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메드] (인터뷰) ‘아만자’, ‘디피’의 김보통 작가 “어쩌다보니, 만화가”

입력 2015-01-12 17:07수정 2015-01-1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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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자’, ‘디피’의 김보통 작가
어쩌다보니, 만화가


지난해 9월부터 올레웹툰에서 소리 없이 강하게 질주한 ‘아만자’. 아만자는 암환자를 발음대로 쓴 말이다. 한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나는 암환자예요!”라고 말한 것을 두고 누군가 인터넷에 ‘도대체 아만자가 뭔가요?’라고 물으면서 시작된 웃지 못 할 제목.

지난 11월 3일, ‘2014 오늘의 우리만화’로 선정되기도 한 ‘아만자’는 암을 불행이 아닌 모험으로 그리고 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보통의 작가’ 김보통 만화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EDITOR 곽은영 PHOTOGRAPHER 권오경 TOON 김보통

김보통 작가는 어느 날 문득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며 일을 그만뒀다. 이후의 삶에 대한 준비도 없었고, 할 수 있는 게 뭔지,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나 조직생활을 하며 느꼈던 작은 문제들이 목 끝까지 차있었고,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는 사건이 그의 결정에 힘을 실어줬다. 다들 열심히 일하고, 차와 집을 사고, 노후를 준비하는데, 막상 그 노후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말기 암에 걸린 젊은 여성이 나오는 TED 동영상을 본 것이었어요. 그녀는 암에 걸린 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대신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여행을 다니는 등 평소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요. 그러면서 ‘당신들과 나의 차이는 나는 무엇이 나를 죽이고 있는지를 알고 있고, 당신들은 모르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해요. 우리는 결국 모두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고요. ‘나는 남은 삶만큼은 내 뜻대로 살겠다’고 말하며 그녀가 마지막 질문을 하나 던져요. ‘Not now when?’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할 거냐는 거였어요.”


인생은 ‘어쩌다보니까’

김보통 작가는 일을 그만두고 6개월이 지났을 무렵부터 트위터를 시작했다. 그가 보기에 트위터는 저마다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욕을 하는 사람은 꾸준히 욕을 했고, 뉴스를 전달하는 사람은 계속 뉴스를 전달했다.

시를 쓰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그림을 그렸다. 매일 그림을 그려 핸드폰으로 찍어 올렸는데 사람들이 ‘그림은 못 그리는데 희한하게 예쁘네요’라는 말을 해줬다. 그 말이 좋아 계속 그림을 그렸고 그것이 그를 만화가의 길로 이끌었다.

다른 것도 있었을 텐데 왜 하필 그림이었냐고 물으니 “다른 게 없어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림 그리는 건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그리고 막상 모든 간판을 내려놓고 나니 할 수 있는 게 그림 그리는 것밖에 없었어요. 그땐 그저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다 잔고가 바닥이 나고 진지하게 다시 회사에 들어가야 하나 대학원에 가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최규석 작가님이 만화를 그려보겠느냐고 제안해 오셨어요. 저 말고도 그림을 그려서 트위터에 올리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6개월 연재를 하면서 고민을 더 해봐야지 했는데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어쩌다보니까. 인생은 ‘어쩌다보니까’인 것 같아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김보통 작가의 첫 작품은 2013년 9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올레웹툰에 연재한 ‘아만자’이다.

암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아만자’가 연재되는 동안, 김보통 작가는 수시로 아만자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라고 강조했다. 그 결말은 처음 연재 가부를 결정하는 회의에서부터 결정된 사항이었다고 한다.

“제가 암환자에 대해 그리겠다고 말씀을 드리니, 그건 결말이 뻔하다, 신파다, 우울하다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런 만화를 누가 보겠느냐는 것이었는데, 그때 제가 못 박아둔 게 무조건 해피엔딩이다, 나는 새드엔딩엔 관심이 없다는 거였어요. 암환자를 대상으로 슬프게 끝을 내는 건 제가 원치 않았어요. 결말을 바꾸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연재를 시작했고 독자들이 믿고 기다려주신 덕분에 해피엔딩으로 끝낼 수 있었어요.”

‘아만자’ 완결 후 지난 11월부터 한겨레에 연재하기 시작한 ‘디피(D.P)’는 군대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고 있는데, 군대에서 탈영병 잡는 군탈체포조의 이야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디피’라는 단어도 탈영병을 잡는 헌병 군탈체포조를 일컫는 말이다.

김보통 작가는 군대 시절 군탈체포조에 있었던 본인의 경험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따오긴 했지만, 탈영 동기나 체포 과정, 주인공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모두 창작된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암환자에 대한 이야기도, 탈영병에 대한 이야기도 기존에 정면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소재이다.

“제 만화가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는 않아요. 탈영병도 암환자도 사람들이 웬만하면 모른 척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예요. 앞으로 그리게 될 내용도,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될 거예요. 그러나 그곳에도 분명 사람이 있고 삶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쁜 이야기, 밝은 이야기, 아름다운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하니까요.”

특히 암환자는 신파의 대상이나 드라마적 장치로만 이용하려고 하는 소재이다. 암환자가 주체가 되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 암환자 본인들도 깡말라서 죽어가는 불쌍한 사람으로 자신들이 묘사되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그의 두 번째 작품 ‘디피’의 소재인 탈영병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분명 탈영병들이 있다는 건 알지만, 탈영병이 어떤 사연을 가졌는지는 모른다. 대부분 탈영병에 대해 참을성이 없거나 조직에 적응을 못 한다고 생각하며 개인적인 문제로만 표현하는데, 김보통 작가는 ‘정말 탈영이 개인의 문제일까’에 대해 질문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탈영병들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 왜 탈영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 누군가는 분명하게 이야기해줘야 한다.

