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23분 세월호 브리지에서는 진도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 교신하며 “현재 (안내) 방송도 불가능한 상태”라고 했으나 무전기를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세월호에 탑승했다가 구조된 강병기 씨(41·화물기사)는 16일 오전 9시 세월호 3층 안내데스크에서 박 씨에게 대응방안을 물었다. 이에 박 씨는 무전기로 다른 승무원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고 물었지만 답신이 오지 않았다. 박 씨 등 3층 승무원들은 답신이 없자 매뉴얼대로 “구명조끼를 입고 제자리에서 안전하게 있으라”고 안내방송을 했다. 안내방송은 승무원 A 씨(33)가 했다.
강 씨는 “박 씨가 퇴선명령을 하자 승무원 정현선 씨(28·여·사망)와 사무장 양대홍 씨(46·실종), A 씨가 3, 4층에서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며 탈출을 도왔다”며 “정 씨와 교차한 마지막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승객 한승선 씨(37·화물기사)도 퇴선명령이 지연되는 상황을 지켜봤다. 한 씨는 “숨진 박 씨와 안내방송을 하던 A 씨가 무전기 회신을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선장 이준석 씨(69) 등 브리지에 있던 승무원들은 오전 10시경 구조된 뒤 전남 707호(급수선) 뱃머리에서 세월호가 침몰하는 것을 지켜봤다. 이 씨 등 선원 7명 중 빨간색 작업복을 입은 1명만 옷이 젖어 있을 뿐 나머지 6명은 바닷물에 젖지도 않은 상태였다. 당시 전남 707호에 함께 구조돼 있던 강병기 씨는 “선장 이 씨 등 선원들이 뱃머리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귓속말을 하며 손가락으로 쉬쉬하는 행동을 했다”며 “그날 오후 병원에서 지폐를 말리던 사람이 선장 이 씨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당시 모습을 떠올리면 분노가 치민다”고 말했다.
진도=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