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4월 12일

밀정? 이중간첩? 독립투사? 그의 진짜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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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당시 일제 경찰간부 황옥 이야기입니다. 그는 경기도경찰부 소속 경부였죠. 경부는 지금의 경위 또는 경감과 비슷한 계급입니다. 이 황옥이 의열단 폭탄공격 계획의 주모자라고 조선총독부가 발표했습니다. 1923년 4월 12일의 일이었죠. 이날 자 동아일보 호외를 본 사람들은 의열단의 대담한 시도에 한 번 놀라고 일제 경찰이 주범이라는데 또 한 번 놀랐죠. 2016년 개봉한 영화 ‘밀정’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었죠.

이 사건은 의열단의 ‘제2차 암살·파괴 계획’으로 불립니다. 18명이 검거되고 파괴용 암살용 방화용 등 세 가지 용도의 최신 폭탄 36개와 권총 5정, 실탄 155발, 조선혁명선언 등 문건이 압수된 것만 봐도 규모를 짐작할 수 있죠.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은행 경성우편국 등과 총독 정무총감 경무총감 등이 파괴 및 암살 목록에 올랐습니다. 계획대로 됐다면 독립운동의 양상이 달라지기에 충분했죠.


의열단장 김원봉은 먼저 조선무산자동맹회장 김한에게 실행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김한이 이해 1월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김상옥과 연루돼 붙잡히고 말았죠. 김한의 뒤를 이은 사람이 김시현이었습니다. 일본 메이지대학을 졸업한 뒤 1919년 중국으로 건너가 김원봉을 만나 의기투합했죠. 다시 경성으로 와서 황옥과 친분을 맺게 됐습니다. 김시현은 황옥으로부터 여비 50원을 받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에 참가하기도 했죠.

법원 서기이던 황옥은 1920년 경부로 특채돼 정보를 충실하게 수집했습니다. 그런데 김시현을 도울 무렵에는 고려공산당 국내지부 간부가 돼 있었죠. 황옥은 1923년 김상옥의 배후를 캐려고 중국 출장을 갔을 때 김원봉과 만나 의열단에도 가입했습니다. 경성으로 돌아오면서 문제의 폭탄을 김시현 등과 함께 몰래 들여왔죠. 이때 황옥은 일제 경찰로 위장한 동지였습니다. 국경 검문을 피할 여행증을 만들어주고 정보도 제공하는 조력자였죠.


황옥이 잡혔을 때 여론은 그를 일제의 끄나풀로 의심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경무국장은 ‘호랑이 새끼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고 강조했거든요. 독립운동가를 잡는다면 독립운동을 해도 봐준다는 뜻이었습니다. 밀정이 활개 치는 분위기가 됐죠. 동아일보가 횡설수설에서 ‘사람을 보거든 정탐으로 알라’는 새 표어가 필요할 때라고 지적할 정도였습니다.

예심 결과 황옥이 주범으로 발표되자 여론은 바뀝니다. 그가 감옥에 갇힌 뒤 생계가 어려워진 아내와 네 자녀에게 주라며 기부금이 동아일보에 접수되기도 했죠. 경무국장과 경기도경찰부장 고등경찰과장이 사표를 냈다는 기사도 실렸습니다. 부하 직원이 중죄인이 됐으니 직속상관들이 책임을 지려던 것이죠. 여기서 끝났다면 ‘황옥 의사’가 될 법도 했습니다.



재판 때 다시 반전이 일어납니다. 황옥 자신이 눈물을 글썽이며 모두 독립투사를 잡기 위한 의도된 행동이었다고 진술했거든요. 전직 경찰부장의 지휘를 받아 실행한 일이며 실적을 올리면 승진할 것으로 기대했다고 했습니다. 폭탄 밀반입을 보고하지 않은 이유는 결정적 시점을 노렸기 때문이었다고 했죠. 듣던 의열단 피고 한 명은 “우리를 모두 잡아주고 자기 사복을 채우겠다는 악마의 행동을 이제야 아니 분하기 그지없다”며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결국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은 황옥은 은사와 감형으로 4년2개월 복역했습니다. 1929년 가출옥 뒤에는 경성에 머물며 옛 동지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해방 후 악질 친일 경찰 김태석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재판 증인으로 나와 의열단사건을 증언했고요. 6‧25전쟁 때 납북돼 그 후 행적은 알 수 없죠. 이쯤해서 다시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과연 황옥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일제강점기 때 어느 편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 황옥 한 사람뿐일까요?

