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4월 2일

태극기 보고 놀란 일제, 떡 보고도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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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이 일어나던 때 훗날 ‘딸깍발이’로 불린 국어학자 이희승은 경성직뉴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파고다공원에서 독립만세의 함성이 터졌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은 23세 청년 이희승은 만사를 제쳐놓고 파고다공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열광적으로 독립만세를 연창하는 군중들, 또는 어느 틈에 만들었는지, 종이로 만든 태극기의 물결.’ 그러나 이희승이 50년 뒤인 1969년에 떠올린 그날의 모습은 상상이 빚어낸 기억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날 서울에서 태극기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죠. 고려대 권보드래 교수는 “당대의 문자나 시각자료에서, 즉 신문조서나 사진 등에서 이 날짜에는 태극기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희승은 나흘 뒤인 3월 5일 남대문 앞 만세시위를 위해 전날 밤을 새우며 종이 태극기를 만들었습니다. 이희승의 3월 1일 기억은 4일 뒤의 사건과 합쳐져 만들어졌을 개연성이 아주 많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태극기는 만세시위의 필수 품목이 됐습니다. 태극기는 1882년 일본으로 가던 특명전권대사 겸 수신사 박영효가 만든 도안을 토대로 만들었고 1883년부터 조선의 국기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10년 간 공공연히 꺼내들 수 없었던 ‘금기 품목’이 됐죠. 3·1운동을 계기로 이 태극기가 당당하게 다시 등장해 전국 방방곡곡을 수놓았습니다.

일제는 3·1운동에 혼이 나갈 정도로 놀랐습니다. 이제 태극기와 독립만세라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소댕(솥뚜껑) 보고 놀라는’ 심정이 됐죠. 1920년 3월 말 서울에서 태극무늬가 그려진 전차를 헐레벌떡 쫓아가는 일제 경찰이 그 심정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색깔떡 위에 그려넣은 태극무늬까지 칼로 찍어내 버릴 정도였으니 이만저만 예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1928년 5월 11일자 2면에 실린 휴지통에도 ‘태극기 떡’ 얘기가 나옵니다. 첫 줄이 ‘경성 서대문경찰서 고등계 형사실에 태극기 한 개가 압수됐다’였습니다. 새삼스럽게 태극기가 웬일인가 하겠지만 알고보면 우스운 얘기라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색떡장수가 흰떡 바탕에 색떡을 새겨넣고 깃대와 기봉우리까지 만든 ‘먹는 태극기’였던 것입니다. 고등계 형사가 이런 태극기까지 압수해 간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습니다.

1970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 50주년을 맞아 71~76세의 창간 기자와 사원 5명이 ‘창간 전후를 말한다’를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습니다. 창간 직후 안국동에서 순사가 한 부인의 떡함지에서 태극모양 떡을 발견해 검문하는 장면을 목격한 일이 좌담회의 화제에 올랐죠. 무려 50년 가까이 지난 옛 일을 회고했을 때도 태극떡 검문이 거론됐던 것입니다. 그만큼 일제의 지독한 단속은 원로들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이 분들의 눈에 일제의 ‘태극 단속’은 해도해도 너무하는 작태로 비쳤던 것입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기사입력일 : 2021년 01월 22일
太(태) 極(극)에 神經過敏(신경과민)···1920년4월2일7면


우숩기도 하고
모순되는 일


지나간 금음날 일어난 일이라 동대문에서 신용산으로 가는 삼십칠호 젼차 차창에 태극이 그려잇씀을 발견한 경관은 무슨 큰일이 난드시 빨니 쪼처가、자세히 조사한 결과 이 젼차는 합병하기 젼 도라가신 리태왕 젼하께압서 황뎌로 게압실 때에 능행 시에 타압시고자 맨드신 젼차로 오날까지 차고간 속에 느어두엇든 바 공교히 운젼수가 무심코 끌고 나온 닐이 판명되야 회사에서는 즉시 고간으로 다시 끄러듸려 가기로 하고 무사하엿다는대.

대쳬 태극에 대하야 경관의 취체는 참으로 신경예민이 되고 마을 것 갓트니 요 몃칠 젼 어느 길가에서 한 일순사가 엇던 집 하인이 색떡을 담은 밥소래를 이고 가는대 그 색떡 우에 태극을 색인 떡이 달닌 거슬 보고 칼집 끗 그 떡을 찍어 바리엿다 하니 한편으로 일본 상민들은 태극을 상표로 삼아 마음대로 쓰거늘 그것은 도모지 모른 체하고 유독 이러한 일에만 지내처 취체를 하는 거슨 도모지 요령을 모를 닐이로다.
태극무늬에 신경과민



우습기도 하고 모순되는 일


지난 그믐에 일어난 일이다. 동대문에서 신용산으로 가는 37호 전차 차창에 태극이 그려 있는 것을 발견한 경찰은 무슨 큰일이 난 듯이 빨리 좇아가, 자세하게 조사한 결과 이 전차는 일한합병하기 전 돌아가신 이 태왕 전하께옵서 황제로 계옵실 때에 능행 가시면서 타옵시고자 만든 전차로 오늘까지 차고 속에 넣어두었던 바 공교롭게 운전수가 무심코 끌고 나온 것으로 밝혀져 회사에서는 즉시 차고로 다시 끌고 가기로 하고 무사하였다는데.

대체 태극에 대한 경관의 단속은 정말로 신경과민이 되고 말 것 같으니 이 며칠 전 어느 길거리에서 한 일본 순사가 어떤 집 하인이 색떡을 담은 밥소래기를 이고 가는데 그 색떡 위에 태극을 새긴 떡이 달린 것을 보고 칼집 끝으로 그 떡을 찍어 버렸다 하니 한편으로 일본 상인들은 태극을 상표로 삼아 마음대로 쓰는데도 그것은 도무지 모른 체하고 유독 이런 일에만 지나치게 단속을 하는 것은 도무지 요령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