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4월 1일

“백두산 천지는 너의 뇌, 태평양은 너의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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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4월 1일 창간한 동아일보는 ‘청년 신문’이었습니다. 연부역강한 젊은 청년들이 똘똘 뭉쳐 엄혹한 시기 민족을 대변했습니다. 창간 당시 장덕수 주간이 26세, 이상협 편집국장이 27세,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 선생도 29세에 불과했으니 요즘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에 견줄 만합니다.

하지만 창간 멤버 중에는 당대 언론계의 거목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으로 유명한 황성신문을 창간한 석농 유근, 영국인 배설(Bethell)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만든 우강 양기탁 선생이 고문 격인 편집감독으로 활약했습니다. 당시 유근이 59세, 양기탁은 49세로, 까마득한 대선배였습니다. 물론 두 분 모두 실무자는 아니었고, 항일 언론정신을 잇겠다는 뜻으로 모신 것이죠. 독립운동에 열심이었던 양기탁은 강직한 외모에 수염까지 길러 감히 범접하기 힘들었지만, 유근은 수시로 후배 기자들과 어울려 내기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등 격의 없이 지냈습니다. 두 편집감독은 나란히 창간호에 동아일보와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을 유장한 문체로 밝혔습니다.

유근 선생

유근 선생이 집필한 ‘아보의 본분과 책임’은 ‘창천에 태양이 빛나고 대지에 청풍이 불도다···’로 시작하는 창간사 못지않은 명문으로 꼽힙니다. 원문을 여러 번 소리 내 읽다보면 마치 운문(韻文)을 대하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그는 우선 신이 내린 터, 백두산 천지, 3대 강(압록, 두만, 송화)이 합류해 들어가는 태평양, 독립문의 굳은 돌기둥을 각각 동아일보의 집, 뇌, 피, 그리고 다리에 비유하는 압도적인 스케일로 창간을 자축합니다. 그러나 곧 “동아일보야, 너의 짐이 무겁다”면서 민중의 표현기관, 권리 보호자, 문화 소개자라는 3대 사시(社是)를 다시 한번 일깨우며 무거운 책임을 기꺼이 지겠다는 의지를 다집니다.

양기탁 선생

양기탁 선생의 ‘지아, 부아?’는 1차 세계대전 후 지구촌 곳곳에서 무력을 앞세운 제국주의가 퇴조하고 자유와 문화의 훈풍이 불어 한반도에도 민족의 정치적 운동이 크게 일어났지만 마냥 기뻐할 것만은 아니라는 냉철한 분석을 담았습니다. 즉, 세계적 조류에 부화뇌동할 것이 아니라 △국민운동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가 △국민운동의 배경에 이상과 지식이 존재하는가 △단단하고 굳센 결심이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며 일제의 기만적인 문화주의 정책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어 사회를 떠나 정치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정치운동에서 새로운 면목을 이루고자 하면 먼저 사회개조를 기도해야 한다면서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압박을 받았지만 지방조합을 발달시켜 이를 생산과 소비, 금융, 교육에까지 응용해 서로 돕는 벨기에 국민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양기탁 선생은 이 글 외에는 언론인으로서 이렇다 할 활동을 보여주지 않고 독립운동에 전념했으며, 유근 선생 역시 창간 다음해인 1921년 5월 20일 자택에서 향년 61세로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동아일보는 21일자 신문에 ‘류근 씨 장서(長逝)’라는 부고를 낸 뒤 22일자에는 ‘조(吊) 석농 유근 선생’이라는 장문의 조사를 1면 머리기사로 올렸습니다. 이 글에서 동아일보는 유근 선생을 잃은 것을 공자가 수제자인 안회를, 전진(前秦)의 왕 부견이 명재상인 왕맹을 잃은 것에 비유하며 그의 서거를 애통해 했습니다. 동아일보는 다음날인 23일 1면에 ‘석농 유 선생의 유언’이라는 부제가 붙은 ‘지방열(地方熱)을 제거하라’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동서남북으로 갈려 서로 다투는 ‘지방열’을 던져버리고 서로 단결할 것을 호소한 글입니다. 오늘날에도 되새겨야할 유언입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기사입력일 : 2021년 01월 22일
我報(아보)의 本分(본분)과 責任(책임) - 柳瑾(유근)···1920년4월1일1면