이진 기자 leej@donga.com기사입력일 : 2021년 01월 22일
赤化(적화)의 烽火(봉화) 獨立(독립)의 猛炎(맹염)
義烈團事件(의열단사건) 內容(내용) 發表(발표)


檢擧(검거)된 關係者(관계자)가 兩處(양처)에서 十八名(18명)
爆彈(폭탄) 三種(3종) 卅六個(36개) 拳銃(권총) 五挺(5정) 等(등) 押收(압수)

삼월 십오일 경성의 텬디를 진동케 하든 김상옥사건(金相王事件)의 내용을 발표하야 경성시내에 각 신문의 호외가 돌고 인심이 소탄하든 삼월 십오일에 또 무슨 중대사건이 발생하얏다 하야 북경(北京) 의렬딘(義烈團)의 일부를 톄포하는 동시에 다수한 폭탄과 권총 등을 압수하얏다는 발표가 잇서서 경성의 인심은 또 한 번 흉々하게 되얏는대 이 사건이 원래 중대한 관계가 잇슴으로 이래 이십여일 동안 극비밀리에 취조하든바 금일 오전 열 시에 이르러 총독부 경무국에서 사실의 전말을 발표하얏는대 경긔도경찰부(京畿道警察部) 평안복도경찰부(平安北道警察部)와 신의주경찰서(新義州警察署)에서는 김원봉(金元鳳)을 단장으로 한 의렬단(義烈團)이 아라사공산당에서 자금을 바다 가지고 요로의 대관을 암살하고 관공서를 파괴하야써 조선을 적화(赤化)케 하고 그 틈을 타서 독립운동을 이르키랴고 계획하는 음모를 탐지하고 신의주서에서는 삼월 십사일에 경긔도경찰부에서는 동 십오일에 검거에 착수하야 량처에서 관계 피고 십팔명을 톄포하는 동시에 각종의 폭탄 삼십륙 개、폭탄장치용 시계 여섯 개、권총 다섯 자루、동 실탄 백오십오 발、뢰관(雷管) 여섯 개、조선혁명선언(朝鮮革命宣言)과 『조선총독부관공리에게』라고 뎨목한 문서 구백여 장과 기타 잡품을 발견 압수하고 신의주서에서는 삼월 이십팔일、경긔도경찰부에서는 동 이십구일에 모다 사건을 피고와 함께 소할 검사국에 송치하얏는대 이 계획의 내용과 검거의 대강은 다음과 갓다. (십이일 오전 십 시 경무국 발표)


革命的(혁명적) 獨立運動(독립운동)의 由來(유래)

오 년 간 계획한 의렬단의 혁명뎍 계획
과거의 폭탄사건은 모다 이 단의 관계

資金(자금)의 出處(출처)는 露國共産黨(노국공산당)


의렬단댱(義烈團長) 김원봉(金元鳳)은 경상남도(慶南) 밀양(密陽) 출생인대 대정 팔년 륙월 경에 길림(吉林)으로 가서 동 팔월 경에 그 곳에서 요로의 대관을 암살하고 관공서를 파괴할 목뎍으로 의렬단을 조직하고 그 후 북경(北京) 상해(上海)에 근거를 옴기엇스나 대정 구년 이후 수차 검거된 폭탄에 관한 사건은 거반 직접 간접으로 이 의렬단의 계획이엇든 것이라. 이래 그들은 계속하야 각종 음모를 계획하여 왓스나 재정의 궁핍으로 인하야 자금을 변통하기에 고심하든 차에 마츰 로국공산당(露國共産黨)이 일부 조선인을 리용하야 적화선전을 하랴 하고 단댱 김원봉도 자금을 어더서 목뎍한 계획을 달함에는 공산당과 악수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 하야 대정 십년 말경에 드대여 공산당과 결탁하야 조선의 적화와 독립을 계획하고 먼저 조선 안에 잇는 관공리의 암살과 건물의 파괴를 단행하기 위하야 그 수단으로 파괴용(破壞用) 방화용(放火用)과 암살용(暗殺用)의 각종 폭탄을 사용하야 대번에 조선에 동란을 이르키고 혁명을 이르키어 민족을 각성케 아니하면 아니되겟다고 마츰내 폭탄을 비밀히 수입하며 실행계획을 세우게 되얏더라.


