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하루전 통보’ 결례에도… 정부, 4시간만에 北요구 수용
심야 전격 취소로 뒤통수 맞아… 北 설명도 사과도 전혀 없어
“北에 일방적 끌려다녀” 지적

평창 올림픽에 대한 여론도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올림픽에서 뛸 선수단도 확정되지 않았는데 예술단 동선부터 먼저 점검하겠다는 북측에는 “선전 갑질”이라는 비판이, ‘방문 하루 전 통보’라는 외교적 결례도 마다않고 수용한 정부엔 “김정은에게 잔치 못 열어줘서 안달”이라는 비난까지 나오던 찰나였다.
○ 북한의 기습 통보에도 4시간여 만에 화답
15일 예술단 파견 관련 남북 실무접촉 후 나흘 만에 북측이 보낸 파견 통보는 기습적이었다. 실무접촉 직후 이우성 남측 수석대표가 “공연장 선정을 최종 확정해야 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오는 걸로 저희도 희망하고 있다”고 했지만, 방문 전날 통보까지 예상한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합동 업무보고 도중 부하 직원으로부터 긴급 메모를 전달받았고, 통일부는 4시간여 만인 오후 2시 45분 북측에 ‘동의한다’고 회신했다. 2시간 뒤엔 현송월 등 점검단이 머물 숙소와 강릉을 먼저 둘러본 뒤 서울로 올라오는 식의 동선을 담은 체류 일정까지 북측에 통보했다.
판문점 채널로 후속사항을 채 합의하기도 전인 늦은 오후, 정부는 23일 남측 선발대 명단까지 보냈다. “금강산 남북 합동 문화행사와 마식령스키장 남북 스키선수 공동훈련을 2박 3일간 점검할 12명을 동해선 육로로 보내겠다”는 통지였다.
○ 북한의 ‘매력 공세’가 한방 먹였다
이번 사태는 김정은이 평창 올림픽에 몸이 단 문재인 정부를 들었다 놨다 하며 확실하게 한반도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현송월을 전면에 내세운 ‘매력 공세(charm offensive)’ 전술이 대표적이다. 주말 동안 서울과 강릉을 돌며 남측을 휘젓는 유명인과 그 일행들로 우리 국민들의 시선을 빼앗고 스포츠 행사라는 본질을 흐리려 했다는 것이다. 단일팀 구성과 한반도기 사용으로 남남 갈등을 겪고 있는 여론을 더 분산시키겠다는 의도였다. ‘사전점검 단장으로만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인 현송월이라는 실세를 보냈으니 한국 정부도 성의를 보이라’는 식으로 북한이 올림픽 이후 ‘평창 청구서’를 들이밀었을 것이다.
북한이 벌인 현송월 파견 취소로 안 그래도 북한발 ‘평창 드라이브’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여론은 더 확산될 듯하다.
한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우리를 갖고 논 것 같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사전점검단 방남을 앞두고 현송월이 부각되고 그로 인해 자신들의 최고 존엄(김정은)과 현송월의 관계를 우리 측 여론이 계속 언급하면서 최고 존엄을 비하했다고 북한이 판단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안 그래도 20대를 중심으로 북한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확산되고 있다.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이 대표적이었는데 여기에 기름을 붓는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은 2014년 9월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선 응원단을 파견하겠다고 한 뒤 전격 취소한 사례도 있다. 북한은 당시 7월 열린 남북 실무회담 때만 해도 경의선 육로로 350명의 대규모 응원단을 보내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8월 말 돌연 취소했다. 북한 올림픽위원회 손광호 부위원장은 북한 조선중앙TV의 ‘제17차 아시아경기대회에 관한 시사논평’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남관계 개선과 민족 화해와 단합을 위해 큰 규모의 응원단을 파견하기로 했으나 남측이 응원단 파견을 우려하면서 시비하고 바라지 않는 조건에서 응원단을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며 전격 취소 사유를 밝혔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홍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