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9월 21일

“중국 것이 내 것보다 그리 소중한가?” 한 청년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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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우리가 지금 쓰는 한글이라는 것이올시다. 이는 조선 제4대 세종대왕께서 성삼문 정인지 신숙주 최항 등 여러 신하들에게 명하여 조력하게 하시고 1443년, 지금으로부터 480년 전에 지으셔서 3년 뒤 내외에 반포하신 것이외다. 이 글을 오늘 우리가 언문 또는 반절이라고 부르지만 이는 다 후세 사람들이 스스로를 모멸하고 비하하는 명칭이외다.”

28세 청년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 청년은 일본 교토(京都) 유학생학우회가 1922년 7월 18일부터 시작한 여름철 순회강좌의 강사 중 한 명이었죠. 이름은 최현배. 손꼽히는 한글학자로 업적을 남긴 외솔 최현배입니다. 청년 최현배는 주변의 권유로 강연 내용을 동아일보에 기고했죠. 같은 해 8월 29일부터 9월 23일까지 23회 연재된 ‘우리말과 글에 대하여’입니다. 최현배의 생각이 처음으로 활자화된 것이었죠.

최현배는 우리글이 이두로 모양을 갖추기 시작해 훈민정음으로 결실을 맺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막강한 적이 쳐들어왔다고 했죠. 삼국시대부터 물밀 듯 쏟아져 들어온 한자였습니다. 한자가 성행하자 우리말은 점점 설자리를 잃게 됐죠. 급기야 우리 고유의 성(姓)까지 한자식 성에 밀려났다고 했습니다. 어릴 땐 우리말로 이름을 부르다 커서는 한자를 써야 어른답게 여길 정도가 됐다는 것이죠. 민족의 본체를 잃어버린 꼴이라고 한탄했습니다.

위는 최현배가 1922년 8월 29일부터 동아일보에 연재한 '우리말과 글에 대하여'의 서문에 해당하는 글이다. 여름철 순회강좌의 강연을 그대로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아래 ①은 최현배의 경성고등보통학교 때 모습이고 ②와 ③은 일본 교토제국대학 시절의 모습으로 보인다. ①과 ③은 손자 최홍식 외솔회 명예이사장 제공 ②는 외솔기념관 제공


조선시대에는 유교와 함께 한자를 극단적으로 떠받들어 우리말이 심하게 멸시를 당했다고 했죠. 같은 뜻의 말이라도 한자로 하면 존경심이 배어 있고 우리말로 하면 경멸감이 스며있다고 여길 지경이었다는 겁니다. 이러니 반만년이나 써온 우리말을 연구하지도 않고 500년 가까이 써내려온 우리글을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했죠. 그 사이 단어는 줄어들고 통일성도 사라지게 되었답니다. ‘하늘’ 단어가 무려 30가지로 달리 표기되는 실정이라고 했죠.

프랑스 외교관 카미유 앵보위아르가 한불사전과 문법책을 펴낸 때가 1873년. 주시경이 국어문전음학을 발간한 때는 1908년이었습니다. 35년 뒤였죠. 우리가 집안일을 잊어버리고 얼마나 늦잠을 잤는지 거론한 사례였습니다. 파묻힌 보석, 녹슨 보검 같은 우리말과 글을 파내서 닦아야 할 때라고 했습니다. 학교에서 우리말로 가르쳐야 하고 청년이 앞장서라고 호소했죠. 모화사상과 제 것 경시 풍조를 비판하면서 우리말과 글을 없애고 창씨개명까지 강제하려는 일제의 속성도 드러냈습니다.

왼쪽 위는 최현배가 제시한 한글 흘림글씨(인쇄체) 35자로 작은 글자와 큰 글자로 각각 나누었다. 왼쪽 아래는 흘림글씨로 쓴 문장 시안이다. 연재가 끝난 지 20일쯤 뒤인 10월 12일자 동아일보 1면에 실었다. 지금 보면 낯설기도 한데다 인쇄상태도 좋지 않아 해독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ㄱ) (ㄴ) (ㄷ) 각 문장의 뜻은 오른쪽과 같다.


