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4월 8일

‘문화정치 한다며 경찰예산 왜 늘리나’ 총독부 허구 통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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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1920년 4월 8일부터 ‘창간호’ 문패를 떼고 일상적인 발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면 머리기사인 사설이 ‘조선총독부 예산을 논함’이었습니다. 문화정치를 표방해 헌병경찰제도를 보통경찰제도로 대체한다던 조선총독부의 큰소리가 허언이었음을 숫자로 증명해 총독의 시정을 비판하는 것으로 포문을 연 것입니다.

경성지방법원 앞을 지키는 제복 입은 순사. 법원 외벽에는 ‘치안유지사건 공판 방청 금지’라는 현수막이 커다랗게 걸려 있다.
4월 10일까지 사흘 연속 이어진 이 사설을 들여다보면 과연 1920년 신문인가 싶게 숫자가 많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항목과 숫자만 바꿔 요즘 상황에 대입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짜여진 경제사설의 원형이라 할 만합니다. △세금과 예산이란 무엇인지 △예산의 심사와 집행, 결산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연도별로 각 항목이 총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떻게 변했는지 △이런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절로 빠져들게 됩니다.

사설의 앞부분은 조선총독부가 예산을 자의적으로 편성해 집행하고, 감독도 받지 않는 실태를 고발했습니다. 납세자인 우리 민중의 의사를 반영할 통로는 전혀 없이 총독부가 예산을 임의로 편성해 임의로 집행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정치라고 통박했습니다. 물론 일본제국의회가 조선총독부의 예산을 협찬(동의)하고 결산보고도 받지만 의회는 조선인의 기관이 아니고, 의원 또한 조선인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수정이나 논의도 없이 원안대로 통과할 뿐이라고 적었습니다.

그 다음엔 본격적으로 숫자가 나옵니다. 1918년과 1919년 조선총독부의 총예산과 경찰비(헌병비, 경무비, 감옥재판소비), 교육산업비(제 학교비, 권업모범장비, 수역혈청비) 실태를 취재한 것이지요. 경찰비는 780만5186원에서 873만79원으로 11.9% 늘어난 반면 교육산업비는 91만1410원에서 120만7962원으로 32.5% 증가했습니다. 이것만 보면 3·1운동 이후 헌병과 경찰을 유지하고 우리 민중을 잡아다 재판하는 곳에 쓴 돈보다 교육과 산업장려에 쓴 돈이 훨씬 큰 폭으로 늘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증가율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각 항목의 ‘비중’에 주목합니다. 교육비와 산업비를 합친 금액이 1918년에는 총예산의 71분의 1 미만이고, 경찰비의 8분의 1 미만인데 이것이 1919년에는 각각 64분의 1 미만, 7분의 1 미만이 됐다는 겁니다. 단순히 증가율만 보면 왜곡이 생깁니다. 예컨대 사장의 연봉이 5억 원에서 6억 원으로(20% 상승), 비정규직 노동자의 연봉이 2000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올랐다고 할 때(50% 상승) 이를 소득의 평준화에 한발 다가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1920년 예산을 보면 더욱 가관입니다. 경찰비가 1378만6000원으로 1년 새 57.9% 늘어난 데다, 일본국회의 해산으로 예산이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조선총독부가 임시 경찰비 235만여 원을 ‘책임지출’한 반면 교육산업비는 집행을 한없이 연기했지요. 사설은 이를 놓치지 않고 ‘데라우치(寺內政毅), 하세가와(長谷川好道) 총독 시절에도 보지 못한 일’이라고 비난하고, ‘현대 정치는 예산정치이니 예산의 전횡은 곧 정치의 전횡’이라며 총독부에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동아일보는 조선총독부의 예산 전횡과 팽창하기만 하는 경찰비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1930년 11월 13일자 1면 사설 ‘경찰비는 왜 삭감할 수 없나’에서는 조선총독부가 다음해 예산에서 행정비를 삭감하기로 하면서도 유독 경찰비만은 확장하기로 한 것에 주목해 ‘이 방대한 경찰비를 삭감해 아동교육비에 충당하면 문맹률이 8할이 넘는 비참한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기사입력일 : 2021년 01월 22일
朝鮮總督府(조선총독부) 豫算(예산)을 論(논)함 (一·일)···1920년4월8일1면