歐洲(구주) 戰場(전장)에 風塵(풍진)이 一晴(일청)하고 聯盟會議(연맹회의)에 평화(平和)가 成立(성립)됨애 人道正義(인도정의)가 天理(천리)를 循從(순종)하야 武力主義(무력주의)가 文化主義(문화주의)로 變遷(변천)하며 帝國主義(제국주의)가 社會主義(사회주의)로 變遷(변천)하며 資本主義(자본주의)가 勞動主義(노동주의)로 變遷(변천)하야 民權(민권)의 自由(자유)가 單(단)히 個人的(개인적) 自由(자유)에 止(지)치 아니하고 世界的(세계적) 自由(자유)에 達(달)함으로 民論(민론)의 自由(자유)도 또한 個人的(개인적) 自由(자유)에 止(지)치 아니하고 世界的(세계적) 自由(자유)에 達(달)하는 도다. 於是乎(어시호) 半島朝鮮(반도조선)에 言論界(언론계) 覇王(패왕)으로 東亞日報(동아일보)가 出(출)하도다. 

東亞日報(동아일보)야 半萬年(반만년) 歷史(역사)를 등에 지고 二千萬(이천만) 民衆(민중)을 품에 안고 愁雲(수운)을 박챠고 苦海(고해)를 뛰여 건너 黑洞洞(흑동동) 天地(천지)에 燭(촉)을 붙잡고 木鐸(목탁)치며 二十世紀(이십세기) 新舞臺(신무대)에 웃둑 선 너 東亞日報(동아일보)야.

東亞日報(동아일보)야 너의 門戶(문호)를 네 아는야. 神人下降(신인하강) 舊基址(구기지)에 靑石(청석)으로 柱礎(주초)하고 博達樹(박달수)로 棟樑(동량)하고 無窮花(무궁화)로 藩籬(번리)하야 內政(내정)을 整理(정리)하고 外侮(외모)를 防禦(방어)함은 너의 집.

東亞日報(동아일보)야 너의 身分(신분)을 네 아는야. 東半球(동반구) 한가운대 놉피 솟은 白頭山(백두산) 그 꼭딱이 龍王潭(용왕담), 酷旱(혹한)에 졸지 안코 潦水(요수)에 붓지 안어 盈盈(영영)히 고인 물 너의 뢰(腦·뇌). 

龍王潭(용왕담) 큰샘 줄기 三大江(삼대강)(鴨綠·압록 豆滿·두만 松花·송화) 되여 나셔 千波萬脈(천파만맥) 合流(합류)하야 活潑(활발)히 波濤(파도)치며 太平洋(태평양) 한 바다로 晝夜(주야) 업시 도라들믄 너의 피. 閑山島(한산도) 밝은 달 古今(고금)이 달을손야. 다시금 둥글어서 光輝(광휘)를 날니우며 忠魂(충혼)이 뭇는 듯이 宛轉(완전)히 도다 남은 너의 넉.

薩水(살수) 上(상) 매운 바람 百萬(백만) 軍士(군사)는 形勢(형세) 怒濤(노도)가 洶湧(흉용)하고 霹靂(벽력)이 震動(진동)하야 强敵(강적)의 長弓利甲(장궁이갑), 落葉(낙엽)을 지어 날믄 너의 쇼리.

白馬山城(백마산성) 풀은 솔 赤甲(적갑)을 굿게 입고 蒼髥(창염)을 거사리여 霜雪(상설)을 무릅시고 丸丸(환환)히 聳天(용천)함은 너의 긔개. 

