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81>표준전과를 삼켜버린 소금창고
인천 개항장 거리에서 배다리 마을로 넘어가는 싸리재 고갯길. 그 한 모퉁이 낡은 벽돌 건물의 출입문에 이렇게 쓰여 있다. ‘동양서림’ ‘새전과·표준학력고사·중학전과·새산수완성’. 출입문의 널빤지 틈새는 벌어졌고 하얀색 페인트 글씨는 탁하게 바랬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래된 창고 분위기다. 벽돌들은 여기저기 금이 갔고, 천장엔 먼지 낀 옛날식 애자가 붙어 있다. 한쪽 벽엔 누런 태극기가 걸려 있고 1980년대 신문지를 붙였던 흔적도 보인다. 이곳에 들어오는 미술작가들은 “아, 여기서 전시회를 열고 싶다”고 탄성을 지르기 일쑤다. 예술공간 ‘잇다스페이스’의 풍경이다. 배다리 마을은 인천지역 근대의 길목이었다. 130여 년 전 제물포항으로 들어온 근대 문물은 배다리를 거쳐 인천지역으로 확산되었다. 당시 개항장 일대에서 일본인, 중국인에게 밀려난 한국인들이 이곳에 모여 살았고 성냥공장 양조장 미곡상회 등이 생겨났다. 1950, 60년대엔 헌책방들이 가세하면서 헌책방 골목으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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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