이렇게 사각지대의 소재를 바라보는 시각 때문에 많은 이들이 김보통 작가를 따뜻하고 주변을 잘 챙기는 사람으로 여긴다. 하지만 막상 김 작가는 자신이 그런 이미지와는 정반대라고 말했다.

“저는 저희 어머니께 ‘나는 가끔 네가 내 자식인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예요. 아무래도 관계에 소홀해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편찮으신 동안에도 저는 회사에 다닌다는 핑계로 병원에도 많이 못 갔어요. 정말 죄지은 기분밖에 안 드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 그런 이야기를 그려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못해서. 제가 못해서.”


누군가는 이야기해줘야 한다

김보통 작가는 트위터에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 지금 하고 있는 생각, 그리고 사회에 대한 이야기. 인터뷰 전 김보통 작가가 쌍용차 부당 해고와 관련한 굴뚝 농성에 대해 트윗을 한 내용을 보고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말을 붙였다.

“지난주에 드라마 ‘미생’이 완결했잖아요. 그날 트위터에서 난리가 났어요. 미생, 너무 잘 봤다, 비정규직의 서러움을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드라마가 끝난 시간에 굴뚝 위에는 부당해고자가 있었어요. 이 사람들의 관심이 왜 여기까지 오지 않을까? 드라마 속의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의 고통에는 이렇게 공감을 하면서 왜 여기 존재하는 사람들의 고통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걸까? 이들이 생산직이라서? 양복을 안 입고 있어서? 화려하지 않아서?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그래서 누군가는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보통 작가는 사람들이 ‘미생’에는 환호하면서 막상 그와 같은 현실은 외면하는 것이 야속했다고 했다.

‘굴뚝 위에서 농성하고 있는 노동자가 장그래의 20년 뒤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 걸까. 게다가 그들은 정규직이었다가 부당해고를 당했는데…….’

“사람들은 아름답지 못한 것에 공감하면 스스로가 아름다워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름다운 것에만 관심을 두는 거지요. 그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환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런 내용을 올리는 거예요.”

김보통 작가가 트위터를 처음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가장 많이 다룬 소재는 광주 민주화항쟁에 대한 것이다. 김 작가가 만화를 시작하며 처음으로 매일 한 컷씩 그려 올린 만화도 ‘나의 이름은’이라는 제목의 광주 민주화항쟁에 대한 만화였다.

“제 또래 친구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광주는 제게 너무 큰 트라우마예요. 제가 유치원에 다닐 때 사촌 누나가 외국인 신부가 찍은 영상 하나를 보여줬는데, 사람들을 굴비 엮듯 철사로 묶어 바닥에 쪼르르 깔아놓고 한 명씩 총으로 쏘던 모습이었어요. 그런 광주 민주화운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마무리되고,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사람들은 잘 몰라요. 아는 사람도 피상적으로만 아는데, 정기교육에서 그 모든 과정과 사건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에요. 안 가르쳐주면 잊히게 돼요. 그러면 결국 똑같은 잘못이 반복돼요. 그래서 꼭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만약 사회참여적인 만화를 그리게 된다면 광주 관련 만화가 되지 않을까 해요.”


작은 도서관 관장에 대한 꿈

김보통 작가의 꿈은 작은 도서관의 관장이다. 이미 정사서 2급 자격증도 있다.

“물리적으로 책에 둘러싸여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도서관을 좋아해요. 책을 읽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면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예요. 제가 어린 시절 책이라는 게 없는 가정환경에서 자랐어요. 집에 책이라고 할 만한 건 아버지가 책 외판원으로 일하실 때 본인 실적 때문에 사뒀던 세로쓰기로 돼 있는 고전이 다였어요. 어린 저는 볼 수도 없는 ‘차타레 부인의 사랑’과 같은 고전이었지요. 그래서 항상 책에 대한 결핍을 가지고 살아왔어요.”

김보통 작가는 지금도 분명 어딘가에 30년 전의 그와 같은 어린아이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책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책 자체를 접할 기회가 없는 어린 친구들이 지식의 불평등 체계 속에서 자라나면 나중에 큰 불이익이 될 것이라고.

“그래서 책이나 정보를 접할 기회가 부족한 곳에 작은 도서관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저는 책이 해야 하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실용적인 것에만 가치를 두는 세상이 되면서 근간은 계속 부실해지는 것 같아요. 저는 당장 굶어 죽지 않겠다는 확신만 들면 그때부터 버는 돈은 모두 도서관을 만드는 데 쓰고 싶어요. 좋은 차나 좋은 집을 사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요. 어떻게 보면 더 큰 물욕이지요. 더 크고 더 많은 도서관을 만들고 싶은 거니까요.”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 만화라면 기왕이면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소설이라면 자신이 쓴 소설로, 음악이라면 자신이 작곡한 음악으로, 영화라면 자신이 쓴 시나리오였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계속 만화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다른 걸 또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

“앞서, 회사를 그만두면서 뭘 할 수 있는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몰랐다고 했는데, 그때도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음악이었어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는데, 하고 싶다는 꿈은 가지고 있었어요. 지금도 음악에 대한 미련은 계속 남아 있어요. 연주자가 아니라 작곡가가 되고 싶어요. 지금도 기존 곡을 재현하는 건 계속 연습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되지 않을까요.”


Question & Answer


Q 만화를 어떻게 그리게 됐나.


Q 필명이 김보통이다. 왜 보통인가.


Q 만화가의 삶은 어떤가.


Q 만화가에게 체력관리는 중요할 것 같다.


Q 2015년도 계획은.


Q ‘아만자’는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복기한 작품이기도 하다. 아버지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사제공 = 엠미디어(M MEDIA) 라메드 편집부(www.remede.net), 취재 곽은영 기자(kss@egihu.com), 촬영 권오경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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