최현배는 경성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1913년 주시경의 조선어강습원 고등과를 졸업했습니다. 주시경과의 인연이 시작된 계기였죠. 다섯 살 위로 강습원 동기생이자 주시경의 공동 수제자로 꼽혔던 김두봉은 3·1운동 직후 중국으로 망명한 뒤 북한을 선택해 길이 갈리고 말았죠. 최현배는 그동안 히로시마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20년부터 동래보통학교 교사로 일합니다. 2년 뒤 교토제국대학으로 다시 유학을 떠나 대학원까지 다닌 뒤 34세부터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했죠. 그가 교수 첫 해에 ‘조선민족 갱생의 도’를 무려 65회 동아일보에 연재해 민족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 것은 유명한 일이었습니다. 그가 한글학자를 뛰어넘는 민족사상가인 근거입니다.

특히 청년 최현배의 동아일보 기고를 보면 놀랍게도 이미 이후 연구의 틀이 거의 잡힌 상태였죠. 스승 주시경처럼 한글전용을 주창한 그는 ‘좋은 글씨’의 핵심요소를 ‘가로쓰기’ ‘풀어쓰기’라고 했죠. 풀어쓰기는 ‘국’을 ‘ㄱㅜㄱ’처럼 쓰는 겁니다. 풀어쓰기를 ‘가로씨기’로 표현했죠. 그는 당시 중국과 일본에서 진행되던 ‘국자(國字)개량운동’과 같은 맥락에서 한글 자음과 모음 35자를 새로 개발했습니다. 이를 박음글씨(인쇄체)와 흘림글씨(필기체)로 각각 나눴고 흘림글씨로 쓴 문장은 직접 시안을 제시하기도 했죠. 그의 구상이 현실과 상호작용하면서 변용되어 가는 것은 해방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기사입력일 : 2021년 01월 22일
우리말과 글에 對(대)하야 (卄一‧21)
우리글의 가로쓰기
崔鉉培(최현배) (寄‧기)
第四章(제4장) 文字(문자)의 硏究(연구) (續‧속)
第三節(제3절) 다른 나라의 國字改良運動(국자개량운동) (續‧속)


中華民國(중화민국)에서도 그 傳來(전래)의 漢字(한자)가 不完全(불완전)하야 國民(국민)의 文化(문화)에 利(이)롭지 못함을 깨닷고 그것을 고치랴는 運動(운동)이 猛烈(맹렬)히 일어낫슴니다. 그 나라에서 나는 『新敎育(신교육)』이란 雜誌(잡지)를 보니 每號(매호)에 國字改良(국자개량)과 國語統一(국어통일)에 關(관)한 論文(논문)이 揭載(게재)되얏도다. 그리하야 배혼 사람들은 이제 소리글(音韻文字‧음운문자)을 지어서 어느 地方(지방)에서는 발서 學校(학교)의 課程(과정)에 너허서 가르친다 합데다. 그러나 아즉 그 內容(내용)은 모르거니와 字體(자체)가 甚(심)히 不完全(불완전)하 듯합니다.

하여튼 漢文(한문)이라야 글인줄로만 아는 우리 朝鮮(조선)의 頑固(완고)한 漢學者(한학자)님네들에게는 뜻밧게 나는 大砲(대포)소리 以上(이상)으로 놀람(喫驚‧끽경)의 거리가 될 줄로 밋나이다. 漢字(한자)의 本土(본토)에서 이러한 運動(운동)이 일어난 오늘에 잇서서도 우리 朝鮮(조선)의 漢學者(한학자)님네들은 鄕校(향교)에서 新學問(신학문)의 講習(강습)을 하는 것이 孔子(공자)의 精神(정신)을 不安(불안)케 한다는 理由(이유)로 이를 極反對(극반대)하고 百方(백방)으로 周旋(주선)하야 漢文講習所(한문강습소)를 그 곳에 세우고 講習生(강습생)을 보아 가르친다 하니 참 우수은일 이지요. 이 꿈은 언제나 깰는지! 우리가 다 죽은 뒤에라야 깰는지! 이런 漢學者(한학자)님네들에게는 이런 運動(운동)을 좀 紹介(소개)하여 들엿스면!

