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도심 한밤까지 “만세”…경찰 닥치는대로 구타 ‘처참’

이진 기자 입력 2020-04-21 11:40수정 2021-01-22 16:35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1920년 08월 26일
플래시백

1920년 8월 24일 경성의 하늘은 맑았습니다. 가을에 접어드는 입추(立秋)와 더위가 그치는 처서(處暑)가 지나 한숨 돌리는 때였죠. 하지만 경성은 건드리면 터질 듯한 숨 막히는 긴장감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칼과 육혈포로 무장한 일제 경찰이 눈을 번득였고 기마대와 차량대가 도로를 질주했습니다. 일제는 전날 밤 조선인이 묵는 여관은 물론 미심쩍은 집과 사람을 샅샅이 수색까지 했죠. 종로와 남대문 서대문 동대문 등의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거리에는 흰옷 입은 조선인들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서성거리고 있었죠.
미국 의원단이 도착하는 8월 24일 독립 요구 시위에 동조해 문을 닫은 종로의 상점가

이날 오후 8시 미국 상하원 의원과 가족 등 40여 명의 시찰단을 태운 특별열차가 남대문역에 도착했습니다. 원래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떠난 시찰단은 필리핀 상하이 베이징 펑톈 등을 둘러본 뒤 곧장 도쿄로 갈 예정이었습니다. 이들이 도중에 일정을 바꿔 1박2일 경성에 들르기로 하면서 비상이 걸렸습니다. 조선인들은 강력한 독립 의지와 열정을 보여주기 위해 제2의 3·1운동을 준비한 반면 일제는 이를 가로막으려 했던 것이죠.

의원단이 도착할 무렵 어둑한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거리의 조선인들은 수천 명으로 불어나 있었죠. 숙소인 조선호텔로 달리던 의원단 차량 몇 대가 대한문 앞으로 방향을 틀자 갑자기 ‘만세!’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경찰이 시위 주도자를 잡으려고 달려들자 군중들은 을지로와 종로 쪽으로 피하면서 계속 만세를 외쳤습니다. 청년 2명을 잡아가는 일제 형사를 군중이 육박전을 벌이며 막아 형사가 육혈포를 쏘는 일까지 벌어졌죠. 자정 가까이 되도록 곳곳에서 만세 함성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동아일보는 8월 26일자 3면에 시위 상황을 자세하게 보도했습니다. 이때까지 의원단 움직임을 낱낱이 전한 것은 물론이었죠.
8월 24일 오후 8시경 남대문역에 도착해 특별열차에서 내린 한 미국 상하 의원단 일행

이에 앞서 의원단이 중국 일본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은 상하이 임시정부와 동아일보는 바빠졌습니다. 조선 독립을 호소하고 일제 탄압을 고발하며 세계에 우호적인 여론을 확산시키기 위해서였죠. 임시정부는 안창호를 위원장으로 한 교제위원단과 대표단을 구성해 여러 환영회와 면담 자리에서 외교전을 펼쳤습니다. 이광수에게 ‘미국 의원단에게’라는 진정서를 ‘대한전국인민대표’와 ‘대한각여자계대표’ 명의로 각각 쓰게 해 전달하기도 했죠. 8월 초, 중순 평안남도 도청과 신의주 철도호텔 등의 폭탄 투척과 당일 시위도 임시정부 활동의 연장선이었습니다.

동아일보는 의원단이 경성을 방문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천리구(千里駒) 김동성과 추송(秋松) 장덕준 두 기자는 베이징에서 의원단과 접촉하며 취재도 했죠. 특히 김동성은 오하이오주립대학에서 공부하는 등 7년 간 미국에서 살아 영어가 능통했습니다. 김동성은 스티븐 포터 하원 외교위원장과 존 스몰 의원단장 등에게 경성 방문을 요청해 결국 성사시켰습니다. 일제가 경성에는 콜레라가 유행하고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겁을 주었지만 소용이 없었죠. 이 때 김동성이 포터 위원장과 다져놓은 친분은 1년 뒤 예상하지 못한 선물로 돌아왔습니다.

동아일보는 의원단이 도착하는 날에 맞춰 24일자 1면에 ‘미국 의원단을 환영하노라’ 사설을 한글과 영문으로 실었습니다. 장덕수 주간은 사설에서 ‘우리 손에는 아름다운 꽃이 없고 우리 입에는 꿀 같은 말이 없다. 제군을 맞을 때에 우리는 그 무엇으로 할까. 오직 뛰노는 가슴과 넘치는 기쁨으로써 하리라’라며 환영했습니다. 장 주간의 형인 장덕준은 스몰 단장의 인터뷰를 이날 자 3면 머리기사로 썼죠. 조선사람만의 환영회도 준비했으니 꼭 참석해 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습니다. 한편 편집감독 양기탁은 임시정부 요청으로 국내 주요 인사들의 서명이 담긴 독립청원서를 의원단에게 전달하려다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주요기사
이진 기자 leej@donga.com


과거 기사의 원문과 현대문은 '동아플래시100' 사이트(https://www.donga.com/news/donga100)에서 볼 수 있습니다.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