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아내로 산다는 것[이은화의 미술시간]〈389〉
폴 세잔은 아내 마리오르탕스 피케의 초상을 30여 점이나 그렸지만, 그의 풍경화나 정물화만큼의 주목은 받지 못했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세잔 부인’(1888∼1890년·사진)도 그중 하나다. 그림 속 피케는 빨간 드레스를 입고 의자에 단정하게 앉아 있지만, 표정은 무덤덤하고 감정의 기색이 거의 없다. 세잔은 아내를 왜 이런 모습으로 그렸을까? 피케는 석공의 딸로 태어나 프랑스 파리에서 책 제본과 모델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1869년 세잔을 만나 동거를 시작했고 아들도 낳았지만, 세잔은 재산가였던 아버지의 반대가 두려워 17년 동안 아내와 아들의 존재를 숨겼다. 두 사람은 1886년, 세잔의 아버지 사망 직전에야 정식 부부가 됐다. 하지만 이미 마음의 거리는 멀어진 뒤였다. 모델로서의 시간도 쉽지 않았다. 세잔은 오랜 관찰과 느린 속도로 그림을 그렸고, 피케는 긴 시간 포즈를 취하는 것이 지루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남편이 불같이 화를 냈다. 심지어 “사과처럼 가만히 있으란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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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