外務(외무)는 金元鳳(김원봉)이 擔當(담당)
實行(실행)은 金始顯(김시현)의 責任(책임)


김상옥사건으로 김한이가 잡히매
모든 실행계획을 김시현이가 마터

그리하야 김원봉은 먼저 조선무산지동맹회댱(無産者同盟會長) 김한(金翰)으로 하야금 이 계획에 참례케 하기 위하야 단원 남녕득(南寧得) 외 두 명을 텬진(天津)에서 배를 태어 조선 안으로 비밀히 파견하야 조선 안의 교통상황과 폭탄을 수용할 방법을 시찰 연구케 하는 동시에 겸하야 김한에게 폭탄의 비밀수입과 그것을 던지어 실행하는데 대하야 교섭케 하야 김한은 즉시 그 계획을 맛고 폭탄은 김원봉이가 안동현까지 실어오기를 담당하고 안동현 이남의 수송과 실행방법은 김한이가 마타서 처리하기를 허락하고 그 비용으로 금 륙천 원을 요구하야 결국 이천 원을 바다서 계획을 진행하는 동시에 시긔를 기다리든 차에 마츰 금년 일월에 김상옥사건에 관하야 종로경찰서에 검거된 까다에 계획이 일시 중지될 듯하얏 나 당시에 마츰 공산단원 김시현(金始顯)은 김한의 명령으로 김원봉과 상의하기 위하야 경성을 떠나 텬진에 비밀히 가서 그 곳에 잇든 때이엇슴으로 김원봉은 김한의 대신에 김시현으로 하야금 죠선 내디에서 본 계획의 실행을 하게 한 것이더라.


爆(폭) 彈(탄) 輸(수) 送(송)의 徑(경) 路(로)

김시현이가 텬진까지 가서
홍종우 등을 지휘하야 수송

위선 김시현(金始顯)은 작년 말 본 계획과 공산당(共産黨)의 조선 안의 중계긔관(中繼機關)을 삼을 목뎍으로써 동지 홍종우(洪鍾祐)를 조선일보 안동현지국댱으로 추천하야 취직케 하고 또 그에게 그 뜻으로 동지를 모으게 하야 류석현(劉錫鉉) 외 한 명을 어드매 이 실행에 착수코자 하야 경성으로부터 김원봉에게 이쳔 원을 보내라고 뎐보를 첫스나 요구하는 대로 돈을 보내는 것이 업슴으로써 경성에서 류석현 등을 지휘하야 자금모집을 하게 하얏는대 이 역시 또 실패에 맛치기 때문에 드듸어 뜻을 결단하고 금년 일월 삼일 경성을 떠나는 도중 홍종우의 집에서 두어날 자고 다시 봉텬에 가서 하로 저녁을 사고 동지 리현준(李賢俊)이가 봉텬에 오기를 기다리어 함께 텬진(天津)으로 가서 그 곳에서 김원봉과 면회하고 이 계획에 대하야 여러 가지로 협의하고 이월 이십사일 김시현은 단신으로 안동현 홍종우의 집에 가서 홍종우와 협의한 후 폭탄 운반자로 조선일보 평북지국원 백영무(白英武)와 함끠 이삼일 동안 잔 후에 다시 텬진(天津)으로 도라가서 그 곳에서 김원봉이가 상해에서 가지고 온 폭탄을 가지고 이것을 조선 내디에 수송하기로 하얏다.

그리고 폭탄과 불온문서류 크고 적은 가방 다섯 개에 너허서 위선 삼월 삼일 리현준 백영무 두 명으로 하여금 텰도로 안동현 홍종우의 집에 운반식히고 그 다음 그달 초닷새 날 스사로 남은 가방 세 개를 가지고 텬진을 떠나 그달 칠일에 안동현에 도착하야 그것을 홍종우의 집으로 가저다가 전번 것과 함끠 조영자(曹榮子) 등에게 맛하두게 하고 그 이튼날인 팔일과 구일 두 번에 김시현、홍송종우、백영무、리오길 외 한 명은 인력거로 텰교를 넘어 폭탄 등속을 신의주 백영무의 집과 그 곳 한성려관(漢城旅舘)으로 운수하야 보냇더라.