獨立門(독립문) 구든 石柱(석주), 兩脚(양각)을 놉히 들어 飛行機(비행기) 밀뜨리고 火輪車(화륜차) 차바리고 當前(당전)한 千里萬里(천리만리), 一瞬間(일순간)에 가랴함은 너의 거름.

東亞日報(동아일보)야 네 행혀나 神經衰弱(신경쇠약) 될나, 네 행혀나 液滯(액체) 될나, 네 행혀나 精神(정신) 놀나, 네 행혀나 목 쉴나, 네 행혀나 挫折(좌절)될나, 네 행혀나 발병날나.

東亞日報(동아일보)야 너의 負擔(부담) 무겁도다. 너는 朝鮮民衆(조선민중)의 表現機關(표현기관)이다. 그의 思想(사상), 그의 希望(희망), 그의 目標(목표), 그의 心理(심리) 一一(일일)히 報道(보도)하야 그로 하야곰 能(능)히 起立(기립)케 하며 그로 하야곰 能(능)히 發展(발전)케 하며 그로 하야곰 能(능)히 飛躍(비약)케 함은 밋노니 너를. 

너는 朝鮮民衆(조선민중)의 權利(권리) 保護者(보호자)이다. 그의 精神(정신), 그의 正義(정의), 그의 活動(활동) 一一(일일)히 支配(지배)하야 그로 하야곰 能(능)히 壓制(압제)를 脫免(탈면)케 하며 그로 하야곰 能(능)히 權能(권능)을 施使(시사)케 하며 그로 하야곰 能(능)히 言論(언론)을 表提(표제)케 하야 人(인)의 固有(고유)한 自由(자유)를 維持(유지)함은 밋노니 너를.

너는 朝鮮民衆(조선민중)의 文化(문화) 紹介者(소개자)이다. 그의 敎育(교육), 그의 經濟(경제), 그의 政治(정치) 一一(일일)히 指導(지도)하야 그로 하야곰 能(능)히 開明(개명)케 하며 그로 하야곰 能(능)히 富有(부유)케 하며 그로 하야곰 能(능)히 公平正直(공평정직)케 하야 世界文明(세계문명)에 幷駕驅馳(병가구치)함은 밋노니 너를. 

그러면 너는 朝鮮民衆(조선민중)의 機關手(기관수)며 郵便配達夫(우편배달부)며 電話交換所(전화교환소)며 代議士(대의사)며 政治家(정치가)며 法律家(법률가)며 經濟家(경제가)며 社會黨(사회당)이며 勞動主義者(노동주의자)이다. 무겁다 너의 責任(책임), 自由權(자유권) 일치 말고 萬難(만난)을 排却(배각)하고 勇往直前(용왕직전) 거침 업시 信地(신지)에 到達(도달)하여라. 아ㅣ 東亞日報(동아일보)야. 


지(知)아 否(부)아? - 梁起鐸(양기탁) 

全世界(전 세계)에 氾濫(범람)한 大潮流(대 조류)가 我(아) 朝鮮半島(조선반도)에 波及(파급)함애 我(아) 民族(민족)의 政治的(정치적) 運動(운동)이 大起(대기)하야 到(도)하는 處(처)에 政治革新(정치혁신), 生活改造(생활개조)를 絶叫(절규)하야 驚天動地(경천동지)의 響(향)이 一個年(일개년) 有(유) 餘(여)에 亘(긍)하야 今日(금일)에 至(지)하얏스니 此(차)가 곳 縮首噤口(축수금구)에 半死氣(반사기)를 向甦(향소)하고 明目張膽(명목장담)에 新活氣(신활기)를 伸展(신전)하는 바이라.