담에는 日本(일본)의 國字改良運動(국자개량운동)이외다。 日本(일본)의 國字改良運動(국자개량운동)에는 前(전)에도 말한 바와 가치 여러 가지의 主張(주장)이 잇섯습니다。 그 가온대에 現今(현금) 가장 有勢(유세)한 것은 로―마字(자)를 쓰자는 것과 가나(假名‧가명)를 쓰자는 것이외다。 가나를 쓰자는 中(중)에도 平假名(평가명)만 쓰자는 것과 片假名(편가명)만 쓰자는 것과 平假名(평가명)과 片假名(편가명)을 다 쓰자는 것이 잇습니다。 그리하야 各自(각자)의 主張(주장)을 딸아 月刊雜誌(월간잡지)를 發行(발행)합니다. 그러나 그 中(중)에도 『로―마』字(자)를 쓰자는 運動(운동)이 가장 有力(유력)하야 雜誌(잡지)뿐 아니라 字典(자전)도 지엇스며 여러 가지의 冊(책)도 내엇습니다. 大學敎授(대학교수) 中(중)에는 自已(자이)의 學說(학설)을 로―마字(자)로 적어서 同僚間(동료간)에 돌린다 합니다. 아마도 이 로―마字運動(자운동)이 將來(장래)에는 成功(성공)할 줄로 압니다. 그네들 가온대에는 오늘의 漢字並用(한자병용)의 國字(국자)를 亡國的(망국적) 國字(국자)라까지 부르지즌 이가 잇서 그 運動(운동)이 자못 猛烈(맹렬)합니다.

第四節(제4절) 우리글의 가로쓰기

우에 말한 조흔 글과 조흔 글씨의 까닭을 들으신 여러분은 우리글을 가로쓰기(橫書‧횡서)로 고처야 할 것을 대강 짐작하섯슬 줄을 압니다. 이제 다시 가로글씨(橫書‧횡서)가 理論(이론)에만 마즐 뿐 아니라 自然的(자연적)인 것을 實地(실지)에 證明(증명)하기 爲(위)하야 英國(영국)에 잇는 內外聖書會(내외성서회)에서 一九一二年(1912년)에 出版(출판)한 萬國語福音(만국어복음)이란 冊子(책자)를 여러분의 눈압해 보여들이나이다. 이 冊(책)은 요한傳(전) 三章(3장) 十六節(16육절)을 各(각) 國語(국어)로 飜譯(번역)된 聖書(성서)에서 빼어다가 모은 것인대 그 收集(수집)된 標本(표본)이 四九八(498)이요 國語數(국어수)가 四三二(432)이올시다. 그러한대 이 모든 글씨가 대개는 다 가로 씨혓슴니다. 세로 씨힌 것(縱書‧종서)은 겨우 蒙古(몽고) 滿洲(만주) 中國(중국) 朝鮮(조선) 日本(일본)의 글씨뿐이올시다. 곳 數百分(수백분)의 五(5)에 不過(불과)함니다. 이것만 보드라도 理論(이론)은 어떠케 되엇든지간에 글씨를 가로 쓰는 것이 自然的(자연적)임을 確認(확인)치 아니치 못할 것이외다.