京城(경성)에 搬來(반래)한 爆彈(폭탄)은

김사용과 조황의 집에 맛겨
경부 황옥까지 잡히게 된 일

이리하야 김시현은 전긔 폭탄 중 폭탄 여달 개와 불온문서 륙백륙십 장을 사정을 말하고 신의주 조동근(趙東根)의 집에 숨겨두고 그 남어지의 각종 폭탄 등은 그달 십일로 십삼일까지 사흘 동안에 두 번에 난호아 류석현 리현준 리오길 외 한 명과 함끠 경성에 운반하야 무긔와 불온문서류는 시내 김사용의 집과 조황(趙晃)의 집에 숨겨두고 김시현 이하의 각 피고는 시내 각처에 잠복하야 상해에서 동지가 오기를 기다리어 실행할 시긔를 엿보고 잇든 것이라. 미리 이 음모계획을 탐지한 평안북도경찰부와 신의주경찰서에서는 삼월 십사일부터 검거에 착수하고 경긔도에서는 그달 십오일에 각기 검거하기를 시작하야 관계 잇는 사람을 톄포하고 폭발탄과 륙혈포 등을 만히 압수하야 계획을 미리 예방하게 되얏고 또 전긔 황옥은 이 계획에 가담한 의심이 잇서 동시에 검거한 것이며


資金(자금)을 調達(조달)코자
류병하 등 활동


또 이보다 먼저 김원봉은 이 계획을 실행할 비용이 부족함으로 조선 내디에 잇는 동지 모모와 텬진에 톄재 중이든 남녕득(南寧得)에게 대하야 경성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라고 명령하얏슴으로 두 사람은 류병하 외에 한 사람과 공모하고 륙혈포를 가지고 이월 이십일일 이십삼일 이십사일의 세 차레에 경성부 내자동(內資洞) 일백구십이번디 리린희(李麟熙)의 집에 침입하야 돈 오십 원을 빼앗고 돈을 더 내이라고 협박한 것을 종로서에서 탐지하고 검거하얏더라.


可恐(가공)할 爆彈(폭탄)의 威力(위력)

파괴용 암살용 방화용 세 가지
모다 셰력이 극히 위대하다고
出處(출처)는 亦是(역시) 露國方面(노국방면)인가

의렬단에서 사용코자 하든 폭발탄 중에 이번에 압수된 것은 전긔한 바와 가치 파괴용(破壞用) 방화용(放火用) 암살용(暗殺用)의 세 종류를 합하야도 합 삼십륙 개가 경찰서에 압수되고 기타 권총 다섯 자루와 실탄 일백오십오 발 기타 폭탄에 장치하는 시계가 여섯 개인대 이번에 압수한 폭발탄은 셰 가지가 다 최신식으로 만든 것인 중 더욱히 파괴용은 벽돌집 벽을 뚤코 드러가서 그 속에서 폭발이 되는 동시에 일시에 건물이 문어지는 맹렬한 힘을 가지고 잇스며 그 모양은 둥구런 『모과통』 가튼 형톄로 만드러 그 속에는 『제림나이트』라는 맹렬한 폭발약을 집어넛코 폭발하는 장치는 시계를 그 폭발탄 도화선에 련락하야 몃 시간 후에 폭발하게 하든지 그 목뎍하는 시간을 예뎡하야 장치하는 것이며 방화용은 그 형톄를 『대추씨』(棗核形‧조핵형) 모양으로 만들고 그 속에는 중모래와 갓고 폭발하는 힘이 가장 만은 화약을 집어너허 목뎍한 곳을 향하야 더지면 폭발하게 만들어

한 번 폭발하면 강텰조각이 사방으로 헛터지고 불길이 맹렬히 이러나서 사방이 불텬디가 되는 동시에 건물을 태우게 하며 사람이 상하는 방화와 암살을 겸한 것이며 암살용은 갸름한 병모양으로 만드러 그 속에는 독한 황린(黃燐)을 너허 역시 목뎍한 곳을 향하고 던지면 폭발하는 것인대 폭발되면 강텰조각이 사방으로 헛허지는 동시에 그것보다도 더 독하 것은 그 속에 너헛은 황린이 폭발되야 사람의 몸에 조금이라도 시치기만하면 그 사람은 황린 독긔로 인하야 즉사하는 무서운 장치를 한 것이라 하는데 전긔 세 가지의 폭탄은 최신식으로 된 것이나 만드러내인 곳은 아즉까지도 판명치 못하얏스나 검사한 결과 로국 방면에서 유태(猶太) 사람의 손으로 된 듯하다고 추칙되며 텬진에서 아라사사람이 만든 것이라는 말도 잇더라.