此(차)로 因(인)하야 諸般(제반) 集會(집회)와 結社(결사)와 言論(언론)과 出版(출판) 등 施設(시설)이 蔚然(울연) 勃興(발흥)하야 怡然(이연)히 涸陰冱寒(학음호한)을 經(경)한 草木(초목)이 春風(춘풍)이 一吹(일취)함애 萬綠(만록)이 齊茁(제줄)하는 觀(관)을 呈(정)하니 何人(하인)이던지 此(차)에 對(대)하야 欣快(흔쾌)의 感(감)을 有(유)치 아니한 者(자) 豈有(기유)하리오만은 余(여)는 獨(독)히 中夜彷徨(중야방황)에 數條(수조)의 疑問(의문)을 포(抱)한 바이 有(유)하노니

一(일), 國民運動(국민운동)의 目標(목표)가 何(하)에 在(재)한가.

二(이), 此(차) 運動(운동)의 背景(배경)에 相當(상당)한 理想(이상)과 智識(지식)이 其(기) 後援(후원)을 作(작)하는가. 

三(삼), 其(기) 目標(목표)를 到達(도달)함애 確乎不拔(확호불발)하는 決心(결심)이 有(유)한가 함이 是(시)라. 

大洋面(대양면)에 汎汎(범범)한 船舶(선박)이 一定(일정)한 方向(방향)을 指示(지시)하는 羅盤針(나반침)이 無(무)하면 完全(완전)히 目的地(목적지)를 到達(도달)키 不能(불능)함과 如(여)히 吾人(오인)도 今日(금일) 世界(세계)의 洪波巨浪(홍파거랑) 中(중)에 立(입)하야 一定(일정)한 目標(목표)가 無(무)하고야 엇지 遼遠(요원)한 徑路(경로)에 進行(진행)한다 하리오. 結局(결국)은 里霧(이무) 中(중)에 彷徨(방황)하는 弊害(폐해)가 生(생)할지니 吾人(오인)은 반다시 現代(현대)에 最善良(최 선량)하고 最適合(최 적합)한 者(자)를 擇(택)하야 一定(일정)한 標幟(표치)을 作(작)하야 文化進運(문화 진운)에 順應(순응)함이 可(가)할지오. 

戰爭(전쟁)의 終熄(종식)을 伴(반)하야 人類(인류) 思想界(사상계)에 新局面(신국면)을 展開(전개)하야 十九世紀(십구세기) 以前(이전)에 比(비)하면 儼然(엄연)히 隔世(격세)의 觀(관)이 有(유)하니 是故(시고)로 國際的(국제적) 民衆(민중)의 大運動(대운동)이 新起(신기)하야 社會主義(사회주의)이니 勞動主義(노동주의)이니 하는 言論(언론)이 東西(동서)에 彌滿(미만)하니 吾人(오인)은 다만 附和雷同(부화뇌동)함으로 能事(능사)를 作(작)치 말고 반다시 新理想(신 이상) 新智識(신지식)으로 人性(인성)의 善美(선미)한 方面(방면)을 發達(발달)하야 人類共存(인류공존)의 大義(대의)에 基(기)하야 人生(인생)의 改造(개조)를 成就(성취)할지니라.

무릇 事業(사업)을 營爲(영위)하는 者(자)는 반다시 確乎不拔(확호불발)하는 決心(결심)이 有(유)하야 비록 千百(천백)의 支障(지장)이 來(래)하드래도 能(능)히 萬難(만난)을 排除(배제)하고 前進(전진)하는 步調(보조)를 退縮(퇴축)치 아니하여야 能(능)히 其(기) 目的(목적)을 到達(도달)하나니 萬一(만일) 此(차) 決心(결심)이 無(무)하고 一時(일시) 感情(감정)에 爆發(폭발)하야 水火(수화)를 不避(불피)하다가 時異事往(시이사왕)함애 薾然(이연)히 倦疲(권피)하야 分毫(분호)의 氣力(기력)이 無(무)하면 徒然(도연)히 失敗者 地位(실패자 지위)에 立(입)하야 有始無終(유시무종)의 誚(초)를 免(면)치 못하리니 엇지 吾人(오인)의 猛然(맹연)히 反省(반성)할 바ㅣ 아니리오.