現代(현대)의 政治(정치)는 豫算政治(예산정치)오 豫算政治(예산정치)는 民衆政治(민중정치)라. 民衆(민중)이 稅金(세금)을 出(출)함도 自體(자체)를 爲(위)함이오, 義務(의무)를 負(부)함도 또한 自體(자체)를 爲(위)함이라. 그럼으로 民衆(민중)이 稅金(세금)을 出(출)하야 政務(정무)를 行(행)케 하는 것이 政務(정무)를 爲(위)함이 아니오, 民衆(민중) 自體(자체)를 爲(위)함이니라. 이 形式(형식)을 잠간 말하면 民衆(민중)이 稅金(세금)을 出(출)하야 自己(자기)의 代表(대표)로 하야금 自己(자기)의 權利(권리)와 幸福(행복)을 爲(위)하야 施設(시설)과 用途(용도)를 定(정)하게 하고 此(차)를 政府(정부)의게 委任(위임)하야 實行(실행)케 한 後(후)에 다시 그 實行(실행)한 事項(사항)의 適否(적부)를 審査(심사)하야 政府(정부)된 者(자)의 專橫(전횡)과 流用(유용)을 嚴正(엄정)히 監視(감시)하나니, 故(고)로 政府(정부)에서는 民衆(민중)의게 順從(순종)하야 다만 委任(위임)한 바 豫算案(예산안)을 實行(실행)함에 盡力(진력)할 뿐이니라.

그런대 朝鮮總督府(조선총독부)에서는 豫算(예산)의 財源(재원)으로 朝鮮(조선)民衆(민중)의게 稅金(세금)만 徵收(징수)할 뿐이오 稅金(세금)을 負擔(부담)하는 民衆(민중)의 容喙(용훼)는 조금도 許(허)치 아니하야 同(동)府(부)의 萬能的(만능적) 絶對權(절대권)으로 任意的(임의적) 豫算(예산)을 編成(편성)하야 또 任意(임의)로 實行(실행)할 뿐이라. 비록 그 豫算(예산)에 對(대)하야 日本帝國議會(일본제국의회)에서 協贊(협찬)도 하고 決算報告(결산보고)도 한다고 云(운)할지나 그러나 그 議會(의회)는 元來(원래) 朝鮮人(조선인)의 機關(기관)이 아니오, 그 議員(의원)도 또한 朝鮮人(조선인)이 아니니 自己(자기)의게 直接(직접) 아무 利害關係(이해관계)가 업는 朝鮮豫算(조선예산) 問題(문제)에 對(대)하야 그 職員(직원)들이 무삼 趣味(취미)와 무삼 誠心(성심)으로 白熱的(백열적) 論爭(논쟁)을 演(연)하야 正當(정당)한 可否(가부)를 論(논)할 것이며 설영 政略上(정략상) 如干(여간) 議論(의론)이 잇슬지라도 그 議論(의론)은 單純(단순)한 政略(정략) 問題(문제)에 不過(불과)할 것이니 朝鮮人(조선인)을 本位(본위)하는 朝鮮人(조선인)의 權利(권리)와 幸福(행복)에 아무 소양의 感(감)이 잇지 못할 것이오. 間或(간혹) 朝鮮人(조선인)을 本位(본위)하는 正當(정당)한 言論(언론)을 唱(창)하고자 하는 人道的(인도적) 議員(의원)이 잇다 할지라도 그 議員(의원)이 元來(원래) 朝鮮人(조선인)이 되지 못하얏슴으로 朝鮮(조선)問題(문제)의 實際上(실제상) 細微(세미)한 事情(사정)을 精察(정찰)치 못하는지라. 그럼으로 政府委員(정부위원)의 說明(설명)이 一時塗糊(일시도호)인 줄은 알지라도 不得已(부득이) 默過(묵과)만 할 뿐이라.