所謂(소위) 有志(유지)의 密告(밀고)

류셕현 등 피착

조황이가 뎨포된 후로 동지 류석현 리오길 등을 톄포치 못하야 경찰당국에서 애를 쓸 때에 일즉이 모회 간부로 눈물도 흘니는 체 사업도 하는 톄 하든 김모(金某)의 밀고로 류석현 일파가 잡히게 되니 실로 이 사건에는 정치범을 잡든 경부가 범인이 되고 사회 유지가 밀뎡이 되니 실로 조선 텬지는 현재 까마귀의 자웅을 알 수 입는 듯한 수수꺽기의 세상이오 류석현 일파가 잡히는 동시에 황옥이가 관계된 것을 알앗다.


金始顯(김시현)의 逮捕(체포)는

□□□□□□
영도사 어구에서 잡혀

이와 가차 범인의 대부분이 잡히엇스나 다만 수령 김시현(金始顯)을 잡지 못하야 주야로 활동하는 중 몃칠 후에 일즉이 김시현의 동지라 하든 모와 이번 사건의 관련자로 검거되얏든 모의 고발로 동대문밧 영도사 드러가는 어구 현재 경긔도 모군수의 아들인 오모(吳某)의 집에서 잡히엇는대 김시현은 경상도 안등 사람으로 일본 명치대학 출신이라더라.


事件(사건) 發覺(발각)의 眞相(진상)

단서는 신의주에서 어더가지고
서울서는 효자동에서 폭탄 압수

이와 가튼 큰 계획이 엇더한 경로로 발각되엿는가. 폭탄을 신의주 백무영(白英武)의 집과 한성려관과 조동근(趙東根)의 집에 갓다 둔 후로 폭탄을 감춘 집에서 장래를 념려하고 다른 사람과 상의한 일이 단서가 되여 홍종우 외 여러 사람이 잡히게 되매 자연 류석현 리오길 등이 폭탄을 가지고 경성으로 온 것이 발각되여 그 곳에서 여러 가지 폭탄과 문서가 압수되는 동시에 경성에서도 경긔도경찰부에서 십오일 새벽에 시내 효자동(孝子洞) 이십일번디 조황(趙晃)의 집에서 압수하게 되고 조황이가 톄포되며 련루자 류석현 리오길 등이 톄포되엿스며 이어서 관련한 혐의자로는 리경희(李慶熙) 김사용(金思容)등이 톄포되엿더라.


警部(경부) 黃鈺(황옥)의 關係(관계)는

이 사건 즁 가장 의심할 뎜
확뎡되기까지 역시 의문

그런대 이와 가치 무서운 계힉에는 놀나지 말라. 경긔도경찰부에서 근무하는 경부(警部) 황옥(黃鈺)이가 이 계획에 참가하엿다는 혐의로 경찰부에서 취조를 밧고 서대문경찰서에 구류되엿다가 감옥으로 넘어가게 되니 그는 원래 경상북도(慶南) 문경군(聞慶郡) 사람으로 향리에서 소학교를 졸업하고 각처 재판소 서긔로 근무하고 다셧 해 전부터 경긔도경찰부 고등과의 경부가 되여 만흔 정치범 톄포에 종사하니 금번 황욱이가 이 사건에 참가하야 엇지々々하얏다는 일은 아즉 사건이 확뎡되기 전이라 전부 발표할 수 업스나 하여간 만장의 운이 첩々한 일종 긔괴사이다.
적화의 봉화, 독립의 불꽃
의열단사건 내용 발표