大抵(대저) 同胞(동포) 連帶結合(연대결합)의 感情(감정)은 人生之情(인생지정)의 産物(산물)로서 世間(세간) 何人(하인)이던지 此(차)에 對抗(대항)치 못하나니 그러한 故(고)로 弱者(약자)의 運命(운명)이 强者(강자)의 勢力圈(세력권) 中(중)에 吸入(흡입)이 되지 아니하고 依然(의연)히 存在(존재)할 뿐 아니라 文明(문명)의 轉機(전기), 社會(사회)의 革新(혁신), 人生(인생)의 改造(개조)에 對(대)한 弱者(약자)의 力(력)이 現前(현전) 當面(당면)의 問題(문제)로 一方(일방) 强者(강자)의 勢力(세력)이 衰亡(쇠망)의 運命(운명)에 陷(함)함과 共(공)히 他方(타방) 弱者(약자)의 至情(지정)으로부터 出(출)한 大運動(대운동)이 起(기)하야 强者階級(강자계급)에 大恐慌(대공황)을 與(여)하니 現時(현시) 勞動者(노동자)가 連帶結合(연대결합)의 感情(감정)으로 國際的(국제적)에 擴大(확대)하야 互相(호상) 扶助(부조)하며 連絡(연락)하며 通謀(통모)함이 其(기) 一例(일례)를 示(시)함이니라. 

우리 民族(민족)도 또한 弱者階級(약자계급)에 在(재)한 者(자)로서 世界(세계) 進運(진운)에 伴(반)하야 漸次(점차)로 頭角(두각)을 露(노)하야 政治的 運動(정치적 운동)이 各(각) 方面(방면)에 出現(출현)하는 바이라. 然(연)하나 政治運動(정치운동)과 社會運動(사회운동)은 密接(밀접)한 關係(관계)가 有(유)한 者(자)로서 社會(사회)를 離(이)하야 政治(정치)를 議論(의론)하는 者(자)는 畢竟(필경) 虛僞(허위) 愚昧(우매)에 陷(함)할 뿐이니 何等(하등) 實益(실익)이 有(유)하리오.

近世(근세) 歐羅巴(구라파) 諸國(제국) 中(중) 弱者階級(약자계급)에 在(재)한 者(자)로서 우리에게 至大(지대)한 模範(모범)을 垂(수)한 者(자)는 白耳義(백이의) 國民(국민)이니 互相(호상) 扶助(부조)의 道德(도덕)을 具體的(구체적)으로 經濟上(경제상)에 實行(실행)하야 中世紀(중세기) 以來(이래)로 政治上(정치상) 弱者(약자)의 位置(위치)에 立(입)하야 獨逸(독일), 西班牙(서반아), 葡萄牙(포도아) 諸(제) 强國(강국)의 壓迫(압박)을 受(수)함애 此(차)에 對抗(대항)하는 弱者(약자)의 手段(수단)으로 地方組合(지방조합)을 鞏固(공고)히 하야 制度(제도), 風氣(풍기), 傳統(전통)의 自由(자유)를 主張(주장)하더니 近代(근대)에 至(지)하야는 此(차) 自治(자치)를 産業上(산업상)에 應用(응용)하야 消費(소비), 生産(생산)의 組合(조합)과 金融(금융)의 施設(시설)과 民衆(민중)의 敎育上(교육상)에 互相(호상) 扶助(부조)하는 道德(도덕)이 周密(주밀)히 發達(발달)하야 白耳義(백이의) 各(각) 村里(촌리)에 林立(임립)하니 白耳義(백이의) 國民(국민)의 獨立心(독립심)과 愛國心(애국심)이 實(실)로 此(차) 道德(도덕)의 賜(사)한 者(자)이라. 그러함으로 白耳義(백이의) 人(인)이 此(차) 發達(발달)로 因(인)하야 最近(최근)에는 獨逸(독일)의 暴虐(포학)에 屈(굴)치 아니하고 自由獨立(자유독립)의 白耳義(백이의) 魂(혼)을 貫徹(관철)함은 吾人(오인)의 景仰(경앙)하는 바이라.

