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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프리미엄 리포트]벽 갈라진 집 곳곳 방치… 떠날 곳 못찾은 서민만 남아

입력 2015-08-10 03:00업데이트 2015-08-10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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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주택이 늙어간다]서울 25개區 노후주택 실태는
서울 성북구 정릉동 중턱에 위치한 스카이아파트 전경. 전면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할 경우 사업성이 떨어지고 이주민 대책도 마땅치 않은 탓에 동네 전체를 슬럼화하는 ‘주범’으로 전락했다.
스카이아파트 앞에 내걸린 출입금지 안내판. 주민 대피가 시급하지만 여전히 일부 주민이 살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스카이아파트도 처음에는 고급 주거지였다. 당시에는 4, 5층짜리 연립주택이 신주거지로 인기를 모았다. 주채순 씨(77·여)는 1977년 당시 1500만 원에 아파트를 사서 입주했다. 주 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정릉 일대에서 여기만큼 좋은 집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떠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3000만 원 융자 지원을 받아 이사를 하더라도 갚을 길이 막막하다. 임대주택에서 낼 임차료조차 감당할 자신이 없다. 주 씨를 포함해 이곳에 남은 주민 대부분은 형편이 어려운 노인이다.

○ 강북 구도심에 몰린 노후 주택

스카이아파트를 비롯해 서울 저층 주택 가운데 72.3%는 20년 이상 된 노후 건물이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20년 이상 된 저층 주택이 많은 곳은 성동구(86.3%), 동대문구(82.6%), 중랑구(81%) 순이다. 모두 2008년부터 부동산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아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멈춘 곳이다.

서울에는 무려 683곳이 재개발과 재건축 뉴타운으로 지정됐었다. 이 가운데 245곳(36%)이 해제됐다. 본격적으로 뉴타운 출구전략이 언급된 이후인 2012∼2014년에만 184곳이 해제됐다. 남아 있는 구역도 사실상 사업 추진이 어려워졌다. 올 4월 서울시가 나머지 구역 가운데 사업 추진위원회가 있는 327개를 전수 조사했더니 절반 이상은 사업이 정체되거나 진행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 간 이해관계가 달라 사업에 진척이 없거나 사업성이 낮아 나서는 시행사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 주택의 평균 수명은 약 27년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짧다. 주택 수명은 기존 건물이 지어진 때부터 새로운 건물을 짓기까지의 기간이다. 한국은 미국(71.95년), 프랑스(80.23년) 등의 3분의 1, 일본(54.25년)의 절반 수준이다. 서울에는 지은 지 30년 이상 돼 사실상 ‘수명을 다한’ 저층 주택이 34.9%나 된다.

오래돼 낡은 주택의 보수가 미뤄지면 사람이 떠난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교육 여건도 나빠진다. 다시 사람이 떠나고 주택은 비어 가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실제로 서울 곳곳의 정비 사업이 줄줄이 중단되면서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엔 1만5000여 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뿐 아니라 지역 전체가 점차 ‘슬럼화’되는 것이다.

○ 한국형 도시 재생 가능할까

1980년대 이후 도시화에 따른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신도시가 대거 개발됐다. 반면 주택 공급과 기반 시설 투자가 멈춘 구도심은 점점 쇠락했다. 이른바 ‘쇠퇴하는 도심’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이들 지역은 농촌보다 열악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쇠퇴하는 도심의 노후 주택 비율은 56.4%로 농어촌(55.8%)보다 높다. 사회복지시설이나 문화체육시설도 농어촌보다 오히려 적었다. 이런 지역에 단순히 주택을 새로 짓거나 수리한다고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학교가 없고, 편의시설이 없고, 교통이 불편한 곳에 새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사람들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먼저 부동산 버블을 겪었던 선진국 역시 도심 노후 주거지에 빈집이 늘면서 슬럼화되는 과정을 겪었다. 실업 홀몸노인 보육 건강 범죄 등 사회적 문제가 동반됐다. 이에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도시 재생이다. 일본 시가(滋賀) 현 나가하마(長濱) 시, 영국 런던 템스 강변 코인스트리트 등은 낙후된 공장 및 주택 리모델링과 함께 콘텐츠를 개발해 관광객을 모으는 경제적 효과까지 얻었다.

한국은 2013년 ‘도시재생법’을 제정했다. 한국형 도시 재생은 아파트 건설 위주의 개발을 버리면서 낙후된 구도심을 살려야 한다. 또 ‘베드타운’이 아닌 일자리 창출 등 지속적 자생이 가능한 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 다른 나라보다 훨씬 복잡한 과제를 안고 있다. 현재는 서울 강북 등 일부 지역의 문제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강남과 신도시도 마주해야 하는 문제다.

서울시 관계자는 “저성장 시대에는 대규모 개발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이제 동네를 고쳐 가며 사는 방식으로 개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경임 woohaha@donga.com·이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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