이만하면 우리가 우리 한글(正音‧정음 諺文‧언문)을 가로 쓰자 함이 决(결)코 오늘의 有勢(유세)한 英獨文(영독문)의 單純(단순)한 模倣(모방)이 아니요 相當(상당)한 理由(이유)와 根據(근거)가 잇는 것임을 짐작하섯슬 것이외다. 나는 우리 民族(민족)의 將來(장래)를 爲(위)하야 千慮萬思(천려만사)를 하드라도 이 우리의 아름답은 한글을 바로잡아 쓰는 것이 가장 根本(근본)이 되는 일인 줄을 밋나이다. 이만으로서 여러분끠서도 저와 갓흔 생각을 가지신 줄로 압니다.
우리말과 글에 대하여 (21)
우리글의 가로쓰기
최현배 기고
제4장 문자의 연구 (계속)
제3절 다른 나라의 국자개량운동 (계속)


중화민국에서도 그 전래의 한자가 불완전하여 국민의 문화에 이롭지 못하다는 점을 깨닫고 그것을 고치려는 운동이 맹렬하게 일어났습니다. 그 나라에서 출판하는 『신교육』이라는 잡지를 보니 각 호마다 국자개량과 국어통일에 관한 논문이 게재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배운 사람들은 이제 소리글(음운문자)을 지었고 어느 지방에서는 벌써 학교의 과정에 넣어 가르친다고 합디다. 그러나 아직 그 내용은 모르거니와 자체가 아주 불완전한 듯합니다.

하여튼 한문이라야 글인 줄로만 아는 우리 조선의 완고한 한학자님네들에게는 뜻밖에 울리는 대포소리 이상으로 놀라게 하는 소재가 될 줄로 믿습니다. 한자의 본고장에서 이러한 운동이 일어난 오늘에서도 우리 조선의 한학자님네들은 향교에서 신학문을 강습하는 것이 공자의 정신을 불안하게 한다는 이유로 이를 극력 반대하고 백방으로 주선하여 한문강습소를 그 곳에 세우고 강습생을 받아 가르친다고 하니 참 우스운 일지이요. 이 꿈은 언제나 깰는지! 우리가 다 죽은 뒤에라야 깰는지! 이런 한학자님네들에게는 이런 운동을 좀 소개하여 드렸으면!

다음에는 일본의 국자개량운동입니다. 일본의 국자개량운동에는 전에도 말한 것과 같이 여러 가지의 주장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에 현재 가장 유력한 것은 로마자를 쓰자는 것과 가나를 쓰자는 것입니다. 가나를 쓰자는 가운데도 히라가나만 쓰자는 것과 가타가나만 쓰자는 것과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다 쓰자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각자의 주장에 따라 월간잡지를 발행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도 로마자를 쓰자는 운동이 가장 유력하여 잡지뿐 아니라 사전도 만들었으며 여러 가지의 책도 냈습니다. 대학교수 중에는 자신의 학설을 로마자로 적어서 동료 사이에 돌린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 로마자 운동이 장래에는 성공할 줄로 압니다. 그들 가운데는 현재 한자병용의 국자를 망국적 국자라고까지 부르짖은 사람이 있어 그 운동이 자못 맹렬합니다.

제4절 우리글의 가로쓰기

위에 말한 좋은 글과 좋은 글씨의 이유를 들으신 여러분은 우리글을 가로쓰기로 고쳐야 할 것을 대강 짐작하셨을 줄 압니다. 이제 다시 가로글씨가 이론에만 맞을 뿐 아니라 자연적인 것을 실제로 증명하기 위하여 영국에 있는 내외성서회에서 1912년에 출판한 만국어복음이란 책자를 여러분의 눈앞에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책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각 국어로 번역된 성서에서 뽑아 모은 것인데 그 수집된 표본이 498개이고 국어 수가 432개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글씨가 대개는 다 가로로 쓰였습니다. 세로로 쓰인 것은 겨우 몽고 만주 중국 조선 일본 글씨뿐입니다. 즉 수백분의 5에 불과합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론은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글씨를 가로 쓰는 것이 자연적임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만하면 우리가 우리 한글을 가로 쓰자는 것이 결코 오늘날 유력한 영어 독일어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요 상당한 이유와 근거가 있는 것임을 짐작하셨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천려만사를 하더라도 이 우리의 아름다운 한글을 바로잡아 쓰는 것이 가장 근본이 되는 일인 줄을 믿습니다. 이상으로서 여러분께서도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신 줄로 압니다.