故(고)로 政治(정치)의 完成(완성)은 社會(사회) 各(각) 勢力(세력)의 綜合(종합) 發達(발달)한 結果(결과)라 謂(위)할지니 彼(피) 白耳義(백이의) 社會發達(사회발달)은 其國(기국) 政治(정치)에 完全(완전)한 成績(성적)을 與(여)한 바이니 吾輩(오배)도 政治運動(정치운동)에 新面目(신면목)을 成(성)코자 하면 몬저 社會改造(사회개조)의 新發達(신 발달)을 圖(도)할지라. 試問(시문)하노니 우리 弱者階級(약자계급)에 在(재)한 民族(민족)이 强者(강자)를 對抗(대항)하는 運動(운동)에 目標(목표)는 何如(하여)하며 理想(이상)은 何如(하여)하며 決心(결심)은 何如(하여)뇨.

嗟乎(차호)라, 余(여)가 十年(십년) 以前(이전)에 報舘(보관)에 身(신)을 離(이)하야 囚首結舌(수수결설)에 敢(감)히 一氣(일기)를 吐(토)치 못하엿더니 今(금)에 世故(세고)를 閱歷(열력)하야 鬚髮(수발)이 蒼然(창연)한데 本社(본사) 創刊(창간)의 機會(기회)를 利用(이용)하야 惓惓(권권)한 心懷(심회)가 오히려 泯滅(민멸)치 아니함으로 僣率(참솔)을 不揆(불규)하고 一言(일언)을 陳述(진술)하노니 讀者(독자)는 其(기) 諒解(양해)할진져. 
우리 신문의 본분과 책임 - 유근

유럽 전쟁터에 바람과 티끌이 걷히고(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연맹회의에 평화가 성립됨에 인도와 정의가 하늘의 이치를 순종하여 무력주의가 문화주의로 바뀌며, 제국주의가 사회주의로 바뀌며, 자본주의가 노동주의로 바뀌어 민권의 자유가 단순히 개인적 자유에 그치지 않고 세계적 자유에 이름으로써 민중 논의의 자유도 또한 개인적 자유에 머물지 않고 세계적 자유에 이르렀다. 이에 한반도 조선에 언론계 으뜸으로 동아일보가 탄생했다.

동아일보야. 반만년 역사를 등에 지고, 2000만 민중을 품에 안고, 수심 가득한 구름을 박차고, 고통의 세계를 뛰어 건너 캄캄한 겨울밤 같은 세상에 촛불을 잡고 목탁을 치며 20세기 신무대에 우뚝 선 너, 동아일보야.

동아일보야, 너의 출신을 네 아느냐. 신이 내린 옛 터에 푸른 돌로 주춧돌을 놓고, 박달나무로 마룻대와 들보를 짓고, 무궁화로 울타리를 만들어 내정을 정리하고 외부의 모욕을 방어하는 것은 너의 집.

동아일보야, 너의 신분을 네 아느냐. 동반구 한가운데 높이 솟은 백두산 그 꼭대기의 용왕담(천지), 혹독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홍수에도 불어나지 않아 찰랑찰랑하게 고인 물은 너의 뇌(腦).

용왕담 큰 샘 줄기가 압록, 두만, 쑹화 3대 강이 되어 나서 천 파도, 만 줄기가 합류해 활발하게 파도치며 태평양 큰 바다로 밤낮 없이 돌아들면 너의 피.

한산도 밝은 달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까. 다시 둥글어져서 아름다운 빛을 날리며 충혼이 멎은 듯 순탄하고 원활하게 솟아올라 남은 너의 넋.

