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Travel]거대한 산수화에 넋을 잃고… 삼국지 유적보며 세상사 잊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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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기자의 힐링투어]4일간의 중국 양자강크루즈

창장싼샤의 세 협곡 가운데 가장 상류에 자리잡은 취탕샤의 들머리. 이어지는 8km의 협곡 구간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곳이 바로 여기 쿠이먼인데 뒤로 보이는 쿠이산의 관문이란 뜻이다. 빙하침식지형인 피요르드를 방불케 한다. 펑제 현(중국 충칭직할시)=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창장싼샤의 세 협곡 가운데 가장 상류에 자리잡은 취탕샤의 들머리. 이어지는 8km의 협곡 구간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곳이 바로 여기 쿠이먼인데 뒤로 보이는 쿠이산의 관문이란 뜻이다. 빙하침식지형인 피요르드를 방불케 한다. 펑제 현(중국 충칭직할시)=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 흐르는 강을 보며 역사를 되짚음이라. 이거야말로 인간만이 누리는 최고 호사다. 역사란 기억의 총합이다. 그런데 기억은 선별적이다. 버릴 것을 기억하는 이는 바보다. 기억의 창고에 든 것, 그건 예외 없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걸 모은 게 역사다.

지금 나는 창장(長江) 강을 따라 흐른다. 그 흐름, 어찌나 유려한 지 느낄 수가 없다. 그렇다. 큰 강은 그 흐름을 볼 수 없다. 큰 산이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듯. 그럼에도 강은 흐른다. 세상이 생긴 이래 단 한순간도 쉼 없이. 이 강이 말랐다면 그건 세상도 끝났음일 터. 하지만 세상은 아직 끝난 적 없었으니 이 강도 흐름을 멈춘 적 없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창장강이 실어 나른 그 유구한 역사. 그중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극히 일부다. 그런 창장강이 1973년 인류문명사를 바꿔 쓰게 했다. ‘창장강 문명’이라 불리는 하모도 유적(저장 성) 발굴이다. 기원전 6000년 인류의 이 흔적. 캐보니 황허문명과 전혀 달랐다. 이 강이 황허문명의 영향권일 거란 기존학설을 뒤집었다. 그게 인류문화사에서 ‘4대 문명(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허)’이란 용어도 바꿔 놨다. 창장강은 이렇듯 크고 유려하다. 흐름조차 보이지 않으며 세상을 바꾼다. 그러니 이 창장강을 따라 유람한다함은 곧 세상과 역사에 대한 탐구와도 통한다.

그런데 오늘의 창장강은 12년 전과 다르다. 싼샤댐 축조로 상류수위가 오른 탓이다. 변하지 않으면 세상이 아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면 인공(人工)도 자연의 소치. 봉우리는 섬이 되고 산중은 협곡으로 바뀌었어도 창장강의 흐름은 여전하고 사람 역시 거길 뜨지 않는다. 여행 ‘양자강크루즈’는 그런 창장강과 더불어 하는 귀중한 시간이다. 세상을 읽고 자연을 사색하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옛것을 미루어 새것을 깨침)의 여행길이다. 그런데 그 물길에서 유비와 제갈공명이 기다리고 두보와 이백이 나를 맞는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

취탕샤 협곡을 지나는 크루즈선상.
취탕샤 협곡을 지나는 크루즈선상.
중국대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창장(長江) 강. 티베트고원에서 발원해 쓰촨 분지에서 비로소 큰물을 이뤄 동진하며 상하이 근해로 흘러나가는 중국에서, 그리고 아시아에서 가장 긴 강(6397km)이다. 지구상에서는 나일과 아마존 강 다음으로 길다. 그런데 우리에겐 양쯔(揚子) 강으로 더 잘 알려졌다. 이유는 굴곡진 현대사에서 확인된다. 19세기 후반 서구열강이 중국대륙을 침탈할 당시 양쯔는 이 강의 하류인 양저우(장쑤 성)의 물길만 지칭했다. 그런데 당시 이곳을 지나던 유럽인이 양쯔라는 지류 이름을 본류 이름인 창장강에 기입한 게 발단이다. 이름만 놓고 보면 꼬리가 몸통을 흔든 격이다. 역사에서 한 번 오류는 되잡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중국도 두 이름을 병기한다. 한자로는 창장강, 영어로는 양쯔 강(Yangtze river)이라고.