이 事實(사실)은 日本帝國議會(일본제국의회)에서 朝鮮(조선)豫算(예산)에 對(대)하야 此(차)를 本會議(본회의)에서 爭論討議(쟁론토의)하는 事(사)는 甚(심)히 稀少(희소)하고 大槪(대개) 委員會(위원회)에 付託(부탁)하얏다가 委員(위원)의 報告(보고)만 듯고 本會議(본회의)에서는 아무 修正(수정)과 議論(의론)이 업시 恒常(항상) 原案(원안)대로 協贊(협찬)만 與(여)하는 것을 볼지라도 可(가)히 알지니라.

그럼으로 日本帝國議會(일본제국의회)에서 行(행)하는 朝鮮豫算(조선예산)의 協贊(협찬)과 決算報告(결산보고)는 아무 意味(의미)도 업는 形式(형식) 뿐이라. 그 豫算(예산)을 審査(심사)하고 또 實行(실행)을 監視(감시)하는대 아무 實效(실효)가 잇지 못하는 것은 勿論(물론)이오, 도리혀 이와 갓흔 形式(형식)이 잇는 것을 조흔 口實(구실)로 삼아 박그로는 世人(세인)의 批評(비평)함을 回避(회피)하고 안으로는 暗黑(암흑)의 獨制(독제)를 더욱 亶行(단행)하나니 그 政策(정책)이 二十世紀(이십세기)에는 到底(도저)히 容納(용납)치 못할 逆行的(역행적) 政策(정책)인 것은 贅說(췌설)을 加(가)할 餘地(여지)가 업건이와 이러한 豫算方法(예산방법) 下(하)에 生活(생활)하는 民衆(민중)이 그 權利(권리)는 무참한 蹂躪(유린)을 免(면)치 못할 것이오, 福祉(복지)는 一村(일촌)의 進步(진보)가 잇지 못할 것은 明瞭(명료)한 事實(사실)이라.

大抵(대저) 民衆(민중)이 窮乏(궁핍)한 生活(생활)을 堪耐(감내)하며 過重(과중)한 義務(의무)를 負擔(부담)하야 艱難(간난)한 生活費(생활비) 가온대에서 幾(기)部分(부분)을 分(분)하야 誠實(성실)히 稅金(세금)을 納付(납부)하는 것은 民衆(민중)된 者(자)가 一般(일반) 自體(자체)의 利益(이익)을 自體(자체)가 直接(직접)으로 施設(시설)하고 實行(실행)하지 못할 形便(형편)임으로 民衆(민중) 自體(자체)는 費用(비용)만 負擔(부담)하고 그 實行事務(실행사무)를 政府(정부)에 委任(위임)하야써 權利(권리)와 幸福(행복)을 企圖(기도)하는 것이니 그럼으로 民衆(민중)된 者(자)가 稅金(세금)을 負擔(부담)하는 것을 조곰도 苦痛(고통)으로 생각치 아니할 뿐 아니라 오히려 多大(다대)한 義務(의무)를 負擔(부담)할지라도 結局(결국) 自體(자체)의게 幸福(행복)이 만히 도라올 것을 預想(예상)하야 樂從(낙종)하는 事實(사실)도 업지 아니하나니 이것은 日本國民(일본국민)이 過重(과중)한 敎育費(교육비)를 負擔(부담)할지라도 조곰도 苦痛(고통)으로 생각치 아니하는 것을 보면 可(가)히 알지니라.

