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의 시의 눈]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반칠환(1963∼ )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 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시를 읽자니, 안톤 슈나크의 서정적인 산문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중국 작가 주쯔칭의 ‘아버지의 뒷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기도 한다. 슈나크는 작고 희미한 것도, 멀고 오래된 것도, 크고 오만한 것도 다 슬프다 했지. 주쯔칭의 글엔, 살기 위해 아버지는 난징으로, 아들은 베이징으로 기약 없이 헤어져야 하는 쓸쓸한 플랫폼이 나온다. 술술 읽어 나가기가 어려웠었다. 슬프기도 쓸쓸하기도 한 이 짧은 시에도, 일상의 무감각한 시간을 날카롭게 정지시키는 순간이 들어 있다. 뛰어다녀도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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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