창장강은 7000만 년 전 지각활동으로 형성된 습곡(褶曲·지층이 수평으로 퇴적한 후 횡압력으로 휜 상태)지형이 다시 융기해 형성된 거대한 산줄기를 관통한다. 그중 석회암 산지는 물에 쉽게 침식돼 협곡이 됐는데 충칭(직할시)과 이창(후베이 성) 사이 197km구간이 대표적. 거기서도 취탕샤(瞿塘峽) 우샤(巫峽) 시링샤(西陵峽)는 경치가 특히 아름다워 명승으로 소문났다. 그게 3개의 협곡을 뜻하는 ‘창장싼샤(長江三峽)’다. 그런데 이 이름이 어째 낯설지가 않다. 싼샤댐 덕분이다. 세계최대 수력발전용 싼샤댐은 바로 이 싼샤의 창장강을 가로막은 인공구조물. 우샤와 시링샤 사이에 건설(1994∼2009년)됐는데 싼샤 크루즈여행길에 명물(중국 최초 AAAAA급 관광지)로 등극했다.

싼샤의 풍광은 지난 2000년간 중국 시인묵객의 찬탄이 끊이지 않았을 만큼 대단하다. 그런데 거기에 엄청난 변화가 왔다. 싼샤댐으로 수위가 175m나 상승한 것이다. 수많은 마을이 수몰돼 130만 명이 이주했다. 더불어 허다한 비경과 유물 유적도 수장됐다. 잃는 게 있다면 얻는 것도 있게 마련. 400km의 새 물길이 골짜기로 난 것이다. 덕분에 그간 발길이 닿지 못했던 심산고봉의 오지와 비경이 마을과 관광지로 변했다. 깊어진 물로는 수백 명이 타는 대형 크루즈선박(최대 1만7000t급)이 오가고…. 그러자 찾는 이도 늘었는데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물론 선상유람은 댐 건설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구식이었다. 이젠 3박 4일간 배에서 지내며 강안의 유적과 비경을 편안히 감상하는 고급 크루즈여행으로 진화했다. 2주전 직접 타보니 오션크루즈에 못지않았고 승객 중엔 구미 서양인도 많았다. 크루즈의 항행구간은 충칭과 이창 사이 660km. 도중 수위 차(100m)가 큰 싼샤댐은 4개의 갑문을 이용해 승객이 잠든 사이에 4시간 만에 통과한다. 풍도귀성과 삼국지유적 등 지상투어도 선착장 근처여서 고령의 여행자에게 무리가 없어 보였다.

:양자강크루즈: 4일간의 크루즈 여행의 백미라면 역시 중국식 비경의 대표 격인 싼샤다.

양자강크루즈 선박 중 가장 규모가 큰 양쯔골드7호(1만7000t).
양자강크루즈 선박 중 가장 규모가 큰 양쯔골드7호(1만7000t).
중국지폐에도 등장한 취탕샤

그 세 개의 협곡 중 크루즈선이 가장 먼저 지나는 곳은 취탕샤. 촉한의 왕 유비가 죽음을 맞으며 아들 유선을 제갈공명에게 부탁했던 백제성(白帝城)이 있는 산을 끼고 있다. 이 곳 풍광은 중국의 10위안 지폐에 등재될 만큼 중국이 자랑하는 대표 비경. 700∼1200m 이상의 수직절벽 바위가 강 양안에 도열해 산수화 풍경을 빚어내는 진정한 협곡이다. 협곡은 이렇게 8km나 이어지는데 거기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적갑과 백염 두 산 사이를 뚫듯 흘러드는 초입의 기암 쿠이먼(夔門). 산성의 성벽처럼 보이는 곳을 현지에선 ‘천하제일문’이라고 부른다.

