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과거 없는 오늘의 공허함… 그대, 추억이 필요한가요
《 “건축이란 기억을 부수는 게 아니라 그 기억을 밑그림으로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재조직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 같은 꿈을 이루어내는 일에 이미 많이 실패해버렸습니다.” ―해질 무렵(황석영·문학동네·2015년) 》 소설에서 한 건축가는 도시 재개발 사업이 기존 건축물을 제거해 버리는 데만 급급하다고 지적한다. 새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낡은 집들의 특성, 그곳에 자리 잡은 문화를 어느 정도는 반영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삶도 건축가가 말하는 재개발 사업을 닮았다. 이들은 과거를 부정하거나 망각한 채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만 질주한다. 과거를 추억할 여유가 이들에게는 없다. 주인공인 60대 중반의 건축가 박민우는 고향인 산동네 ‘달골’에서의 기억을 애써 잊는다. 휴대전화에 ‘잠금 설정’하듯 달골의 친구도, 옛사랑 차순아도 차단해 버린다. 20대 후반의 여성 연극인 정우희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지나간 시간을 생각해보면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이 그저 희미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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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