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기자라 철모도 지급 못받고… 목숨 건 현장취재였죠”

《6·25전쟁 때는 종군기자들도 전쟁터에 있었다. 지갑종 유엔한국참전국협회장(93)은 당시 로이터통신 기자로 2년 넘게 전후방을 누비며 역사의 현장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가 겪은 6·25의 실상과 소회, 전쟁 이후 활동을 1인칭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내가 종군기자가 된 것은 1951년 5월이었다. 그해 10월경 국군을 따라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을 취재하러 갔다. 1950년 9월 국군과 유엔군의 총반격 때 낙동강 전선에서 후퇴하지 못한 인민군 낙오병들이 산악지대로 숨어들어 빨치산(공산 게릴라)이 됐다. 여러 지역에서 빨치산들이 활동했는데 가장 규모가 컸던 곳이 지리산이었다. 국군은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벌였다. 국군을 따라 전남 구례 쪽에서 지리산으로 들어가 계곡을 지날 때였다. 느닷없이 총성이 들렸다. 빨치산에게 포위가 된 것이었다. 전방에선 총알이 앞에서 온다는 것을 알지만 지리산에선 총알이 어디에서 날아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앞뒤를 알 수 없었다. 종군기자에게는 철 자세히 보기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