그런대 朝鮮總督府(조선총독부)는 萬能的(만능적) 絶對權(절대권)으로 民間事業(민간사업)은 도모지 信用(신용)치 아니할 뿐만 아니라 民間(민간)에서 發生(발생)하는 事業(사업)을 甚(심)히 嫉妬(질투)하야 此(차)를 根本的(근본적)으로 發生(발생)치 못하게 하는 方策(방책) 下(하)에서 私立學校(사립학교)는 容易(용이)히 認可(인가)치 아니하고 會社(회사)는 世界(세계)에 업는 許可主義(허가주의)를 採用(채용)하얏스며 其他(기타) 公益事業(공익사업)에 對(대)하야는 經營者(경영자)를 各般(각반)으로 拘束(구속)하는 同時(동시)에 寄附募集(기부모집)을 事實上(사실상) 許(허)하얏던 事(사)가 잇지 못하얏고 其他(기타) 集會(집회), 結社(결사), 言論(언론) 또 新聞(신문), 雜誌(잡지)에 對(대)하야 峻嚴(준엄)한 取締(취체)를 無制限(무제한)의 職權(직권)으로 行(행)함은 勿論(물론)이오 此等(차등)에 類似(유사)한 事業(사업)은 絶對(절대)로 許可(허가)치 아니하얏스며 稅金(세금)을 加減(가감)하고 稅目(세목)을 增削(증삭)함도 任意(임의)로 하고 此(차)를 徵收(징수)하며 消費(소비)함도 任意(임의)로 하야 朝鮮(조선)民衆(민중)의 所望(소망)과 意思(의사)를 조금도 도라보지 아니하얏나니 비록 朝鮮(조선)民衆(민중)이 委任(위임)한 것이 아니오 朝鮮總督府(조선총독부)가 모다 任意(임의)로 行(행)하는 事(사)일지라도 엇지 朝鮮(조선)民衆(민중)의 利害休戚(이해휴척)을 顧(고)치 아니하고 權利幸福(권리행복)을 念(염)치 아니하는 바 豫算(예산)의 編成(편성)과 審査(심사)며 項目(항목)과 實行(실행)이 可(가)하다 云(운)하리오.

最近(최근) 數年(수년)의 豫算案(예산안) 中(중) 警務費(경무비)와 敎育産業費(교육산업비)를 左(좌)에 記(기)하건대

再昨年度(재작년도) 總豫算(총예산) 六千四百五十萬三千五百○三圓也(육천사백오십만삼천오백○삼원야).

警察監獄 及 裁判所費(경찰감옥 급 재판소비)

憲兵費 一,一七七,一○四圓(헌병비 일,일칠칠,일○사원)

警務費 三,四八五,九五四(경무비 삼,사팔오,구오사)

監獄裁判所費 三,一四二,一二八(감옥재판소비 삼,일사이,일이팔)

計 七百八十萬○五千一百八十六圓也(계 칠백팔십만○오천일백팔십육원야).

敎育 及 産業費(교육 급 산업비)

諸學校費 六二○,三九一(제 학교비 육이○,삼구일)

勸業模範場費 二○四,七二七(권업모범장비 이○사,칠이칠)

獸疫血淸費 八六,二九二(수역혈청비 팔육,이구이)

計 九十一萬一千四百十圓也(계 구십일만일천사백십원야).

昨年度 總豫算 七千七百五十六萬○六百九十圓也(작년도 총예산 칠천칠백오십육만○육백구십원야).

警察監獄 及 裁判所費(경찰감옥 급 재판소비)

憲兵費 一,二八九,五六七圓(헌병비 일,이팔구,오육칠원)

警務費 三,八二五,五九七(경무비 삼,팔이오,오구칠)

監獄裁判所費 三六一四,九一五(감옥재판소비 삼육일사,구일오)

計 八百七十三萬○○七十九圓也(계 팔백칠십삼만○○칠십구원야).

敎育 及 産業費(교육 급 산업비)

諸學校費 七七三,四六一(제학교비 칠칠삼,사육일)

勸業模範場費 三一六,二四七(권업모범장비 삼일육,이사칠)

獸疫血淸費 一一八,二五四(수역혈청비 일일팔,이오사)

計 一百二十萬○七千九百六十圓也(계 일백이십만○칠천구백육십원야). (以上 朝鮮事情要覽 參考·이상 조선사정요람 참고)
조선총독부 예산을 논함 (1)


현대 정치는 예산정치요, 예산정치는 민중정치다. 민중이 세금을 내는 것도, 의무를 부담하는 것도 모두 자기를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민중이 세금을 내 정무를 행하게 하는 것은 정무가 아니라 민중 자기를 위한 것이다. 이 형식을 잠깐 말하자면 민중이 세금을 내 자기의 대표로 하여금 자기의 권리와 행복을 위해 시설과 용도를 정하게 하고, 이를 정부에 위임해 실행하도록 한 뒤 다시 그 실행한 사항이 적절했는지를 심사해 정부의 전횡과 예산 유용을 엄정히 감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민중에 순종해서 그가 위임한 예산안을 실행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할 뿐이다.