검거된 관계자가 두 곳에서 18명
폭탄 3종 36개, 권총 5정 등 압수

3월 15일 경성의 천지를 진동하게 하던 김상옥사건의 내용을 발표해 경성시내에 각 신문의 호외가 돌고 인심이 소란하던 이날에 또 무슨 중대사건이 발생했다 하여 베이징 의열단의 일부를 체포하는 동시에 많은 폭탄과 권총 등을 압수했다는 발표가 있어 경성의 인심은 또 한 번 흉흉하게 되었다. 이 사건이 원래 중대한 관계가 있음으로 이후 20여 일 동안 극비리에 취조한 결과 12일 오전 10시에 총독부 경무국에서 사실의 전말을 발표했다. 경기도경찰부와 평안북도경찰부, 신의주경찰서에서는 김원봉을 단장으로 한 의열단이 러시아공산당에서 자금을 받아 주요 고위관리를 암살하고 관공서를 파괴함으로써 조선을 적화시키고 그 틈을 타 독립운동을 일으키려고 계획하는 음모를 탐지했다. 신의주경찰서는 3월 14일에, 경기도경찰부는 같은 달 15일에 검거에 착수해 두 곳에서 관련 피고인 18명을 체포하는 동시에 각종 폭탄 36개, 폭탄장치용 시계 6개, 권총 5정, 실탄 155발, 뇌관 6개, 조선혁명선언과 ‘조선총독부 관공리에게’라고 제목을 쓴 문서 900여 장과 기타 물품을 발견해 압수하고 신의주서에서는 3월 28일, 경기도경찰부에서는 같은 달 29일에 사건을 전부 피고와 함께 관할 검사국에 송치했다. 적발된 계획의 내용과 검거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2일 오전 10시 경무국 발표)


혁명적 독립운동의 유래

5년 간 계획한 의열단의 혁명적 계획
과거 폭탄사건은 모두 이 단과 관련

자금 출처는 러시아공산당

의열단장 김원봉은 경상남도 밀양 출생으로 1919년 6월 경 중국 지린으로 가서 같은 달 8월 경에 그 곳에서 주요 고위관리를 암살하고 관공서를 파괴할 목적으로 의열단을 조직했다. 그 후 베이징 상하이에 근거를 옮겼으나 1920년 이후 수차례 검거된 폭탄에 관한 사건은 거의 직, 간접으로 이 의열단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후 그들은 계속해 각종 음모를 계획해 왔으나 재정이 궁핍해 자금을 마련하기에 고심하던 차에 마침 러시아공산당이 일부 조선인을 이용해 적화선전을 하겠다고 하고 단장 김원봉도 자금을 얻어서 목적한 계획을 달성하는 데는 공산당과 손잡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고 보았다. 1920년 말 경 드디어 공산당과 결탁해 조선의 적화와 독립을 계획하고 먼저 조선 안에 있는 관공리의 암살과 건물의 파괴를 단행하기 위해 그 수단으로 파괴용과 방화용과 암살용의 각종 폭탄을 사용해 단숨에 조선에 폭동을 일으키고 혁명을 일으켜 민족을 각성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마침내 폭탄을 몰래 들여와 실행계획을 세우게 됐다고 한다.


외무는 김원봉이 담당
실행은 김시현의 책임


김상옥 사건으로 김한이 검거되자
모든 실행계획을 김시현이 맡아

그래서 김원봉은 먼저 조선무산자동맹회장 김한으로 하여금 이 계획에 참여케 하기 위해 단원 남영득 외 2명을 톈진에서 배를 태워 조선으로 몰래 보내 조선 안의 교통상황과 폭탄을 받을 방법을 시찰 연구하게 하는 동시에 김한에게 폭탄의 비밀 반입과 그것의 투척을 실행하는데 대해 섭외하게 했다. 김한은 즉시 그 계획을 맡았고 폭탄은 김원봉이 단둥까지 실어오도록 했고 단둥 이남의 수송과 실행방법은 김한이 담당해 처리하도록 허락했다. 그 비용으로 6000원을 요구해 결국 2000원을 받아서 계획을 진행하는 동시에 시기를 기다리던 중 마침 올해 1월에 김상옥사건에 관해 종로경찰서에 검거된 탓에 계획이 일시 중지될 듯했다. 그러나 당시에 마침 공산단원 김시현이 김한의 명령으로 김원봉과 상의하기 위해 경성을 떠나 톈진에 몰래 가서 그 곳에 있던 때여서 김원봉은 김한 대신에 김시현으로 하여금 조선 내지에서 이 계획을 실행하게 한 것이라고 한다.