청천강 매운바람 100만 군사는 형세가 성난 파도가 세차게 일어나고 벼락 치는 소리가 진동해 강적의 긴 활과 좋은 갑옷을 낙엽을 만들어 날리면 너의 소리.

백마산성 푸른 소나무 붉은 갑옷 굳게 입고 푸른 수염을 빙빙 둘러 눈과 서리를 무릅쓰고 둥글게 둥글게 하늘로 솟아오름은 너의 기개.

독립문 굳은 돌기둥, 두 다리를 높이 들어 비행기를 밀어뜨리고 기차를 차버리고 눈앞 천리만리 한 순간에 가려 함은 너의 걸음.

동아일보야, 너 행여나 신경쇠약 될라, 너 행여나 흐름이 막힐라, 너 행여나 정신 놓을라, 너 행여나 목쉴라, 너 행여나 좌절할라, 너 행여나 병날라.

동아일보야, 너의 짐이 무겁다. 너는 조선 민중의 표현기관이다. 그의 사상과 희망, 목표, 심리를 하나하나 보도해 민중이 쉽게 일어날 수 있게 하며, 발전하게 하며, 나는 듯 뛰어오르게 함은 믿는다, 너를.

너는 조선 민중의 권리를 보호하는 자이다. 그의 정신과 정의, 활동에 일일이 영향을 미쳐 민중이 쉽사리 압제를 벗어날 수 있게 하며, 권능을 부릴 수 있게 하며, 언론을 드러내 사람의 고유한 자유를 유지하게 함은 믿는다, 너를.

너는 조선 민중의 문화를 소개하는 자이다. 그의 교육과 경제, 정치를 하나하나 지도해 민중이 능히 밝고 지혜롭게 하고, 부유하게 하며, 공평하고 정직하게 해 세계 문명과 수레를 나란히 해 달리도록 함은 믿는다, 너를.

그러면 너는 조선 민중의 기관수이며, 우편매달부이며, 전화 교환소이며, 대리인이며, 정치가이며, 법률가이며, 경제가이며, 사회당이며, 노동주의자이다. 너의 책임이 무겁다. 자유권을 잃지 말고 온갖 난관을 물리치고, 용감하고 씩씩하게 나아가 거침없이 목적지에 도달하거라. 아! 동아일보야.


아는가, 모르는가? - 양기탁


전 세계에 흘러넘친 대 조류가 조선 한반도에도 밀려와 우리 민족의 정치적 운동이 크게 일어나 이르는 곳에 정치 혁신, 생활 개조를 부르짖어 하늘도 땅도 놀랄 만한 메아리가 1년여에 이르러 오늘에 달했으니 이는 곧 머리 움츠리고 입을 다물어 거의 죽은 기운을 살아나게 하고, 두려움 없이 용기 내어 일함에 새로운 활기를 늘려 펼치는 바이다.

이로 인해 제반 집회, 결사, 언론, 출판 등이 무수히 일어나 말라붙고 꽁꽁 어는 추위를 견딘 초목에 기쁘게도 봄바람이 불어 온갖 푸른 싹이 가지런히 돋아나는 광경을 보이니 이에 대해 흔쾌한 느낌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만 나는 한밤중에 홀로 몇 가지 의문을 품은 바가 있으니

하나, 국민운동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가.

둘, 이 운동의 배경에 상당한 이상과 지식이 있어 그를 뒤에서 돕는가.

셋, 그 목표에 도달함에 있어 단단하고 굳센 결심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대양에 떠 있는 선박이 일정한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없으면 완전히 목적지에 도달하기 어려운 것 같이 우리도 오늘날 세계의 큰 파도, 큰 물결 속에서 일정한 목표가 없다면 어찌 아득히 먼 경로에 진행한다 할 수 있을까. 결국 오리무중에 방황하는 폐해가 생길 것이니 우리는 반드시 현대에 가장 선량하고 가장 적합한 것을 택해 일정한 표지를 만들어 문화 진보에 순응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전쟁의 종식에 맞춰 인류 사상계에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니 19세기 이전에 비하면 엄연히 격세지감이 있다. 이런 이유로 국제적으로 민중 대 운동이 새로 일어나 사회주의니 노동주의니 하는 말이 세상에 가득하니 우리는 다만 부화뇌동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 여기고 반드시 새 이상과 지식으로 인성의 착하고 아름다움을 발달시켜 인류공존의 큰 뜻에 기초를 두고 인생의 개조를 성취해야 할 것이다.