그런데 조선총독부는 예산의 재원으로 조선 민중에게 세금만 징수할 뿐, 세금을 부담하는 민중의 참견은 조금도 허용치 않고 총독부의 절대, 만능의 권리로 예산을 임의로 편성하고 임의로 집행할 뿐이다. 비록 그 예산에 대해 일본제국의회가 동의하기도 하고, 결산보고도 받는다고 말하겠지만 그 의회는 원래 조선인의 기관이 아니고, 의원 또한 조선인이 아니니 자기에게 직접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조선의 예산에 대해 무슨 관심을 갖고, 성심을 다해 열정적인 논쟁을 벌여 정당한 가부를 논할 것인가. 설령 정략적으로 어지간한 의견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단순한 정략 문제에 그칠 것이니 조선 사람의 근본적 권리와 행복에는 신발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 것처럼 아무런 느낌이 없을 것이다.

간혹 조선인을 위하는 정당한 주장을 하고자 하는 인도적 의원이 있다 할지라도 그 의원은 원래 조선인이 아니므로 실제 조선 문제의 세세한 사정까지 면밀히 관찰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위원의 설명이 일시적으로 흐지부지 덮어버리려는 것임을 알더라도 묵과할 뿐이다. 이런 사실은 일본제국의회가 본회의에서 조선 예산을 논쟁을 벌이며 토의하는 일은 극히 드물고 대개 위원회에 넘겨 위원의 보고만 듣고 본회의에서는 아무런 수정이나 논의도 없이 항상 원안대로 동의만 하는 것을 보더라도 가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일본제국의회에서 조선 예산에 대해 동의하고 결산보고를 받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형식에 불과하다. 그 예산을 심사하고 실행을 감시하는 데 실효가 없는 것은 물론, 도리어 이 같은 형식을 좋은 구실로 삼아 밖으로는 세인의 비평을 피하고, 안으로는 암흑의 독재체제를 더욱 강화하니 그 정책이 20세기에는 도저히 용납하지 못할 역행적인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예산 체제 아래에서는 민중의 권리는 무참하게 유린될 수밖에 없고, 복지는 한 치의 진보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명료한 사실이다.

무릇 민중이 궁핍한 생활을 감내하고 과중한 의무를 지면서도 빠듯한 생활비를 쪼개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것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자기가 스스로 시설하고 실행하지 못할 형편이므로 민중은 비용만 부담하고 그 실행사무를 정부에 위임해 자기의 권리와 행복을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중이 세금을 부담하는 것을 조금도 고통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많은 의무를 부담하더라도 결국 자기에게 행복이 많이 돌아올 것을 예상해 즐겁게 따르는 사실도 없지 않으니, 이는 일본 국민이 무거운 교육비를 부담해도 조금도 고통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을 보면 능히 알 수 있겠다.

그런데 조선총독부는 만능, 절대권을 휘둘러 민간사업을 도무지 믿지 않고 시기해 근본적으로 할 수 없게 한다는 방책 아래 사립학교는 쉽게 인가해주지 않고, 회사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허가주의를 채용했으며, 기타 공익사업도 경영자를 여러 가지로 구속하고 있다. 동시에 기부모집을 사실상 허용하는 일이 없고 기타 집회, 결사, 언론, 또 신문과 잡지에 대해 무제한의 직권으로 준엄한 단속을 함은 물론, 이와 유사한 사업은 절대로 허가하지 않았다. 또 세금을 줄이거나 늘리고, 세목을 신설·삭제하는 일도 임의로 하고 세금을 징수, 소비하는 것도 임의로 해 조선 민중의 소망과 의사를 조금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니 비록 조선 민중이 위임한 것이 아니고 모두 임의로 행하는 일일지라도 어찌 조선 민중에게 이로울지 해로울지, 안락할지 걱정거리가 될지 돌아보지 않고 권리와 행복을 생각지 않으니 조선총독부의 예산의 편성과 심사, 항목 실행이 옳다 할 것인가.


최근 수년의 예산안 가운데 경무비와 교육산업비를 보면···.


(이상 ‘조선사정요람’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