폭탄수송 경로

김시현이 톈진까지 가서
홍종우 등을 지휘해 수송

우선 김시현은 지난해 말 이 계획과 공산당의 조선 내 중계기관을 삼을 목적으로 동지 홍종우를 조선일보 단둥지국장으로 추천해 취직시키고 또 그에게 이 의도로 동지를 모으도록 해 유석현 외 1명을 얻어 실행에 착수하려고 했다. 경성에서 김원봉에게 2000원을 보내라고 전보를 부쳤으나 요구하는 대로 돈을 보내온 것이 없자 경성에서 유석현 등을 지휘해 자금모집에 나섰으나 이 역시 또 실패했다. 이 때문에 드디어 뜻을 굳게 하고 올해 1월 3일 경 경성을 떠나 도중에 홍종우의 집에서 이틀 정도 자고 다시 펑톈에 가서 하루 저녁 자고 동지 이현준이 펑톈에 오기를 기다려 함께 톈진으로 가서 김원봉과 면회하고 이 계획에 대해 여러 가지로 협의했다. 2월 24일 김시현은 혼자 단둥 홍종우 집에 가서 그와 협의한 뒤 폭탄 운반자로 조선일보 평북지국원 백영무와 함께 2, 3일 동안 머물고 다시 톈진으로 돌아가서 김원봉이 상하이에서 가져온 폭탄을 조선 안으로 수송하기로 했다. 그리고 폭탄과 불온문서를 크고 작은 가방 5개에 넣어 우선 3월 3일 이현준 백영무 두 명에게 철도 편으로 단둥 홍종우 집에 운반시키고 그 다음 그달 5일 스스로 가방 3개를 가지고 톈진을 떠나 그달 7일 단둥에 도착해 그것을 홍종우 집으로 가져가 지난번 것과 함께 조영자 등에게 맡아두게 하고 이튿날인 8일, 9일 두 차례 김시현 홍종우 백영무 이오길 외 1명은 인력거로 철교를 건너 폭탄 등을 신의주 백영무 집과 그곳 한성여관으로 보냈다고 한다.


경성에 들여온 폭탄은
김사용과 조황의 집에 맡겨
경부 황옥까지 붙잡히게 된 일

이리하여 김시현은 앞서 폭탄 중 8개와 불온문서 660장을 사정을 말한 뒤 신의주 조동근 집에 숨겨두고 그 나머지 각종 폭탄 등을 그달 10일에서 13일까지 3일 간 두 차례 나눠 유석현 이현준 이오길 외 1명과 함께 경성으로 운반했다. 무기와 불온문서는 시내 김사용 집과 조황 집에 숨겨두고 김시현 이하 각 피고는 시내 각지에 잠복해 상하이에서 동지가 오기를 기다려 실행할 시기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미리 이 음모계획을 탐지한 평안북도경찰부와 신의주경찰서에서는 3월 14일부터 검거에 착수했고 경기도에서는 그달 15일에 각기 검거를 시작해 관련자를 체포하고 폭탄과 권총 등을 다수 압수해 계획을 미리 예방하게 됐고 또 앞서 황옥은 이 계획에 가담한 의심이 있어 동시에 검거했다.


자금을 조달하려고
유병하 등 활동


또 이보다 앞서 김원봉은 이 계획을 실행할 비용이 부족하자 조선 안에 있는 동지 모모와 톈진에 머물던 남영득에게 경성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라고 명령했고 두 사람은 유병하 외 1명과 공모해 권총을 가지고 2월 21일, 23일, 24일 세 차례 경성 내자동 192번지 이인희 집에 침입해 50원을 빼앗고 돈을 더 내라고 협박한 것을 종로서에서 탐지하고 검거했다고 한다.


