비를 깎아달라 한 까닭[이상곤의 실록한의학]〈144〉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으로 불릴 만큼 몸이 허약했던 세종의 재위 13년 어느 날 일이었다. 사신을 따라 조선에 왔다 세종의 치료에 나섰던 명나라 태의의 진료비를 두고 군신 간에 언쟁이 벌어졌다. 승정원에서는 “지난번에 삼베 6필을 주었으니 이번에는 삼베 5필을 주자”고 결정한 반면, 세종은 “이번에는 진맥은 안 하고 약만 지었으니 삼베 2필만 주자”고 제안했다. 국왕으로서의 체면을 저버리고 푼돈마저 깎는 쩨쩨한 남자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혈세를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세종의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에 진맥은 병이 있음을 확인해 주는, 요즘으로 말하면 진단서의 기능까지 했다. 문종 때 이조판서 권맹손은 병가를 내고 목욕비용(휴가비)을 모두 받았는데 진맥도 받지 않고 꾀병으로 병가를 내 국고를 낭비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후 의원의 진맥 후 병이 확인되면 치료 날짜를 정해 병가를 주는 대안이 모색됐지만 “대신을 우대하지 않고 의심하며 의원만 믿는다”는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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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