무릇 사업을 영위하는 사람은 반드시 뽑히지 않을 단단한 결심이 있어 비록 수많은 장애가 있더라도 능히 온갖 고난을 물리치고 전진하는 걸음걸이를 움츠리지 않아야 그 목적을 이룰 수 있으니 만일 이 결심이 없고 일시 감정이 폭발해 물불을 가리지 않다가 때와 사물이 변해 자연히 게을러지고 지쳐 작은 기력도 없으면 헛되이 실패자로 전락해 시작은 있되 끝이 없다는 꾸짖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니 어찌 우리가 엄히 반성할 바가 아니겠는가.

무릇 동포 연대와 결합의 감정은 인지상정의 산물로, 세상 누구라도 이에 대항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약자의 운명이 강자의 세력으로 들어가지 않고 의연하게 존재할 뿐 아니라 문명의 전기, 사회의 혁신, 인생의 개조에 대한 약자의 힘이 바로 당면 문제로, 강자의 세력이 쇠망의 운명에 떨어지는 동시에 약자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대 운동이 일어나 강자 계급에 대공황을 안기니 지금 노동자가 연대 결합의 감정으로 국제적으로 서로 도우며 연락하며 통모하는 것이 그 한 예이다.

약자계급에 속한 우리 민족도 세계적 기세에 동반하여 점차 두각을 드러내 정치적 운동이 각 방면에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정치운동과 사회운동은 밀접한 관계가 있어 사회를 떠나 정치를 논하는 것은 결국 허위와 우매에 빠질 뿐이니 아무런 실익이 없을 것이다.

근세 유럽 여러 나라 가운데 약자계급으로 우리에게 지대한 모범을 주는 것은 중세기 이래로 정치적 약자의 위치에서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등 여러 강국의 압박을 받은 벨기에 국민이다. 이들은 상호부조의 도덕을 구체적으로 경제에서 실행해 강국에 대항하는 약자의 수단으로 지방조합을 공고하게 만들어 제도, 풍기, 전통의 자유를 주장했다. 근세에 와서는 이 자치를 산업에 응용해 소비 및 생산조합과 금융시설, 민중 교육에 상호 부조하는 도덕을 꼼꼼하게 발달시켜 각 촌락에 들어서게 하니 벨기에 국민의 독립심과 애국심은 참으로 이 도덕이 준 것이다. 그러므로 벨기에 국민이 이 덕분에 최근에는 독일의 횡포에 굴하지 않고 자유 독립의 혼을 관철한 것은 우리가 존경해 우러러 볼 바이다.

고로 정치의 완성은 사회 각 세력이 종합적으로 발달한 결과라 말할 수 있으니 저 벨기에의 사회발달은 그 나라 정치에 완전한 성적을 거둘 수 있게 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정치운동에서 새로운 면목을 이루고자 하면 먼저 사회개조의 새로운 발달을 기도해야 한다.

묻노니 우리 약자계급 민족이 강자에 대항하는 운동의 목표는 어떠하며, 이상은 어떠하며, 결심은 어떠한가.

슬프다. 내가 10년 전 신문사를 떠나 머리가 갇히고 혀는 묶여 감히 한 호흡도 뱉지 못한 채 세상 이런저런 일을 겪어 수염도 머리털도 바랬는데, 게으른 회포가 오히려 사라지지 않으므로 본사 창간의 기회를 이용해 주제넘게 헤아리지 않고 한 마디 하니 독자들은 양해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