가공할 폭탄의 위력

파괴용 암살용 방화용 3가지
모두 위력이 아주 크다고
출처는 역시 러시아 쪽인가

의열단에서 사용하려고 하던 폭탄 중 이번에 압수된 것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파괴용 방화용 암살용 3종을 합해 모두 36개였다. 권총 5정과 실탄 155발, 기타 폭탄에 장치하는 시계가 6개였다. 이번에 압수한 폭탄은 3종류가 모두 최신식으로 만든 것으로 특히 파괴용은 벽돌집 벽을 뚫고 들어가서 그 속에서 터지는 동시에 일시에 건물이 무너지는 맹렬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 모양은 동그란 모과통 같은 형태로 그 속에는 ‘제림나이트’라는 강력한 폭약을 집어넣고 기폭장치는 시계를 폭탄 도화선에 연결해 몇 시간 뒤 폭발하게 하든지 목표 시간을 예정해 장치하는 것이다. 방화용은 형태를 대추씨(조핵형) 모양으로 만들고 그 곳에는 중모래와 같고 폭발력이 가장 큰 화약을 집어넣어 목표를 향해 던지면 폭발하게 만들어 한 번 터지면 강철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불길이 맹렬하게 일어나 사방이 불천지가 되는 동시에 건물을 태우게 해 사람이 상하는 방화와 암살을 겸한 것이다. 암살용은 갸름한 병 모양으로 만들어 그 속에는 독한 황인을 넣어 역시 목표를 향해 던지면 그 속에 넣은 황인이 폭발해 사람 몸에 조금이라도 스치기만 하면 황인 독기로 인해 즉사하는 무서운 장치를 한 것이라 한다. 이 3종의 폭탄은 최신식이지만 만든 곳은 아직까지도 가려내지 못했으나 검사한 결과 러시아 방면에서 유태인 손으로 만든 것이라고 추측되며 톈진에서 러시아인이 만든 것이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이른바 유지의 밀고
유석현 등 피검

조황이 체포된 뒤 동지 유석현 이오길 등을 붙잡지 못해 경찰당국에서 애를 쓸 때 일찍이 모회 간부로 눈물도 흘리는 체, 사업도 하는 체 하던 김모의 밀고로 유석현 일파가 잡히게 되니 진짜 이 사건에는 정치범을 잡던 경부가 범인이 되고 사회 유지가 밀정이 되니 정말로 조선 천지는 현재 까마귀의 암수를 알 수 없는 듯한 수수께끼의 세상이고 유석현 일파가 잡히는 동시에 황옥이가 관련된 것을 알았다.


김시현의 체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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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사 어구에서 잡혀

이와 같이 범인 대부분이 잡혔으나 다만 우두머리 김시현을 잡지 못해 밤낮으로 활동하던 중 며칠 뒤 일찍이 김시현의 동지라고 하던 모와 이번 사건의 관련자로 검거되었던 모의 고발로 동대문 밖 영도사 들어가는 입구, 현재 경기도 모군수의 아들인 오모의 집에서 잡혔는데 김시현은 경상도 안동 사람으로 일본 명치대학 출신이라고 한다.


사건 발각의 진상

단서는 신의주에서 얻어서
서울 효자동에서 폭탄 압수

이와 같은 큰 계획이 어떤 경로로 발각되었나. 폭탄을 신의주 백무영의 집과 한성여관과 조동근 집에 갖다 둔 뒤 폭탄을 감춘 집에서 장래를 염려하고 다른 사람과 상의한 일이 단서가 돼 홍종우 외 여러 사람이 잡히자 자연 유석현 이오길 등이 폭탄을 가지고 경성으로 온 것이 발각돼 그 곳에서 여러 가지 폭탄과 문서가 압수되는 동시에 경성에서도 경기도경찰부에서 15일 새벽에 시내 효자동 21번지 조황 집에서 압수하게 되고 조황이 체포되면서 연루된 유석현 이오길 등이 붙잡혔으며 이어 관련된 혐의자로는 이경희 김사용 등이 체포되었다고 한다.


경부 황옥의 관계는
이 사건 중 가장 의심할 점
확정되기까지 역시 의문

그런에 이와 같이 무서운 계획에는 놀라지 말라. 경기도경찰부에서 근무하는 경부 황옥이 참가했다는 혐의로 경찰부에서 취조를 받고 서대문경찰서에 구류됐다가 감옥으로 넘어가게 됐다. 그는 원래 경상북도 문경군 사람으로 고향에서 소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곳 재판소 서기로 근무하고 5년 전부터 경기도경찰부 고등과 경부가 돼 많은 정치범을 체포했다. 이번에 황옥이 이 사건에 가담해 어찌어찌했다는 일은 아직 사건이 확정되기 전이라 전부 발표할 수 없지만 어쨌든 여러 구름이 겹친 일종의 기괴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