운우지정(雲雨之情) 전설의 산실 우샤

그 다음은 두 시간 반쯤 하류의 우샤. 협곡은 고층아파트로 이뤄진 강안의 이주민 타운 우산(巫山)부두를 들머리로 약 45km가량 이어진다. 그런데 우샤의 협곡지형은 취탕샤와 다르다. 물길이 석회암 바위산 사이로 흐르기는 해도 직벽이 아니어서다. 수락산을 닮은 거대한 바위산이 겹겹이 협곡을 병풍처럼 둘러싼 형국이다. 거기서도 백미는 선뉘(神女)봉. 남녀간 육체적 사랑을 비와 구름에 빗댄 고사 ‘운우지정(雲雨之情)’의 전설이 태어난 곳이다. 그 전설은 초나라의 한 왕이 사모하던 신녀를 찾아 여기 왔건만 구름과 안개에 가려 볼 수 없어 그냥 돌아가던 중에 꿈속에서 만나 정을 나눴다는 이야기다. 크루즈선은 선뉘봉을 해질 녘 지나는데 바위산 전체가 붉게 물든 석양으로 더더욱 멋지게 부각된다.

싼샤에 숨겨진 또 다른 두 개의 작은 싼샤

우샤에선 특별한 것을 기대해도 좋다. 샤오싼샤(小三峽)와 샤오샤오싼샤(小小三峽) 뱃길여행이다. 이곳은 창장강에 흘러드는 지류 다닝(大寧)하의 협곡인데 말과 사람이 쉽게 건너던 계곡이 수십 m나 상승한 수위로 수장되면서 형성된 지형이다. 그 물길이 어찌나 좁은 지 크루즈선은 통항이 어려워 120명 정원의 중형유람선으로 오간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던 이 오지협곡. 선상유람 내내 나를 반긴 건 몇몇 고산족 주민과 원숭이뿐이었다. 물에 차기 전만 해도 산중턱이었을 양안의 석회암 절벽은 침식과 용식으로 기기묘묘한 모습을 띠고 까마득한 절벽 한중간엔 2000년 역사의 이곳 부장풍습인 ‘현관(懸棺)’도 보였다. 현관이란 절벽의 한 중간에 안치한 나무관이다.

이렇게 한 시간쯤 들어간 협곡에선 다시 20명쯤 타는 작은 보트로 갈아탔다. 더 좁은 협곡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다. 거기가 샤오샤오싼샤다. 물이 차기 전엔 아예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없었던 심산유곡의 산등성이였을 이곳. 그런 만큼 그 풍광은 선경, 그 이상이었다.

양자강크루즈의 객실. 발코니가 딸려 있다.
양자강크루즈의 객실. 발코니가 딸려 있다.
양자강크루즈 선상 쇼
양자강크루즈 선상 쇼
오션크루즈와 다름없는 편안한 선상생활

취재 중 탑승한 양쯔골드6호는 2012년 건조한 새 배로 창장강 운항선박으로는 가장 크다(6층 규모). 모든 객실에 발코니를 두어 쾌적한 선상생활을 보장한 게 특징. 저녁마다 승무원이 멋진 쇼를 펼치고 타이치(태극권) 강습과 패션쇼도 열린다. 6층 갑판은 그늘이 드리워진 휴식공간으로 협곡양안을 감상하며 쉬기에 그만이다. 2층 로비엔 상점가도 있다. 식사는 중국식과 서양식을 두루 제공하는 뷔페식. 선장 주최 만찬에선 다양한 코스로 중국요리를 낸다. 배는 어찌나 그 움직임이 정숙한지 운항하는지조차 모를 정도. 배 멀미는 잊어도 좋다. 객실은 샤워룸을 겸한 화장실을 포함해 24m²로 넉넉하다. 선상 안전교육과 훈련도 한 차례씩 실시했다.

▼ Travel Info ▼

▲여행상품: 6월14일까지는 화·토(주 2회), 이후는 월·화·토요일(주 3회) 인천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기로 떠나는 패키지(4박5일)가 있다. 화·토요일 출발은 하행(충칭→이창), 월요일 출발은 상행(이창→충칭). 양쯔골드크루즈에 승선하며 충칭투어(임시정부청사 등지) 선상옵션투어(백제성 석보채 등)를 포함, 149만 원(5·9·10월 성수기와 7월15일부터 한 달간 극성수기엔 가격상승). 전 일정 전문 인솔자와 통역이 동행·안내하며 일절 추가비용이 없다(노팁 노옵션). 충칭시내 숙박(1박)은 특급호텔(1박). 5월 9일 출발하면 선상에서 전근용 교수(서울디지털대학)의 삼국지강의도 듣는다. http://양자강크루즈.com, 페이스북 ‘양자강크루즈여행’ 참조. 문의는 베스트래블(www.bestravel.co.kr) 02-397-6100, 6107

충칭(중국)=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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